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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온직 Sep 14. 2018

준이의 안전밸트 매기는 감동이였어.

'인에 박히게' 해보고 싶어? 그래, 기다릴게.

준이는 조작하는 모든 것들 좋아한다. 조작이라 하면 무언가를 끼고 빼고 꼽는 것, 열고 닫는 것, 조립하며 맞추고 분해하는 것, 두드리고 소리내고 만져보는 것 모두가 포함이다. 시중의 장난감 중에서도 다양한 조립물들과 공구놀이 등이 있는 것을 보면 여타의 아이들도 그럴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특히, 요즘은 안전벨트 매기에 빠졌다. 식탁 의자, 유모차, 카시트 등의 모든 안전 벨트를 할 때, 다른 누군가가 해주면 난리가 나고 자기 손으로 채워야만 직성이 풀린다. 처음에는 의욕만 앞서 혼자서 한참을 끙끙대다 '엄마, 안돼' 하기도 하고, 내 도움을 받고나서야 비로소 채울 수 있기도 하곤 했다. 그렇게 혼자 힘으로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날이 하루, 이틀 이어지더니 언젠가부터는 스스로 '짤칵' 야무진 소리를 내며 안전벨트를 매고야 만다. 밸트를 채울 때 마다 온 입은 앙다물고, 손끝에는 온몸의 전 힘을 다 싣는다.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탑재된 '모험심' 유전자를 잃고 산 지 오래된 엄마에게는 우리 아들의 '안전벨트 도전기'가 꽤나 감동적이고 충격적이게 다가왔다. 아! 서툴렀던 일도 반복하면 체득하게 되고,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불가능한 일도 가능해지는 구나. 연습의 힘! 어쩌면 세상 모든 어른들이 아는 그 진부한 명제를, 나는 세상에 태어나 마치 처음 안 사실인 냥 일종의 충격 속에서 되뇌이게 되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준이에게서 '연습의 힘'은 자주 목격되었다. 빨대컵 빨기, 물컵 쓰기, 신발 벗기. 처음에는 다 제 힘으로 해내지 못하던 일이었다. 나는 안다. 준이가 컸기에 어련히 알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 준이가 정말 노력했다는 것을. 친하지도, 익숙치도 않던 일상의 사물들을 제 양 손으로 다루는 날까지,  부단히 '내가!'를 외치며 홀로 사투를 버렸다는 것을. 다만, 언젠가부터인가 무언가를 '인이 박히도록' 해본 적이 없던 나는 그런 준이를 보면서도 체득의 신비를 발견하지 못하고, 별 다른 감흥도 느끼지 못해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나도 좋아하고 몰입하는 일이 있었다. '읽기'와 '그리기'이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좋아하는 책 몇권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읽고, 늘 비슷한 주제의 그림을 반복해서 그렸다. 가장 많이 반복해 읽은 책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제인에어'였다. 그리고 종이에 빈 공간만 보이면 강박적일 만큼 낙서류의 그림을 그렸는데, 항상 비슷한 눈매와 코, 입을 가진 여자의 얼굴을 그렸다. 그 어떤 창조력과 상상력도 곁들여지지 않고, 그림체의 발전도 없는 그런 그림이었다. 오죽하면 엄마가 어느 날 웃으며 말했다.


"얘는 똑같은 그림은 그렇게 열심히 그리는데, 한결같이 잘 그리질 못해."



이제와 생각하니 '재능'이 없었기에 익이 박히게 했던 그 일들로 내가 전문성을 띄는 일은 생기지 않았지만, 일정 부분 그 취향과 연계된 일을 나는 직업으로 삼았다. 무엇보다 내 일상 저변에는 '읽기'와 '그리기'가 심리적으로 멀지 않은 마음의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맨날 보진 않은데 같은 동네에 살아서 언제불러도 부담스럽지 않은 친구랄까. 잊고 있다가, 출출할 때 생각나면 꺼내먹는 창고에 쌓아둔 손 가는 '참 크래커'같은 과자랄까.






아직은 준이가 너무 어려 그 몰입이란 것이 취향과 연관되기 보다는 '생존'과 '발달 과업'에 가깝겠지만,  어찌되었든 언제나 '준이의 몰입'을 존중하고 늘 응원할 생각이다. 그런 태도를 잃지 않으려 한다. 내가 그것을 인내할 만한 성품과 인내를 가진 부모일까 의심스럽지만, 몰입과 반복, 그리고 그것이 주는 성취가 준이를 성장시킬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준이는 앞으로 스스로에게 주어진 발달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아냐, 내가!'를 외치게 될까. 좌충우돌 요란스레 사고를 피워도 '자, 이제 차 한잔 마시러 가자'는 검피 아저씨의 성숙한 기다림을 닮은 엄마가 되고싶다.



오늘 저녁에는 식탁 의자의 벨트를 채운 우리 준이를 꼭 안아주며 말해주어야겠다.

'안전벨트를 참 잘 채웠다'고. '준이의 그 노력이 너무나 멋들어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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