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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여기자 Nov 09. 2023

난소는 왜 '띠동갑'이 되었을까?...추정 이유 3

난소 나이 마흔다섯살…도대체 왜 이럴까?


'난소기능저하증'. 


 내 난소 나이를 알게 된 이후로 휴대폰 검색창은 난소와 관련된 단어들로 가득 찼다. 인터넷 카페에선 나 같은 사람을 '난저'라고 불렀다. 그런데 좀처럼 '난저가 되는 원인'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한 산부인과 의사가 운영하는 유튜브에선 AMH 수치가 저하되는 이유에 대해선 아직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떨어진 수치를 다시 올릴 수도 없으니, 원인을 연구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왜?'가 중요했다. 그게 설명되지 않으면 이 질문에 계속 갇혀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내 나름대로 이유를 유추해 보기로 했다. 



첫 번째 이유, 나이. 


 나이가 들수록 난소 기능은 떨어진다. 기능이 떨어진다는 건 난소에 남아 있는 예비 난자 수가 감소하는 걸 뜻하는데, 특히 30대 중반을 넘어서게 되면 난소 기능 저하가 가팔라진다. 문제는 난소 기능이 한 번 떨어지면 회복이 어렵다는 것이다. 난자는 여성이 태어날 때부터 약 000개를 가지고 태어나 매달 생리를 하며 배출하기 때문에, 줄기만 하지 늘지는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내 경우는 나이로만 설명하기엔 좀 심하다. 내 생물학적 나이는 32세, 난소 나이는 45세다. 나와 난소의 나이 차는 '띠동갑'인 셈이다. 나는 생리 기간도, 양도 규칙적인 편이었고, 작은 근종이 1~2개 발견된 적은 있었지만 자궁에 큰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었다. 건강검진은 5년 만에 했지만, 그 사이사이 1년에 한 번 정도는 산부인과에 들러 검진을 받았더랬다. 이런 큰 차이는, '나이+@'가 있지 않으면 논리적으로 설명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이유, 격무. 


 그렇다면 몸이 힘들어서였을까? 기자가 되면 '수습 기간'을 겪는다. 새벽 4시부터 경찰서를 돌고, 새벽 6시에 첫 보고, 밤 12시에 마지막 보고를 한다. 몇 달 동안 하루에 세 시간을 못 자고 2시간마다 보고를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많이들 몸이 망가진다. 심지어 밥 먹을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선배들도 있어서 남자들은 해골처럼 살이 빠지기도 한다. 내 주변에선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생리가 끊기는 건 너무나 흔한 일이었다. 그때는 20대이기 때문에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게 능사인 줄 알았다. 


 수습 기간이 끝나면 끝없는 취재-기사 마감-회식이 이어진다. 특히 사회나 정치 부서에 배정되게 되면 일주일에 한두 번은 부서 회식, 또 한두 번은 취재원 술자리가 이어져 한동안 건강을 돌보기가 쉽지 않다. 술도 술이지만 언론사에는 '초년병 때 최대한 굴려서 가르쳐야 한다'는 문화가 있어서 무슨 사건이라도 터지는 날이면 술 먹은 다음 날이라도 신입들이 제일 먼저 달려가야 한다. 늘 10분 대기조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점차 쌓였다. 추운 날엔 추운 데서 일하고 더운 날엔 더운 데서 일한다는 게 그렇게 몸을 축나게 하는지 그전엔 알지 못했다. 


 그 생활을 3년 넘게 했으니(지금은 부서를 옮겼다), 몸이 남아나질 않았던 것도 맞다. 게다가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감기+코로나 한 번 걸리지 않은 '슈퍼 면역력자'라 건강을 더 과신했는지도 모른다. 피곤하다 느끼긴 했어도 세게 앓은 적이 없으니 회사에서 돈을 내준다는데도 건강 검진조차 받지 않았던 것이다. 남들이 머리카락이 빠지고 생리가 끊겼을 때도 나는 큰 문제는 없었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이 내 몸도 속이 약해지고 있었다. 이걸 뒤늦게 알았다. 



세 번째 이유, 피임. 


 그러다 한 가지 기억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바로 피임에 관한 기억이었다. 20대 후반, 내겐 남자친구가 있었다. 좋은 사람이었지만 나와는 성격이 맞지 않았다. 생각이 맞지 않아 자주 싸웠고 금방 화해는 했지만 금세 또 싸웠다. 유머 코드는 잘 맞았다. 하지만 그걸로 결이 맞지 않는 사람과 한평생을 산다면 너무 지칠 것 같았다. 한창 사귈 때도 그걸 본능적으로 알았던 건지, 이 사람과는 아이를 가져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피임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쉬는 날 동네 산부인과에 가서 임플라논을 시술했다. 팔에 작은 막대를 넣어 호르몬을 조절하는 방식이었다. 팔에 막대기가 들어가는 느낌이 생소하고 아팠다. 그 병원 산부인과 의사는 "90% 이상의 피임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동안 하혈이 있을 수 있어요"라고 간단히 설명을 마쳤다. 의사 말대로 하혈이 시작됐다. 속옷에 생리 마지막 날처럼 피가 조금씩 묻어났다. 매일 그랬지만 많은 양은 아니었기에 '한동안'만 참으면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하혈이 멈추질 않았다. 도대체 '한동안'이 얼만큼이지? 얼마나 더 참아야 괜찮아지는 걸까? 무기력과 피로감은 더 심해졌고 반년쯤 지나 다시 병원에 갔다. 의사에게 하혈이 계속된다고 말했다. 의사는 "그걸 참았어요?"라고 말했다. 황당했다. 만약 의사가 "1달 이상 하혈이 계속되면 몸에 맞지 않는 것이니 병원에 돌아와서 임플라논을 빼야 한다"라고 말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동안 하혈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은, 내겐 "하혈 증세가 있을 수 있으니 좀 참아보라"로 들렸다. 의사라면 더 정확하게 이야기했어야 했다.

 

 임플라논의 원리는 배란을 억제하고 나팔관의 활동을 저해한다고 하여 피임을 유도하는 거라고 한다. 몸에 맞지 않아 계속 하혈을 하였으니, 아무래도 이게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 같다. 머릿속의 물음표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만약 임플라논을 시술하기 전, 이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해줬다면 나는 이 방식의 피임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누구라도 그러지 않겠는가. 


 피임 시술을 했던 이유는 만에 하나 원치 않는 아이가 생겼을 때 지우는 수술을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어른 여성'으로서의 책임감이었다. 그런데 그 책임감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고 생각하니 좀 억울했다. '피임을 하겠다고 한 건 나니까 내 탓인가?'라는 마음과 '여전히 이 사회는 여성의 재생산 문제에 친절하지 않구나'라는 슬픈 마음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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