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념키친

두부 으깽이

취나물 무침이려던 것

by 육순달

필요:

물, 불(가스), 취나물, 두부, 쌈장, 천일염, 식초, 냄비, 채반, 믹스볼, 밀폐용기, 베라스푼, 인간(눈, 오른손 등)


과정:

취나물 물에 씻고 식초물에 담가두는 동안 두부 한모 쥐어짜 보울에 넣어두고 냄비에 천일염 넣어 물 끓이고 거기에 취나물 데치고 꺼내 맑은 물에 세 번 빨고 쥐어짜서 입술 직경 크기로 자르고 두부 계신 보울에 담고 쌈장 퍼넣고 실컷 촉감놀이


결과:

취나물 무침을 하려던 것인데 어디서 뭘 봤는지 두부를 부렸고 한 모는 너무 많았다. 새 이름을 내린다. 두부 으깽이.


가만 보니 무슨 반죽 같다―로부터...

거친 생각: 계란 두 개 풀어 부치면 더욱 맛있겠는걸?


어떤 계기로 요리함에 있어 맛의 발견과 성취를 내려놨기 때문에 더 나아가지 않고 그칠 수 있다.

더욱이 프라이팬과 기름 쓰는 걸 몹시 꺼리는 사람이므로―

1. 안경알에 기름 튐

2. 설거지 난이도 상승(팬을 물티슈로 한 번 닦긴 합니다만―지가 뭔데 시커멓게 싱크 대부분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꼴을 보면 빡똚)

―욕망을 물리칠 수 있었다.

(비슷한 이유로 고기 굽는 식당에 잘 안 갑니다.)


인간은 쭉 욕망해왔다.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에 무엇을 갖다 붙이고, 곁들이고, 화려하게, 웅장하게, 주되게 평생 그런 것을 배우고, 탐닉하고, 매달리고..., 덕분에 풍요를 넘어 포화롭다.

욕망하는 인간은 많고 그 결과 없어도 되는 것도 많다. 없애니 알겠다. 없는 셈치니 알겠다.


더는 안 그래도 될 텐데.

안 그래도 되는 방향으로 모든 시계를 뒤집어 놓을 순 없을까.

인류는 대체 어딜 더 가려는 걸까.




나는 행위의 결과 뒤가 행위보다 고단한 일은 하지 않는다.

뒷일은 떠넘기거나 무책임하거나 귀찮아하는 인간의 고질적인 문제가 있고 불거지면 해결하고자 컬렉션들이 줄줄이 출시되고 모조하고 거기에 사람을 끌어모아 부리는데 결국 떠넘기기와 무책임과 귀찮음이 확장될 뿐이다. 어지럽다. 지구가 너무 빨리 돈다.


오랫동안 설거지 같은 뒷일을 책임지다 보면, 뒷간 일이나 하다 보면 그것은 심장 부근에 독소처럼 차곡차곡 쌓이고 더 이상 흡수되지 못할 때 분출된다.

존재가 안으로부터 산산조각 난다.

운이 좋으면 존재는 안으로부터 산산조각 깨어져 새로 태어난 병아리가 될 텐데 거친 냉장고 안에서 병아리가 태어나는 건 본 적이 없다.


탁탁―누군가 프라이팬 위에 깨뜨린 계란후라이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노른자가 성치 않으면 마구 휘저어져버리는 꼴이,

그러곤 매일 아침 거대한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 더럽고 미끄러운 목젖을 붙잡으려 발버둥 치는 것이 운명이라면,

나는 차라리 병든 닭이 되어,

썩은 땅을 쪼아 먹으며,

똥집에 바이러스를 배양하겠다.

아무도 편히 잠들 수 없게,

거친 모래소리로 어둑에 울겠다.




여유 있다고 생각한 밀폐용기에 두부으깽이를 담았는데 부족하다.

보다 큰 용기도 가지고 있지만 없다고 친다.

되도록 멈춰 서서 기다리고 최후에야 문명을 이용하기로 한다.

그래야만이 어디선가/ 누군가의/ 무슨 짱가의 지혜가 깃든다.

그 기운이 기쁘다.

그 기운으로 남은 으깽이를 거지처럼 맨손으로 치덕치덕 허겁지겁 목구멍에 쑤셔 넣은 것을 지혜라고 우기기 어렵겠지만 손맛. 낡은 젊은이의 손맛에 취하며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지혜는 언제나 본질과 본능,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마음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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