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고 보니,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보였다.
아침 9시 15분이었다. 회사에 출근하여 막 근무를 시작한 참에 핸드폰이 울렸다. "어머님, 저 범준이 스쿨버스 기사입니다."
이 이른 아침부터 선생님도 아닌, 버스 기사님이 직접 연락을 주시다니. 나는 등원 중 무슨 사고라도 난 줄 알고, 심장이 바닥까지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범준이가 지금 버스 앞에서 등원을 하기 싫다고 거부하며 너무 심하게 울어서요. 어떻게 할까요?" 사고가 아닌 것을 파악하고 나서야, 나는 주춤주춤 떨어졌던 심장을 다시 끌어올리며 말했다.
등원하지 않을게요. 그냥 출발하세요.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범준이의 영어 유치원 등원 4일째 되는 날의 아침이었고, 그 날 이후 나는 범준이를 그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다.
단지 아이가 등원을 하기 싫어한다고 해서 3일 만에 유치원을 그만둔 것은 아니다. 몇 군데의 영어 유치원 상담을 거쳐 유치원 입학을 준비하고, 3일 동안 아이를 등원시키는 기간 동안 내 마음속에서 크고, 작은 번민들이 계속해서 쌓여갔다. 이제는 준이까지 온몸으로 등원을 거부하고 있었기에 더는 판단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됐어. 우리 경험은 여기까지이다.'
나는 판단 미스를 겪었다. 하지만, 시행착오이자 경험이었기에 다시 한번 선택을 번복한 이유를 곱씹어 보고자 한다. (영어 유치원마다, 아이마다의 편차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알기에, 영어 유치원을 반대하는 글이 아니다. 내가 겪은 사례를 바탕으로 내린 개인적인 판단의 이유일 뿐.)
첫째. 영어 스트레스, 5살 범준이가 감내해야 하는 종류의 스트레스일까?
내가 선택한 영어 유치원은 프레젠테이션 수업으로 아이들의 스피킹 역량을 키워주는 데 초점을 맞춘 곳이었다. 나는 낯도 가리지 않고(어떨 땐 눈치까지 없고), 나서서 이야기 좋아하는 범준이의 성향상 아이가 이곳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등원 둘째 날 선생님이 전화로 말씀하시길 범준이가 밥을 먹다가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렸단다. '왜 우냐'라고 물어보니 '덥다'고 했단다. 그날 아침 바람이 유달리 차, 반팔 위에 가디건을 입혀 보낸 것이 생각이 났다. 실내에서는 오전 내내 더웠는데 준이는 '덥다'는 의사표현을 영어로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말을 못 하고 참고 있다가 울음으로 터뜨렸던 듯하다. 선생님과 나는 범준이에게 '적응기간 동안 한국말로 이야기해도 된다'고 여러 차례 일러주었지만, 자신이 한국말로 이야기해도 선생님은 모든 대답을 영어로만 하는 상황 속에서 아이는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담임 선생님과 통화를 마친 후, 나는 마음이 아팠다. 새로운 원 생활조차도 낯선데, 선생님과 기본적인 욕구를 표현할 의사소통조차 자유롭지 않다면 아이의 마음이 기댈 곳은 어디일까. 영어 유치원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겪는 짧은 통과의례라지만, '이것이 영어를 위해 5살 범준이가 감내해야 하는 종류의 스트레스가 맞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남았다.
그날 오후에 아이의 가방을 통해 독서 기록지를 전달받았다. 한 달 동안 읽은 모든 종류의 한글, 영어책을 기록해 원으로 전달해 달라고 했다. 월말에 가장 다독한 아이 3명에게 시상을 해주는 '독서 장려 프로그램'의 일종이라고 한다. 아쉽지만, 나는 이 프로그램의 취지가 전혀 공감되지 않았다. (좋아하는 책을 10번 볼 수도 있는데) 다독의 의미가 무엇이며, (엄마들이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할애하여) 모든 독서량을 기록하는 것은 무슨 공허한 행위이며, (아이들이 생각하기에) 책을 더 많이 읽은 일부 아이들이 상장을 수여받고 나면, 상장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이 읽은 책과 독서의 가치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둘째. 일반 유치원에서도 7세 아이들은 꽃핀다.
흔히들 영어 유치원의 꽃은 7세라고들 한다. 지난한 인풋의 시기가 지나면 아이들이 영어로 발화하고 아웃풋을 내는 7세가 온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일반 유치원에서도 7세 아이들은 꽃핀다.
일반 유치원의 인풋은 1) 습득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모국어를 통해 2) 아이의 연령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3) 국가가 제시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이며, 초등교육과 연계된 커리큘럼(누리과정)을 바탕으로 4) 신체, 의사소통, 사회관계, 예술경험, 자연탐구 등의 5개 영역을 고루 접하며 이루어진다.
'처음 학교로'에 제시된 일반 유치원의 세부계획안은 부모가 정독하기 힘들 정도로 방대하고 체계적이다. 걷기 하나를 해도 연령별에 따라 '그냥 걷기, 선을 따라 걷기, 물건을 잡고 걷기, 평행한 물체 위에서 걷기' 등으로 이루어진 식이다. 범준이가 다닌 영어 유치원에서도 외부강사가 자체적인 커리큘럼을 가지고 주 2회 Gym수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축적된 노하우로 다양한 신체영역을, 연령에 맞춰, 상위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교육하는가에 대한 판단을 하였을 때, 나는 '일반 유치원'이라고 생각했다.
범준이의 영어 유치원 시간표에는 글로벌 매너 시간도 있다. 그러나 5살 아이에게 필요한 기본 소양은 과연 글로벌 매너일까? 아니면 2019 누리과정이 사회관계 영역 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나를 알고 존중하기, 더불어 생활하기, 사회에 관심 가지기'일까? 어느 쪽이 더 아이의 발달 과정을 고려하고 있는가? 나는 다시 고심하기 시작했다.
셋째. 너무나 비싼, 그러나 학원에 지나지 않았던.
사실 범준이를 꼭 보내고 싶었던 영어 유치원은 따로 있었다. 그런데, 입학 등록을 마친 후 코로나 19가 확산되더니, 차일피일 개학이 늦어졌다. 다른 영어유치원들은 코로나 19가 성행하는 와중에도 개학을 강행하고, 온라인 수업이라도 진행한다는 소문들이 들려왔다. 그러나, 우리가 선택한 영어 유치원은 정부 지침에 따라 개학을 진행하려다가 늘어나는 고정비를 감당하지 못했고, 결국 '폐원'했다.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해 한, 두 달 아이들로부터 수업료를 받지 못하면 재정상황에 극심한 타격이 오고, 그것을 버텨내지 못하면 원의 존폐를 결정해야 하는, 수많은 영어유치원들이 직면했던 상황은 품 넓은 교육 현장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너무나 '학원'다운 일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 차선으로 급하게 알아보고 선택한 영어 유치원이 3일 만에 등원을 포기한 그 유치원이었다.
다행히도 대형 영어 유치원답게 환불체계가 명료했다. 등원일 수가 얼마 되지 않아 수업료의 2/3 가량을 돌려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입학지, 원복비, 가방비, 교재비, 교구비 등의 명목으로 지출된 비용만 100만 원 가량이었다. 마치 유럽의 어느 공립학교 원복과 같은 디자인의 가방은 비싼 만큼 예뻤다. 그러나, 내가 내 아이를 위해 구매한다면 절대 사지 않을 듯한 디자인의 것들이었다. 원에서는 일주일에 3번 이상은 몸채만 한 무거운 케이스형 가방에, 신축성 없는 바지와 와이셔츠, 넥타이를 매고 등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나마 원복을 사복과 믹스 매치하여 입을 수 있다고 하여, 나는 옷 가게에서 편하고 신축성 좋은 와이셔츠와 바지를 여러 벌 구비해두었다. 사소하지만 아이의 생활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는 요소들이 몇 번 목격되자 나는 그것들이 목에 낀 가시처럼 불편해졌다.
그 영어 유치원을 나온 아이들이 아웃풋이 좋다는 소문대로 라면, 범준이는 이번 선택으로 집중적인 영어 교육을 받을 기회를 잃었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나는 범준이가 5세 1년동안 원 생활을 잘 따라와준다면, 6세부터는 레벨테스트를 통해 입학할 수 있는 다른 영어 유치원으로 진학할 계획까지 세워두었으나 그것조차 무용지물이 됐다. 어쩌면 이것이 아이의 먼 미래의 학업까지 연관되는 중대한 갈림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5살 아이는 더 행복할, 더 편안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가 있다. 한, 두 시간 휙- 왔다가는 학원이 아닌, 아이들이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또 다른 생활터전이기에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양육자와 교육자적 책임감을 가지고 세심하게 임해주는 '유치원'에 아이를 맡기기로 결정했다.
범준이는 영어 유치원을 그만두고 며칠을 집에서 지내다, 오늘에서야 정부의 등교 일정 지침에 따라 일반 유치원으로 정상 등원했다. 통 넓은 고무줄 바지와 가붓한 가방을 멨으며, 그 안에 교재는 단 한 권도 들어있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이 요청한 며칠간의 발열상태와 건강상태를 체크한 건강 기록지, 그리고 실내화, 물통 등의 생활용품 몇 개를 담아 보냈다.
더 이상 범준이의 등원 모습은 상가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3층에 내리는 모습도 아니었다. 상추, 고추 등을 심은 작은 텃밭을 지나 놀이터 옆 단독 건물의 유치원으로 등원하는 범준이의 뒷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줄어든 아이의 가방 무게만큼이나 마음이 홀가분해짐을 느꼈다.
영어유치원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클까 봐 가여운 마음에, 하원 후에 집안 어른들이 아이에게 수용적으로 변했던 집안의 분위기도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범준이가 또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울 수도 있지만, 이제는 5살이 된 준이가 유치원이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감내할 수 있는 만큼의 환경을 부여해주었다고 믿기에 나는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내게는 여전히 교육열이 있고, 영어는 다른 방법으로 아이와 즐겁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계획이다.
사실 100만원이 너무 아까웠으나, 그보다 큰 경험을 얻었다 위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