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온직 Jun 20. 2017

솜솜이를 만난 날 <출산 일기>

2016년 10월 11일 오후 1시 40분이었다.

 

38주 5일 보내던 차에 그날 새벽엔 평소의 배뭉침과는 확연히 다른 진통이 느껴졌다. 새벽부터 아팠지만 진진통인지 확실치가 않아 오빠는 우선 출근시켰다. 아침이 되니 진통이 더욱 거세진다. 설상가상으로 화장실에 가니 피가 울컥 쏟아진다. '이슬이다!'


약 7분 간격으로 진통 주기가 길긴 했으나 했으나 솜솜이가 나올 것 같은 예감에, 분만실 연락 후 서울대병원으로 출발했다. 택시 기사아저씨는 뒤의 저 홀로 탄 여자가 애 낳으러 가는 길인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근데 그 와중에 분만을 시작하면 금식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병원 지하 1층에 도착해 푸드코트에서 순두부찌개를 시켜먹었다. 그 와중에 진통이 조금씩 사그라드는게 느껴졌고 결국 분만실에서 '자궁문은 2cm정도 열렸으나 아직은 아니니, 집으로 돌아가'라는 소위 '빠꾸'를 먹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엄마, 아빠와 외식을 할 정도로 진통이 없었다. 하지만 곧 솜솜이를 만날 것 같다는 예감이 강렬하게 들었다. 결국, 새벽 3시부터 다시 진통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진통 주기가 짧아지질 않아 정말 버티다, 버티다 5-6분 간격이 되었을 때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출발을 마음 먹었다. 출발 전, 이번에 가면 진짜라는 생각에 꾸역꾸역 아픈 배를 부여잡고 샤워도 하고, 복숭아도 몇개 입에 구겨넣었다. 아침 10시 가량이었다.


가는 동안 어제와는 확연히 다른 극심한 진통이 몰려왔다. 주차장에 내려 진통이 올땐 걸음을 멈추고 흐느끼다, 진통이 그치면 걷다를 반복하며 드디어 분만실 도착. 내진 결과, 3cm정도가 열렸는데 오늘 분만을 해야한단다. 간호사가 처음 분만실에 들어오는 내 모습이 너무 의연해서 오늘 분만할 산모가 아니라 생각했는데, 내가 검진실 앞에서 혼자 끙끙대는 걸 보고서야 진통이 심하게 온걸 알았다고 했다.


오빠가 입원 수속을 하러 간 사이 간호사와 진통을 하는데, 진행 속도가 너무나 빠르단다. 순식간에 자궁문이 5cm가량 열리고 교수님이 오셔 양수를 터뜨렸다. 무통주사를 못 맞을 정도로 진행 속도가 빠르다는데 '제발 무통 맞게해주세요'라는 애원과 간청이 절로 나왔다. 전체 분만 과정 중 딱 두번이 가장 힘들었는데, 첫번째 극심한 고통의 순간이었다. 그 고통의 강도와 실체는 사실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에서도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정말 하늘이 노래질 듯 처음 느껴보는 그런 고통이었다. 그나마 겨우 맞은 무통으로 고통이 체감 1/6 가량으로 줄었다.


입원 수속을 마친 오빠가 온 후, 본격적인 힘주기를 시작했다. 이게 두번째 고비였다. 항문에 무언가 끼어 이걸 빼내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은데, 아이가 잘 내려오지 않았다. 혹은 내가 힘주기를 잘못한걸까? 그렇게 한시간 가량 힘을 주었을때 자궁문이 다 열렸단다. 교수님이 오시고, 솜솜이를 만날 시간이 되었다.


 '이번에 아기가 나와요. 힘주세요!'라는 말에 있는 힘을 다 주었으나, 맥이 풀려 실패. 이 때의 힘주기 실패로 범준이 머리에 피가 고이는 두혈종이 생겼다. 다시 한번 끙 하고 힘을 주자 무언가 후루루 휘말려 나오듯 아기가 나왔다. 아니, 쏟아져나왔다. 솜솜이가 세상에서의 첫 숨을 내뱉으며 울었고, 오빠가 아이의 탯줄을 잘랐다. 간호사가 아기를 내 품에 안겼다. 솜솜이의 첫 인상은 '고왔다'. 양수에 퉁퉁 불어 둥글둥글하고 못났을 것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과 달리 솜솜이는 갸름하고... 뭐랄까, 너는 세상에 나온 그 모습이 참 예뻤다.


솜솜아. 너를 만나기 위해 엄마, 아빠가 병원을 오가며 견뎠던 몇달간의 고생은 솜솜이를 품에 안은 순간 모두 보상받을 수 있었어. 한때, 34주만 채워나오길 바라며 네가 많이 약하고 작은 모습으로 만날 각오까지 한 우리였는데... 2.85kg로 조금은 작지만 너무나 건강하게 태어나준 네가 얼마나 대견하고 고마웠는지. 할머니, 할아버지를 포함한 온 가족들이 솜솜이의 세상과의 첫 대면을 축하하고 축복했단다.


 분만이 끝나고, 퇴근 후에야 내 분만 소식을 들은 엄마와의 통화. 엄마는 '웬만해서는 눈물이 나지 않는 사람인데 눈물이 난다' 하셨다. 나도 진통으로 너무나 아플때 할 수 있는 말이 '엄마...'라는 소리밖에는 없었노라고 이야기하며 울었다.


 그렇게 솜솜이, 아니 범준이가 우리의 첫아들로 태어났다. 2016년 10월 11일 오후 1시 40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고아빠의 젊은 날을 기억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