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온직 Jun 09. 2017

고위험 산모의 병상 일지

2016년 7월 21일 (목) ~ 2016년 10월 15일 (수)

2016년 7월 21일 (목)

9일 만에 일기라니... 일기뿐 아니라 한동안 태교 자체를 못했다. 이 중요한 시기에 마음이 좋지 않다. 금요일에 울산에 내려가 시댁에서 하루 자고, 경주 결혼식에 갔다. 치술령에서 오빠 친구들과 또 하룻밤, 일요일은 시부모님이 오셔서 또 하룻밤. 여하튼 일요일이 지나 월요일 아침이 되어도 시부모님은 우릴 보내실 생각이 없으신 듯하고, 감사하게 잔뜩 싸주신 채소, 과일 등을 싣고 집에 도착하니 또 밤 10시이다. 그리고 다음날을 또 출근.


월요일은 외근, 화요일은 9시까지 야근. 수요일은 오빠 친구의 집 방문. 오늘은 회식. 회사는 내가 임산부인걸 모르는 듯하고, 시부모님은 며느리가 직장인인 걸 모르시는 듯하다. 한계를 넘어서 너무 피곤하고 마음이 지친다. 나중에 솜솜이가 이 일기장을 보기 전에 이 페이지는 찢어버려야겠다. 왜인지 부끄럽다. 그냥 지친 이 모습이...


2016년 7월 26일 (화)

’내일 하루만 더 버티자. 그러면 휴가다.'라는 생각으로 들뜬 마음을 안고 퇴근했다. 점심때부터 평소와 다른 배뭉침이 이상하긴 했는데, 퇴근하고 보니 그 횟수가 너무 잦다. 집까지 도착해 다시 차를 돌려, 응급실로 갔다. 검사 결과, 자궁 경부는 3.4cm 정도로 괜찮은데 약하지 않은 수축이 보인단다. 최대 80까지. 수액을 맞고 나니 (수액 자체가 자궁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한다.) 조금은 수축이 완화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2016년 7월 27일 (수)

새벽 5시쯤, 눈을 떴는데 여전히 배뭉침이 심상치 않다. 병원에 전화하니 다시 응급실로 내원하란다. 이번에는 수액을 맞아도 수축이 줄어들지 않는다. 당직 선생님은 수액으로 어느 정도 잡혀도 다시 병원에 올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입원을 권유하신다. 남편과 나는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을 한지라 순순히 '그러겠노라' 했다. 침상 옆 남편의 모습이 너무 지쳐 보인다.


2016년 7월 30일 (토)

1단계로 맞고 있던 라보파(자궁수축 억제제)를 멈추어보았는데, 몇 시간 후에도 수축이 없어 퇴원할 수 있었다. 퇴원 전, 입체 초음파 결과, 솜솜이는 1.2kg이었다. 그런데 경부가 2.6cm로 확 줄었단다. 주치의 선생님은 내 자궁 경부가 원체 부드러운 편이라 길이가 확확 줄 위험이 있다 하신다.


3일간, 씻지도, 제대로 자지도 못해 집에서 용기를 내 샤워를 하고 누워 안정을 취해보는데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또 배가 뭉친다. 역시 샤워는 무리였나. 괜찮을 거라고, 라보파 반동 수축일 거라고 위안했다. 이번에 다시 입원하면 기약 없는 병원 생활이 시작될 것임을 알기에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솜솜이를 위해 몸을 일으켜야 했다. 채 끌르지도 못한 입원 가방을 다시 챙겨 병원으로 향하는데 두려움에 눈물이 난다.


응급실, 다시 수축 검사. 이번에는 수축 강도가 더 강해져 100을 찍고야 말았다. 라보파 1단계로 간신히 수축을 잡았다. 반나절만에 다시 병실로, 그 어둡고 적막하고 외로운 그 침대에 돌아와 숨죽여 울었다.


2016년 8월 9일 (화)

손에 다다닥 수포가 올라오는 한포진과 임신 소양증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새벽마다 혼자 휴게실에 앉아 아이스팩을 대고 가려움증과 싸우며, 간신히 침대로 돌아와 몇 시간을 눈을 붙이는 생활의 반복이다. 고위험 산모실은 너무나 어둡고, 가려져있고, 조용하고... 낮도 힘들지만 특히 밤이면 그 적막과 어둠이 나를 너무나 짓누른다.


결국, 오늘 새벽. 여느 날과 같이 터질 것 같이 답답한 가슴을 안고 휴게실에서 숨을 돌리는데 배가 뭉치기 시작한다. 새벽, 분만실에서 다시 시작된 태동검사. 수치가 100을 아무렇지도 않게 찍어대며 널뛴다. 라보파를 2단계로 올렸다. 이다음 날은 처음으로 낮부터 감정을 제어할 수가 없어 많이 울었다. 세수하면서도, 밥 먹으면서도 눈물이 난다. 오빠를 붙잡고 운 적은 많지만 그날따라 남겨진 날이 너무나 막막하고 괴로워 혼자 울 수밖에, 그것뿐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나마 그렇게 참았던 스테로이드 연고와 항히스타민 약으로 한포진은 조금 가라앉았다. 솜솜아, 내가 네게 못할 짓만 하는 듯하다.


2016년 8월 17일 (수)

주치의 김시내 과장님께 말해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전원을 요청했다. 치료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더라도, 내가 더 갑갑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솜솜이를 조산할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서울대병원은 신생아 중환자실 수준이 상당히 높다 한다. 앰뷸런스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전원 했다. 마침, 이날 아침, 김시내 과장님 처방대로 라보파를 4단계에서 0단계로 한 번에 끊어버린 상태였다.


응급실을 거쳐 분만실에서의 태동검사, 역시나 수축이 날뛴다. 3분 간격으로 최고 수치를 찍고, 라보파를 32 가트까지 올려도 수축을 잡아내지 못한다. 결국 마그네슘을 건너뛰고 가장 비싸고 효과가 좋다는 트렉토실을 투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축이 100% 잡히진 않았지만, 여하튼 분만실을 벗어나 병실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36주까지 꼭 채우고 싶다. 퇴원에 대한 욕구도 사라졌다. 오직 주수를 채워 완전히, 온연히, 평안하게 스스로 호흡하는 너를 보고 싶다. 지금의 고통 따위 너의 작은 몸에 단 주삿바늘을 보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그런 상황이 오면 난 정말 무너져버릴 것만 같다.


병실로 돌아와 2시간도 채 자지 못했다. 특히 5인실 중 중간자리라 또 가슴이 죄여 오듯 숨이 잘 안 쉬어진다. 그렇게 동이 텄다. 솜솜아, 우리 이곳에서 3주만이라도 더 버티자.


2016년 8월 18일 (수)

5인실 창가 자리 환자가 퇴원을 하는데, 그 자리로 옮기려면 2인실로 갔다가 다시 배정을 받아야 한단다. 그래서 어젯밤 2인실 이용 후, 다시 5인실 창가 자리로 옮겼다. 마침 수축도 조금 줄어, 몸과 마음이 편한 상태의 접어들었다. 그러니 다시 일기를 쓸 생각도 드는 거겠지.


문제는 오늘 새벽 트렉토실 1사이클이 끝나면 이 약을 연속으로 투여할지, 마그네슘으로 바꿔볼지 고민이 된다. 지금의 평온한 상태에서 마그네슘으로 바꿨다가 다시 수축이 널뛰는 걸 보고 싶진 않은데. 트렉토실을 연속으로 맞으려면 시간 텀을 두어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비보험가로 이틀에 160-170만 원 선이 될 거란다. 너무 고민된다. 여하튼 두 방법 모두 오늘 밤 내 마음을 편치 못하게 할 것 같다.


어렵게 차지한 서울대병원 창가자리였지만, 그곳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다.


2016년 10월 5일 (수)

너무나 오랜만의 일기다. 근 두 달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8월 서울대병원 입원 후, 트렉토실 1차에 수축이 잡혀 퇴원을 했다. 그리고 백현동 친정집에서 일주일간 시간을 보내던 중 또 주기적인 수축이 일었다. 밤중에 분만실을 찾았더니 의료진은 입원을 권유한다. 더 심해지면 오겠노라고 이야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어김없이 다음 날 다시 병원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고위험 산모 집중치료실에 입원했다.


병원 측 권유대로 마그네슘을 투여했는데 소변 양, 음식물 섭취량을 일일이 기록하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마그네슘은 부작용이 심하다는 라보파보다 내겐 더 버거웠다. 맞자마자, 얼굴에 열이 오르고 온몸에 힘이 빠져나간다. 그래서 그 후에 맞은 라보파는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33주 5일에는 너무 빈번한 수축에 이대로 분만이 진행되는가 싶었다. 병원 측에서 34주면 아기의 폐기능이 완성되는 시기라 더 이상 트렉토실을 쓸 수 없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럼 라보파라도 다시 맞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지금 이대로 솜솜이를 만날 순 없었다. 라보파를 그 시점에서 맞는 것이 산모에게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어 진통이 오면 그대로 분만하는 것을 더 권유한단다. 그 순간에는 보이지 않는 미래의 예후 따위보다는 솜솜이를 뱃속에 조금이라도 더 품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라보파를 맞으며 34주 1일까지 병원에서 주수를 채웠다. 더 이상은 병원 측에서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하여 퇴원. 그래도 정상분만인 37주까지는 채우고 싶어 또다시 친정 집에서 와식 생활을 시작했다. 몇 주째 누워만 생활하니 다리에 힘이 없다.


35주 즈음에는 양수가 너무 적고, 솜솜이가 무게도 잘 늘지 않아 불안했다. 임신기간 내 고기, 인스턴트 많이도 가렸는데 이때부터 양수와 아이를 키우기 위해 꾸역꾸역 닥치는 대로 모든 음식을 다 입에 구겨 넣었다. 그 결과, 아기는 정상 체중 범위로 들어왔다. 나는 2주 새에 5kg이 늘었다. 그래도 지금은 솜솜이가 큰 것만으로 너무나 행복하다. 나조차도 굴러다닐 듯 불어버린 내 모습이 싫은데, 오빠가 그래도 예쁘다고 말해줘서 기분이 좋다. (속으로는 애 낳고도 못 뺄까 봐 무섭지 오빠?)


36주가 넘으면 감사했고, 37주는 기적, 그 후로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이 벌써 38주이다.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지 1주일째이다. 솜솜아, 너는 우리에게 기적을 보여주었다. 두 달간의 고위험 산모 생활을 겪으며 자유롭게 거동할 수 있는 자유와 바깥공기를 마시고 길가의 사람들을 만나는 일상의 소중함을 알았다.


일생에 몇 안되던 너무나 힘들고 괴로우며 불안했던 나의 임신 기간. 대신, 우리 부부에게는 성숙과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남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지금의 순간이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이제 언제 나와도 좋단다, 솜솜아. 너는 이제 3.1kg가 되었다.

이전 08화 우리도 아빠, 엄마가 되는걸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