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꼭 그 한 점의 맛이 나야 하지?
한 점 맛을 확장할 순 없어?
• > ●
점을 키우면 안 돼?
저 맛, 그리고 쩌어~~~~~~~~맛 도 그 맛일 수 없는 거야?
도대체 왜들 계량에 미쳐있는 거지?
어딜 가도 백 선생 맛밖에 안 나네 짜증 나게.
밥 먹으면서조차 경험이 쪼그라들잖아.
맛이 너무 좁으니까.
그래가지고 맛있게 먹겠어?
게다가 어딜 가면 격식까지 차리고 있어.
맛있어?
너 집에 가면 혁대 풀고 라면국물에 밥까지 말아먹을 거 다 알아.
냉장고를 털어 먹는다.
오리고기, 묵은지, 양파, 또 뭐 넣었더라... 기억 안 나.
마지막에 대파를 한번 더 넣고 요즘 맛있는 배추를 넣었지.
묵은 것과 새것을 한 데 뭉쳐놓았지.
묵은 건 깊이의 깊이를 만든다.
그리고 새것은 묵은 것이 만든 깊이에 의해 비슷한 속성으로 묵어 간다.
그러나 그것은 묵은 자들이 해낸 일이 아니다.
핵열 덕분이다.
네가 이룬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새것들에게는 오히려 방해라고.
나는 요리할 때 아무렇게나—그러나 감각적으로—때려 넣지만
내 속의 무언가는 빛 보다 빠르게 회전하고 있다.
그것은 초당 수만 번의 가상 시뮬레이션처럼 깜빡깜빡, 반짝반짝.
별들이 쏟아진다.
때문에 어느 길로 가도 상관이 없다.
어디서 반짝여도 상관없다.
무조건 맛있다.
경험치가 어느 이상, 특이점을 넘어서면 간 보지 않는다.
어느 이상, 특이점은 현시대의 모든 맥시멈과 미니멈이다.
둘 다 넘어야 한다.
넘어서면 음식도, 사람도, 사람의 그 무엇일지라도 까닭을 자연히 알게 된다.
부러 맥시멈 미니멈을 죄다 겪을 필요도 없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아는 법이다.
관계성을 모를 뿐이다.
쌓이면, 또는 파헤치면 근본에 다다른다.
근본마저 넘어서면 모든 도...(아씨... 이러니 이 예쁜 나이에 도사님 같다는 소리나 듣지)레미파솔라시도가 건반처럼 내려다 보인다.
그것은 노력,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다다르는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망각했던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그것을 알게 되면 세상 어디에 있건, 무슨 일을 하건 잘하고 행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굳이 안 해도 될 일 또한 자명해진다.
고작 코딱지만 한 국가, 사회, 조직 안에서의 질서, 옮고 그름 분별이 아니라
찐 세상의 규칙, 불변의 규칙으로써 한낱 인간계의 현상을 분별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맛이든 저 맛이든 좋을 수밖에 없다.
인간이 내는 맛이란 아주 형편없고도 매우 아름답기 때문이다.
깨닫지 못해도 조석으로 너그러운 마음을 갖자고 스스로 다짐하는 정도만으로도 평균 이상으로 멋진 삶을 살 것이다.
전반적인 의식 수준을 높여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은 똑똑하고 열성적인 만큼 멍청한 면도 그만하다.
하다 못해 식당 음식에 붙어 있는 머리카락에 성내는 것, 그리고 자기가 만든 음식에 터럭이 빠진 것은 대수롭지 않아 하는 것이 그렇다.
남의 터럭이 더욱 소중한 법이다.
상황에 따라 남의 터럭이 없어서 벌벌 떨다 죽을 수도 있다.
터럭은 더럽거나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 덕분에 당신이 온전히 숨 쉴 수 있는 것이다.
우주가 그렇게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