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미국 어딘가에 딕 김 이란 이름의 청년이 살고 있다고 해봅시다. 어느 날 딕의 친구가 그에게 소개팅을 주선해 줬습니다. 딕은 그녀의 사진들을 봤습니다. 실로 어마어마했습니다. 몸매부터 얼굴까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아름다운 여인이었죠. 그녀의 이름은 FYRE였습니다.
딕은 새 옷들을 구입했습니다. 그녀를 태울 차도 한 대 렌트하고요. 그리고 히오스에 버금가는 고급 레스토랑도 예약금까지 걸어가며 예약을 했습니다. 벌썩 600달러 정도 깨졌네요. 그런데 소개팅 당일, FYRE양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딕은 좀 더 기다려 봤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드디어 약속 장소에 나타난 건
빌리 맥팔렌드, FYRE 사기 사건의 주범
웬 털보 아저씨였습니다.
FYRE 페스티벌 사기 사건의 피해자들이 느꼈을 감정이 딕과 비슷했을 겁니다. 2017년, 5000여 명의 젊은이들이 바하마의 한 아름다운 섬에 상륙합니다. 그들은 FYRE 페스티벌을 즐길 꿈에 부풀어 온 사람들이었죠. FYRE 페스티벌이 뭐냐고요? 400명이 넘는 인플루언서, 모델, 코미디언, 배우들과 함께 하는 초대형 뮤직 페스티벌의 이름이었습니다. 그것도 아름다운 천혜의 섬 바하마에서요. 돈과 젊음과 열정과 시간만 있으면 꼭 한 번 참여해볼 만한 행사였죠. 보통 젊음이 있으면 돈이 없고 열정이 있으면 시간이 없던데 이 세상은 게임이 아니라 그런지 밸런스 브레이커들이 꽤 있기 마련이죠. 최저 600달러에서 최고 25만 달러의 티켓이 싹 다 매진 됐거든요.
아무튼 그들은 가벼워진 지갑과 부푼 꿈을 안고 페스티벌이 열릴 바하마의 한 섬에 상륙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그야말로 재난이었습니다.
무대는 짓다 말았고, 인플루언서들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제대로 된 안내도 없습니다. 약속되어 있던 휘황한 숙소 대신 허접한 돔형 텐트들만 즐비하고, 그나마도 전 날 온 비로 인해 텐트의 매트리스는 쫄딱 젖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식사랍시고 저녁 늦게 서빙된 건
어디 가서 한 대 맞고 온 듯한 치즈샌드위치였죠. 어쩌다 이런 대참사가 벌어진 걸까요. 이 다큐멘터리는 하나의 사업이 사기로 전락하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2017년, 젊은 사업가 빌리 맥팔렌드는 "FYRE"란 이름의 어플리케이션을 출시합니다. 유명인이 필요한 사업체or개인들과 유명인들을 매칭시켜주는 비즈니스형 매칭 앱이었죠. 빌리는 이 앱의 출시를 홍보하기 위한 초대형 뮤직 페스티벌을 기획합니다. 그게 바로 FYRE 페스티벌이었죠. 겁나 아름다운 섬을 통째로 빌려서 최고의 뮤지션들과 함께하는 페스티벌을 개최하자는 것이었죠. 페스티벌의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루저들에게 꿈을 판매하는 거야."
결과적으로 반쯤 맞은 예언이 되었습니다. 관계자들은 빚더미에 앉은 루저가 되어 버렸고, 그들이 산 꿈은 허위매물이 되어버렸죠.
그들은 처음에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 소유의 무인도를 빌렸습니다. 그리고 광속으로 쫓겨나죠. 섬 주인이 '홍보 때 에스코바르란 이름을 쓰지 마라'라고 했는데도 그냥 써버렸거든요. 그 때가 페스티벌 개최 6주 전이었습니다. 발등에 메테오가 떨어졌죠. 운영진은 간신히 섬 하나를 섭외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섬에는 '그것'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의 수도꼭지와 변기와 가스렌지와 콘센트 뒤에 있는 것, 바로 인프라 말이죠.
이 사업은 두 가지 의미에서 뒤가 없다는듯이 진행됐습니다. 일단 뒷날 생각을 안 하고 지르듯이 진행됐다는 점, 그리고 거대한 행사의 뒷면에 대한 고찰 없이 진행됐다는 점에서 말이죠. 자그마치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수용하는 행사입니다. 수도, 전기, 하수, 가스 시설 인프라라는 "뒷면"이 완비되어 있어야만 했죠. 하지만 그것들을 가설하는데 들일 수 있는 시간은 6주. 망했죠. 하지만 스노우볼은 이미 굴러가기 시작했죠. 티켓은 완판됐고, 돈도 와장창 쓴 상태고. 호언장담의 작은 씨앗이 구르고 굴러 거대한 사기극이 되는데는 6주면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대참사가 벌어졌죠.
FYRE페스티벌 홍보 영상 중 한 컷
사실 우리들은 어떤 대상의 뒷면에 대해 생각하는데 익숙지 않습니다. 선물 포장지만 봐도 그 내용물을 기대하는 게 사람 심리거든요. BOX 안에 든 게 그냥 DICK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표면을 보고 뒷면을 상상하며, 아니 확신하며 살아갑니다. 사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의 뒷면과 원리를 파악하기에 세상은 너무 복잡하거든요. 적당히 "믿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고, 그게 합리적인 태도이죠. 그래서 FYRE페스티벌의 피해자들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는 겁니다. 100여 명의 인플루언서들이 일제히 홍보하는 페스티벌의 진상이 난민촌일 줄은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세상이 신용으로 지탱된다는 건 바로 이런 의미일 겁니다. 그리고 그 신용을 가지고 장난질을 치는 빌리 같은 인간이 등장하는 순간, 바로 이런 사태가 터지게 되는 거죠.
빌리는 결국 6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아직도 잘 갇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 그의 식판에는 어떤 메뉴가 올라갈까요? 일단 저 위의 치즈 샌드위치보다는 맛대가리 없는 무언가가 올라가길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