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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온직 Oct 24. 2018

어린이 집에서 울고 말았다.

일하는 엄마, 참관 수업에 참여하다.

준이의 어린이집 '참관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급식 모니터링, 부모 교육 등 엄마들이 참여하는 어린이집 행사는 대부분 평일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일을 하는 엄마들은 함께하기가 녹록지 않다. 처음에는 반차까지 쓰며 어떻게든 엄마들이 참여하는 모든 행사에 따라가려 애를 썼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일하는 엄마의 현실 안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취사선택하는 것도 준이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는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면, 무리해서 어린이집 행사를 참여하지는 않는다.


오늘 참관 수업도 자연스레 준이의 등하원을 책임져 주시는 친정엄마가 가기로 하셨는데, 준이를 친정에 데려다준 아침, 엄마가 나를 불러 말씀하셨다. "내년에는 연차를 아껴서 이런 특별한 날은 네가 가도록 해. 다들 엄마가 왔는데, 준이만 할머니가 가서 속상하지 않을까?"


범준이네 반 12명 정원 중 현재 일을 하는 엄마는 나 하나뿐이었다. 창 밖으로 줄지어 서있는 엄마들과 교실 안에서 자신의 엄마를 찾아 눈동자를 굴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준이의 눈길은 결국 할머니에게 머물겠지. '그래서? 준이에게 그건 현실이자, 일상이야. 슬퍼할 일이 아니야.'라고 되뇌었지만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불쑥 사무실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켜졌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엄마와의 첫 등원 길, 범준이는 예상대로 입이 귀까지 걸렸다. 가을바람이 서늘하긴 했지만, 준이의 기분처럼 날씨도 쾌청했다. 회사 밖 산책로 나무가 계절마다 어떻게 변해가는 지만 알았지, 어린이집 앞 준이가 뛰놀던 바위와 흩뿌리던 나뭇잎의 나무가 이렇게 생긴 줄은 몰랐다.


문제는 어린이집에 도착한 뒤였다. 삼삼오오 엄마 손을 잡고 도착한 아이들은 신발을 벗은 후, 평소와 같이 교실로 올라가고, 엄마들은 잠시 강당에 모였다. 선생님이 '범준아, 올라가자'라고 이야기한 그때부터, 범준이가 '엄마 좋아.' '엄마 좋아' 라며 나를 안고 눈물을 후드득 떨구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은 등원 후 엄마와 인사를 나누고 교실로 올라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었지만, 범준이는 처음으로 엄마와 함께 어린이집에 온 이 행복한 상황 속에서 나와 잠시라도 떨어져야 하는 것이 너무 불안하고 두려운 듯 보였다. 선생님이 우는 아이를 번쩍 안아 교실로 올려 보냈지만, 아이의 울음은 그치지 않고 아래층까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결국 선생님의 호출에 나는 다른 엄마들보다 먼저 교실로 올라갔다. 나를 옆에 두고서야 준이는 안정을 되찾고, 평소 자신이 하던 양말 벗기, 가방 정리하기, 물통 넣기, 교구 작업 등 평소 어린이집 생활을 담담하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정식 참관 수업이 시작되고 다른 엄마들은 창밖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했지만, 나는 교실 한편에 들어가 앉아 있었다. 준이가 내가 교실 밖 복도로만 나서도 자지러지 듯 울음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눈물, 콧물 다 빼며, 온몸으로 '엄마, 가지 마'라고 말하는 준이에게 나의 존재감을 몸으로 확인시켜 주 듯 아이를 터질 듯, 있는 힘껏 세게 껴안고 말했다.



"범준아, 엄마 여기 있어. 엄마 여기 있어."



나지막이 되뇌어 말해주다가 결국 나도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아이가 원하는 곳에 늘 있어주지 못하는 엄마에게는 그 말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왔다. '여기 있다'는 그 말을 되뇌는 것이 내게는 마치 거짓말을 반복하고 있는 듯한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선생님이 티슈를 건네주셨다. '범준이 평소에 이거보다는 10배는 잘하는데. 오늘은 엄마가 와서 범준이가 너무 행복해서 그런가 봐요.' 하며 웃으신다. '회사로 복귀하셔야죠? 범준이는 제가 달랠게요. 어머니, 뒤돌아 보지 마시고 바로 내려가세요.' 선생님의 말투에도 결의가 차있다. 지난 상담 때, 본인도 아이가 어릴 적 일을 하셨노라며 내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셨던 그 선생님이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 오늘 나는 좀 무너졌다.



'엄마도 엄마의 능력을 발휘하고, 엄마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신념도, 그런 건강한 믿음이 범준이의 삶에 좋은 자극과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눈물을 삼키며, 들썩이는 아이의 작은 어깨 앞에서는 모두 무력해지고 말았다.


마지막 돌아서기 전, 준이에게 습관처럼 해주던 말을 다시 한번 해주었다. '엄마는 회사로 돌아가서 일을 하고, 준이는 남아서 준이의 생활을 잘 해내자. 그리고 우리 저녁에 만나.' 늘 이 말을 준이에게 해줄 때 나에게는 자신감과 자긍심이 깃들어 있었다. 오늘은 이 말의 모양새가 참 궁색하고 초라했다.


선생님이 말하시지 않아도 나는 알고 있었다. 준이는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는 걸. 하지만 오늘은, 내가 떠난 후에도 그곳에 남아 조금 슬픈 상태로 씩씩하게 잘 해내고 있을 우리 아이가 자꾸 떠오른다. 그리고 훗날을 위해 이 아픈 마음을 펼쳐내 글을 쓴다.


그 모습을 떠올려도 눈물을 참지 않으려면, 이 마음을 추스르려면  얼마나의 시간이 걸릴까. 오늘 저녁 약속이 있었지만, 준이에게 차마 저녁에 볼 수 없다고 말할 수 없었기에, 저녁 약속을 취소했다.


엄마가 각자의 자리에서 잘하자 해놓고, 엄마의 자리에서도 자꾸 울어서 미안해. 얼른 일 끝나고 뛰어갈게.



관찰 수업이 끝나고, 원장님과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내가 말했다.

"준이가 이제 엄마가 일하는 것에 대해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생활에 적용시켜 왔다고 생각했는데... 준이의 마음으로는 그게 아니었나 봐요. 집으로 돌아가, 엄마가 일을 하는 상황에 대해 더 충분히 설명해주고, 이야기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라고 이야기하자, 원장 선생님(나의 육아 멘토)께서 슬쩍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냥 이렇게 말해주세요. 범준이가 엄마가 옆에 있어서 기분이 너무 좋았구나. 엄마가 갈까 봐 걱정이 많이 되었을 텐데도, 어쩜 그렇게 잘해주었어? 엄마는 범준이가 엄마가 있는데도, 교구도 손 씻기도 너무 잘해주어서 행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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