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일어, 나, 멸죄생선(滅罪生善)을...
초저녁이다.
그만 늦잠을 잤다.
늦잠도 실은 아닌 것이 요즘은 거진 2시간 X 5회로 야무지게 잔다. 그러고 20시간쯤 깨어 있는다.
어젯밤 고등어 한 마리를 냉동실에서 꺼내 냉장실 계란판 위에 올려두었다. 누가 생선 좀 먹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 보니 가히 김창완 님의 노래가 절로 떠올랐다. 너의, 그 한마디 말도... 이게 아닌데;
2 X 2 무렵에 일어났어야 했다. 커튼을 얼마 열어젖히지 못하는 나의 아침. 간밤의 수줍은 다짐으로 좀 더 일찍 하루를 시작했다면 생선 굽기가 좀 더 희망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미 흐물흐물해진 (안)생선을 도로 냉동실로 되돌려 보낼 수도 없었다.
갑자기 생선이 왜 먹고 싶어졌는지는 모른다. 해 먹기 까다로운데 하필. 때문에 생각이 나면 조림이나 찜•탕으로 만족하곤 했지만 그때마다 못내 아쉬웠다. 모름지기 생선은 구워야 한다. 수렵시절 느낌이 나야 한다. 그러나 현대의 생선은 두려움이다. 방사능 이야기는 어물쩍 넘어가더라도 사방에 기름이 튀고 연기가 나고 냄새가 밴다. 한동안 종이호일로 감싸 굽는 법을 채택해도 봤지만 맛도 없고 조리하기는 더욱 번거로웠다. 에어프라이어를 사들인다 해도 마찬가지일 거였다. 문제를 덮는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제를 보다 더 큰 문제로 끌어안는 게 과연 최선일까.
그러던 중 불쑥 강레오라는 사람이—내 심사를 어떻게 알았는지—신의 사자처럼 나타나 생선 굽는 법을 알려줬다. 그의 반짝이는 눈빛에 홀려 10분을 내리 지켜봤다. 요지는 이랬다.
싱싱한 생선.
물기 제거.
뒤집지 말고 은은하게 오래.
그치. 무른 속살이 팬에 닿으면 안 되지. 껍질방석 깔고 잡념을 지그시 내보내야 기름이 안 튀지. 날아가야 할 건 날려 보내야지. 가두면 안 되지.
두렵다고 뚜껑을 닫으면 두려움은 거짓 호랑이처럼 더욱 위세를 펼친다.
假虎張威. 어쩜 이리도 당연한 진실.
젓가락으로 고등어의 등을 쓸었다. 푸르던 것에서 ㅂ싸악 ㅂ싸악 비질하는 소리가 났다. 조심스레 등을 꿰뚫자 그의 모든 계절들이 한 호흡으로 펄떡이며 내 등줄기를 타고 마음을 꿰뚫었다. 감사했다. 갓 튀긴 돈까스 보다 맛이 있었다. 라면 끓이는 것보다 주방은 더없이 깔끔했다. 요리를 안 한 듯 했다는 것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기쁨이 밀려왔다.
뭐든 티 내지 않고 안 한 듯 하는 게 최고. 촛불 같은 은은한 사랑이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 하오니 우리는 은근한 미소로, 누구도 은밀하지 않도록. 아무도 위대하지 못하도록. 모두가 거룩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