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출산 기회'를 샀다...만 서른둘, 난자를 동결한 이유
"마흔세 살이라고..?!"
'커리어를 더 쌓고 싶어서', '더 잘 맞는 짝을 만날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다양한 이유로 난자 동결을 선택하는 시대다. 그런데 내가 난자를 얼린 이유는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았다. 난소기능저하로 인한 조기 폐경 위기. 내 몸에 남은 난자의 개수가 많지 않아 몇 년 뒤 폐경이 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론사에 입사 후 몸을 돌보지 않다가 5년 만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검진 항목에 난소나이를 측정하는 건 포함되지 않았지만, 10~20만 원 정도의 추가비용을 내면 AMH* 수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나이 만 서른 하나, 0.88이 나왔다. "그게 심각한 건가요?" 내가 물었다. 마흔세 살의 수치라고 했다. 의사는 "AMH는 양(Quantity)과 관련된 수치이지 질(Quailty)과 관련된 건 아니기 때문에 빨리 난자를 동결하라"고 권했다.
솔직히 믿고 싶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 의사의 말소리가 현실감 없이 다가왔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왜 난소가 실제 나이보다 10살 이상 많아졌을까? 술을 자주 먹어서? 몸이 힘들어서? 스트레스가 많아서? 검진 결과가 또다시 나에게 스트레스가 되었다. 휴, 모르겠다. 일단 놔둬보자. 문제를 회피하는 사이 그렇게 열 달이 흘렀다.
찬바람이 불자 정신이 들었다. 사는 지역에서 난임으로 가장 기술력 있고 비싸다는 병원 C를 찾았다. 앞서 검진받았던 곳과는 다른 곳이라 처음부터 검사를 시작해야 했다. C병원 의사는 "아직 나이도 어린데 왜 왔어요?"하고 웃었다. 내가 AMH 수치가 0.88이 나왔다고 말하자 표정이 굳었다. 그 표정을 보고 이 숫자가 가리키는 게 심각하다는 게 와닿았다.
그렇게 10개월 만에 다시 AMH 검사를 했다. 이전 검사가 잘못된 것이길 기도하며. 하지만 역시 인생은 기대대로 되지 않는다. 의사 표정이 더 심각해 보이는 것 같다. 이젠 0.62이라고 한다. 이번엔 마흔다섯 살의 난소 나이다. 일 년도 안 되는 기간 사이에 2살이나 늙다니. 억울하고 슬펐다.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운전대 앞에서 펑펑 울었다.
그날 밤, 정신을 차리고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미혼인 내가 난자 동결을 하려면 1회당 350~500만 원, 보험이나 지원이 안 되니 모두 내 주머니에서 나가야 한다. 내 경우, 난소 수치가 낮아 한 번에 뽑을 수 있는 난자가 적어서 20개를 모으려면 4~5번은 반복해야 하니 최소 2000만 원이 들 거라고 했다. (사실 20개도 충분하지 않고, 40개 정도는 모아야 70%의 확률로 출산이 가능하다고 C병원 의사는 말했다.)
수중에 2000만 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과연 그만한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나?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써서 내 집 마련의 꿈이 더 늦춰지는 건 아닐까? 상술은 아닐까? 여러 생각이 오갔다. 그러다 이상한 용기가 피어났다. 내 인생, 대학 진학이나 취업, 대학원 진학 같은 고비고비를 넘을 때마다 계산해 보면 돈 1000만 원씩은 썼던 것 같다. 출산이라는 한 고비를 넘기 위해서 지불하는 수업료라고 생각하자.
제일 싼 소형차가 2000만 원 정도 하던가? 에르메스 가방이 그 정도 가격이던가? 그래, 나는 결심했다. 에르메스 가방을 '산 셈 치고' 난자를 얼려서 내 유전자를 세상에 남겨보기로. 이 적은 가능성에 투자해 보기로.
*AMH란?
Anti-Mullerian Hormone의 약자로 뮬러관을 퇴화시키는 호르몬이라는 의미다. 뮬러관이란 엄마 뱃속 배아 단계일 때 여성의 생식기관으로 발달하게 되는 관이다. 이런 AMH가 검사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은 난소의 기능을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AMH는 난자의 주머니인 난포에서 분비된다. 그리고 이는 태어날 때 원시난포 형태로 약 2백만 개 정도 가지고 태어나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가 줄어들게 된다. 즉, AMH의 수치가 높다는 것은 난소에서 배란될 난포가 많다는 것이고, 낮다는 것은 배란될 난포가 없다는 것으로 폐경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AMH (건강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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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익명의 여기자입니다. 난자 동결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합니다. 서울시가 여성들의 '난자 동결'을 지원하겠다 발표하면서 관심이 높아졌는데, 제가 직접 해보니 궁금증을 해소할 만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더군요. 얼마나 많은 분들이 정보 부족으로 힘드셨을까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의 경험담을 시작으로, 난자 동결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정보들을 정리해서 올려보려고 합니다. 그럼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