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내가 아는 한 시와 미술, 음악은 부모가 같다. 그에 따른 건축이라든지 자손, 기타 등등 인간의 모든 결과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인생은 예술이 맞다. 맞긴 한데...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인간의 예술은 계속 틀리고 희생을 부르고 또 진화한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거기에 발전은 없다. 그래서 과학도 없다. 근본적인 것은 신의 그림 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당장에 글을 쓰고 있지만 음악과 미술, 사실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에 관심이 많다. 그 세계는 당연히 내가 주인이고 따라서 나에게 관심이 많다. 그러다 보면 어떤 날은 실시간으로 눈물이 나기도 하고 실시간으로 춤을 추기도 한다. 세상은 놀라움과 더러움 밖에 없으니까. 창조와 파괴.
나는 언젠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내게 한꺼번에 들이닥칠 때, 그것들을 황급히 메모해 두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한 달 하고 조금 더 된 기록들이었다. 그것을 문에 붙이니 미술이 되었고 그걸 소리 내어 읽으면 음악이었다.
예술에는 잘하고 못함이 없다. 자기 자식이 못 생겼다고 나는 못했네, 재능이 없네, 우리 딸은 왜 이렇게 못생겼냐, 한탄하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 아니, 없길 바란다. 사람들은 뭘 하든 틀리지 않길 바라고 경험 안에서 완벽을 추구하지만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완벽하지 않은 모습이 완벽한 생명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는 메모를 하는 것이 취미인데 어느날부턴가는 한국말 대신 도형, 그림 같은 것의 페이지가 늘어나고 있었다. 내 감각을 말로 표현하는 게 영 재미가 없고 남들에게 이해시키기도 어렵고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고치자니 성에 차지를 못하고 그렇다고 다른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미술 내지는 그림이고 아무래도 스케치북과 붓으로 내가 뭘 하나 지켜보고 싶은 욕구마저 생겨났다.
그래서...
나는 친구가 거의 없지만 좋은 친구들은 제법 많아서 한 녀석에게 '그림을 그리고 싶으니 용품이 필요하다, 어디로 가야 하냐'는 물음으로부터 안내해 준 곳을 다녀오기로 했다.
화방에는... 너무 많았다. 아크릴, 동양화를 위한 도구, 유화를 위한 도구, 아무래도 똑같아 보이는 수많은 브랜드와 두꺼운 숫자들. 나는 한숨이 나올 뻔하다가 고맙게도 일을 하고 계시던 분은 내 물음에 친절했다. 그만큼 예술가라는 존재들은 자신의 머릿속에 들은 걸 100% 구현하길 좋아하는 듯하다. 대체 이렇게 디테일할 필요가 있을까. 예술가는 감각으로 디테일을 챙기면 되지 않나. 하나의 붓으로 강약을 조절해서 두께를 달리하면 되고 하나의 붓을 여러 번 씻으면 되고, 여러 번 티 안 나게 덧칠해서 붓보다 큰 그림을 그리면 되는 게 아닌가?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는다는데 어찌 된 영문과 환경인지 모르겠다-면서 나는 붓을 4개나 샀다.
예술을 말할 때 완성도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우연의 해석을 좋아하는 편이다. 개개인의 틀림의 해석과 고통과 절망, 미완성의 예술을 더 사랑한다. 마치 생명처럼 탄생처럼.
집에 돌아왔으나 나는 휴대폰이란 것 때문에
대낮부터 강제로 타인의 고통에 접속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나에게 나를 도로 채우기 위해 냉장고를 먹었고
그랬더니 휴식하길 바랐다.
나는 욕조에 들어가 눕는 것을—아직까지는 내가 아는—최고의 휴식으로 친다.
그리고 그 바람이 오늘 나의 첫 미술이 되었다.
*개인의 시선에 따라 불쾌할 수 있으니 심약자는 스크롤을 여기서 멈추시길 바랍니다.
**순수하게 미술로 다가가길 희망합니다.
***이렇게 당부해 봐야... 이러면 더욱 호기심이 생겨서 반드시 보고야 말 테죠...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작품명은 '생명'입니다.
와인 방울이 벽을 타고 욕조에 골인하는 게 꼭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모습 같더라고요.
여러분은 무엇이 보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