여행에서 돌아온 지가... 일주일이 좀 모자란 날이다. 그건 여행이 아니었지. 불편한 상사가 상주해 있는 그곳을 나는 평생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는 걸까. 부모님을 말하는 게 맞다. 6개월치 파견근무 강도 이상의 심신 노동이 맞겠지. 나는 거진 일주일 만에 설거지를 하다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인지 급기야 고무장갑을 벗고 쓴다. 나는 나를 말리지 못한다. 내 본명은 김예민인 데다가 누구보다 초민감자라 집안일에도 초민감하다. 먼지가 쌓이는 걸 도대체가 두고 볼 수 없고 천장까지 닦아야 직성이 풀린다. 수시로 내 주변을 핸디청소기로 빨아들인다. 털. 고급스럽게 터럭이라고 하던가. 대체 어디서 털이 그리도 많이 자라 올라오는지 나는 마룻바닥을 까서 들여다보기도 했다. 농담이다. 이렇듯 항상 클린맨, 클린하우스를 유지해야만 악의 무리를 쫓아낼 수 있다는 생각. 그 그릇된 생각이 나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다는 걸 깨달은 이후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생활의 모든 루틴이 독일장벽처럼 허물어지고 나는 나와 만나게 되었다. 자유. 나는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그보다 춤을 추는 시간이 많았다. 나는 180도를 108번 초월하여 거대하고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거듭났다. 오전 일과, 물주는 날, 쓰레기 버리는 날, 운동, 퇴사 후에도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기틀을 잡아놨던 모든 노력이 무용한 짓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것들을 꽤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던 어느 날로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다시 고무장갑을 낀다. 남자는 핑크임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나는 다이소에서 기어이 곤색 장갑을 찾아낸다. 온통 곤색뿐인 그. 그의 세상은 그런 색이었다. 곯은 색이었다. 초예민남의 퍼스널 컬러는 네이비다. 바다의 수호자. 나의 옷장은 심해보다 어두웠다.
달그락달그락...... 거품칠을 가장 나중에 한 냄비가 가장 먼저 몸을 씻고 본래로 돌아간다... 돌아간다...? 허... 고로 늦은 것은 가장 빠른 것이겠구나... 냄비는 컵보다도 수저보다도 그릇보다도 넓고 깊은 데다가... 결국 가장 빨랐다. 나는 오늘도 유레카를 외친다. 비행기 역시 앞열 사람은 나중에 타서 늦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맨 앞이고 가장 빨리 내린다... 야이야이야야 쑈킹-쑈킹-... 쑈킹이다... 메가급쑈킹... 주주클럽과 메가쑈킹 작가님은 어디서 뭘하고 계실까.
나는 설거지를 매일 하다가, 격일로 하다가, 미루고 미루다 보니 최적의 주당 설거지 횟수를 깨닫게 되었다. 약 일주일에 한 번이 최적화된 설거지 공식이다. 설거지를 일주일에 한 번 한다고 말하면 그게 무슨 초민감자냐 게으르고 더러운**지라고 말할 수 있다. 그치만 끝까지 잘 들어보길 바란다.
컵, 수저(베라티스푼포함), 그릇, 그리고 가끔 냄비와 밥솥을 본래대로 돌려놓는 게 내 과업이다.
식사를 마치면 기름기라든지를 물티슈로 한번 닦아내고 물로 한 번 부순다. 애벌설거지라고 말하면 적당할까. 그러고 나서 물에 담가 둔다. 그리고 물이 고이지 않게 마치 식물에 물 주듯 부엌에 왔다 갔다 하다가 눈에 띄거나 물을 쓸 때마다 겸사겸사 새물을 뿌려서 고인물을 흘려보낸다.
그런 식으로 몇날며칠이 지나고 더 이상 커피 마실 컵이 남아 있지 않게 되면, 싱크대에 쌓여가는 설거지량을 대충 가늠하고 식기건조기에 가득 찰 만큼이 되면 마지못해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 따위는 인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다르게 말하면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거다.
지혜로워지면 된다.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끔.
라이프스타일을 모르면
극한까지 게을러져보거나
극한으로 부지런해져봐라
바퀴벌레는 어떻게 해야 나오고
모기는 어디로 들어오고
냄새는 어디서 나며
집집마다 모두 다르고
사람의 컨디션에 따라 다르다.
그러니 각자는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찾아 나서야 한다.
나는 보통 설거지를 할 때 태블릿을 들고 가서 거치대에 앉혀 놓고 뭐라도 보면서 했다. 낚시 예능을 몇 번이나 정주행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는 동안 이덕화 씨와 이경규 씨가 투닥거리는 게 그렇게 보기 싫더니 지금은 너무나 사랑스럽기만 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태주시인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오래 보아야, 자세히 보아야 그렇다면서요. 근데 반대의 경우도 있으니 참고바란다. 태블릿을 들여다보다가, 그러다가 접시를 몇 번 깨 먹고 난 뒤에는 음악을 틀었고 이제는 그마저도 귀찮아서 내가 흥얼거린다. 흥얼거리다가 종종 엉덩이도 흥드는데 그건 좀 부끄러운 편인지도 모르겠다.
이러는 사이에 어느덧 설거지가 끝났다.
설거지를 하며 쓴 내가 대견하다.
설거지 역시 자연스럽게 하면 된다.
초민감맨, 초민감워맨들이어, 거기에 의도를 끼워 넣지 말길 바란다.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지어다...
그러면 될지어다...
이래봬도 김예민이라 느슨해졌음에도 할 때는 제대로 하려는 습관은 남아 있다. 배수구, 거름망, 손이 닿는 관 속까지 관장해줬다. 사람도 마찬가지. 기름기가 있거나 자극적인 걸 먹으면 내시경을 쑤셔넣어야할 일이 많아질 것이고 원물에 가까운 식사를 하면 몸을 설거지 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래서 마라탕을 끊은 지가 좀 되었다. 내 몸을 망치는 최악의 음식 중 하나. 사람 몸이 특별하다고 생각지 말았으면 좋겠다. 생명 중 가장 나약하고 복잡한 구조가 인간이다. 복잡한 것은 고귀한 게 아니라 가장 혼란스러운 것이며 쪼렙을 말한다. 복잡하게 사는 사람도 그래서 쪼렙이다. 스스로 혼란을 만드는 멍텅구리다.
누가 그랬더라.
천재는 게으르다고.
그대의 삶에도
그대에게도 스스로 천재라고 여길 수 있는 지혜가 깃들길
귀찮은 설거지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