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간디 모르간디는 17세기 인도의 철학자이다. 그는 '모름이 진리와 같다.'라고 말했다. 모름. 몰음. ‘몰음’이라는 한자어가 있는지어쩐지 모르겠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앎은 진리를 구체화하려 하므로 그것이 드러나면 자유로이 진리를 사용할 수 없다.
1은 1이라서 1인데, 1은 또 0+238756*134324-123002456^18%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앞선 1의 해는 1이 아니기 때문에 평생 1을 1이게 하는 공식을 만들어 가는 게 인간인 것이다. 어리석음으로 따지면 지금까지 드러난 생명 중 가장 어리석고.., 그러니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평생 바보짓이나 하다 가는 게 너고 또 나이니 이 바보는 잠시 마음이 놓인다. 그래서 오늘은 또 무슨 바보짓을 했냐면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충분히 미적거리면서도 어쩌다 보니 귀찮은 일들을 단 하루 만에 모조리 해치워버린 것이다. 평소라는 기준을 평소에 조금 바듯하게 하면 될 일이니 어리석은 면이 있다. 이 바보가 몰입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쳐두거나 아무 일 없음을 유지하기 위해 거슬리는 것들을 눈 감고 미룬 거라고 한대도 어리석은 면이 있다. 또는 그것을 별일이 아닌 것으로 여기기 위해 마음을 느슨하게 하려고 해도, 또 그것이 보편적인 별일이든 그렇지 않든 자신에게만은 삼십 년 동안 별일이었던 것을 별일 아닌 것으로 바꾸는 작업은 0+238756*134324-123002456^18%처럼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오늘 실컷 기른 머리를 덥썩 자른 것도 그렇다. 옆머리가 귀를 덮고 앞머리가 귀에 걸렸다가도 슥하고 내려와 수시로 머리를 쓸어 넘겨야 하는 이 시점을 도대체가 버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를 자르러 미장원에 갔는데 결국 이겨보겠다고 선언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내 머리는 정말이지 지나가는 바보 똥깨가 보기에도 그보다 더 바보인 것이다. 예쁜 여성에게나 어울릴 만한 그런 숏컷이 내 이마 위에 올려져 있는데 나는 흠칫 놀라 그만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버린 것이다. 더욱 바보 같은 것은 이 상황마저 이미 '유사 나' 시뮬레이션을 통해 미리 확인했던 순간이었던 것이다. 마스크를 쓴 김에 다이소도 가고 약국에 마저 들렀던 것이다. 피부 연고만 사면 되었는데 삼만오천 원짜리 복용약까지 사버린 것이다. 연고는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은 데다 이미 십 년 넘도록 고생하는 와중에 눈이 번쩍 뜨이는 최신 복용식 알약을 내미는, 벽에 붙은 오래된 약사자격증과 머리가 쇤 약사 할머니의 하모니가 나의 함수를 열어버린 것이다.
앎으로 무엇을 하지 않는 것과 모르므로 하지 않는 것은 결과가 같다. 대신 알면 피곤하다. 삶을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띠띠띠띠. 납득될 때까지. 이해될 때까지. 그런 건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알아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고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둘을 구분해 내기는 어렵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성찰을 통해 믿음, 자신만의 세계관이 있는 사람이 말하는 그냥과 그딴 건 관심이 없거나 중간에 포기하고 그냥 하는 사람의 차이를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그 누구라도 선생으로 여기기로 했다. 어느 쪽이든 신기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냥이 되지?
물론 그냥이 말처럼 그냥 될 때도 있지만 그냥을 패시브스킬처럼 늘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자기 전에 그리고 일어나면 가장 먼저 뭘 하는지 물어야 한다. 그래서 "왜 그걸 해?" 연달아 묻는다면 역시나 "그냥"이라고 말할 테지만.
알면 다친다. 알수록 모르는 것은 거듭제곱 많아진다. 두려움에 떨게 된다. 덜덜 떨다 옷을 주워 입는다. 모르는 게 맞다. 그냥이 맞다. 얻어터지고 싶다. 그냥, no reason, no saer on. 나 돌아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