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를 보며 직업의식을 생각하다

책임감은 직업의식의 자양분

by 안기자

내가 유료로 구독하고 있는 OTT는 넷플릭스다. 흑백요리사2가 작년 말 릴리즈 됐고, 인스타그램의 피드를 흑백요리사 게시물이 뒤덮을 때까지는 보지 않고 있었지만 연말의 변덕처럼 프로그램을 정주행 했다. 시즌1과는 차별점을 두려고 변주를 한 티가 많이 났다. 그럼에도 재미를 챙기기 위한 도파민 터지는 편집은 연속적으로 나왔다. 이번에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언론사 입사를 생각했을 때 처음으로 생각했던 지망은 드라마 PD였다. 예능 PD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순발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때쯤의 나는 딱히 그런 사람은 아니라고 혼자서 판단했다. 촬영 현장 특성상 변수가 많고 팀 단위로 이뤄지는 일의 흐름을 고려해 보면 PD가 되었어도 고생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는 뜨내기였다. 촬영 현장을 모르는 상태였음에도 필기 합격에 목을 매던 시기였기에 언론사 입사 시험을 준비하는 것에만 열중했다. 기획안도 써본 적이 없었다. 영상을 다루는 방법도 몰랐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에 드라마 PD가 되기 위한 준비를 제대로 했던 것 같지는 않다. 편집을 배워보겠답시고 파이널컷 학원에 다녔지만, 지금은 기억나질 않는다.


3년간 언론사 입사 시험을 쳤지만, 번번이 최종면접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원인을 굳이 따져보면 언론사에 수십 년을 몸담아온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부족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특히나 TO가 극악이었던 만큼 수많은 경쟁을 뚫을 정도로 특출 난 인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기자로서 언론사에 몸을 담으면서 느꼈던 것이 있다. 이 직업은 매일 똑같은 루틴이 반복되는데 이 일들의 중요도는 결코 낮지 않으며, 늘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뽑아내야 하는 일이다. 요구되는 자질은 매일매일 일을 쳐낼 수 있는 '성실성'과 그걸 아주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 '끈기'다. 의미 있는 단독을 쓰려면 결국 뭐 하나라도 더 확인해야 하고 의심해야 하고 무엇보다 물어보고 헤쳐보고 다녀야 한다. 이런 자질이 없으면 '일잘러'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이제는 않다.


언론업 종사자로서 저점이 낮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안다. 사람들은 기자라고 하면 전문직처럼 생각한다. 사실 전문직은 절대 아니다. 나는 늘 자조적으로 말한다. 자격증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중소형 매체는 흔한 시험조차 치지 않으므로 그렇게 볼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물론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요소에 대해 접근할 권리가 타인보다는 수월한 게 맞지만, 그건 일이니까 해야 하는 것뿐이지 우리 직업군의 특권이라고 보기는 좀 힘든 면이 많다.


특히 채용 프로세스를 보면 이런 점은 더 두드러진다. 경력 기자의 경우 출입을 담당할 기자가 없을 때 동료의 추천을 받아 채용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빈자리를 채워 넣기 위한 목적이 더 두드러지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점프'를 할 때도 동료의 평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객관적인 지표보다 주관적 지표가 더 크게 작용한다는 걸 늘 느끼고 있다. 이게 나쁜 것은 아니다. 나도 주관적으로 좋은 평을 받아 추천을 받았던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다만 사실상 '진입장벽' 개념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터에서 유지해 왔던 태도가 타인의 귀감이 될 수 있거나, 일에 임하는 태도가 진지할 때 기회가 열리기는 하지만 보물 같은 기사가 꼭 CP에서 나오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CP라는 이유로 기사 조회수는 거의 10배 차이가 난다. 어떨 때는 CP 매체끼리도 우라까이를 한다. 그러나 조회수는 취재를 열심히 해서 쓴 중소형 매체나 전문지보다 낮게 나오는 게 이 업계의 맹점이다.


묵묵히 일하는 것은 기본이라는 점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다. 그 와중에 출입처나 동료들에게 알려지는 것도 중요하다. 브랜딩을 통해 매체력을 보완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흑백요리사2를 보면서 그들의 직업의식을 엿볼 수 있었던 건 좀 행운이었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몇몇 에피소드들이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흑백요리사 에피소드 중 흑백 팀이 100인 식사 미션을 수행할 때 후덕죽 셰프가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일에도 아무런 불평불만이나 권위 의식 없이 팀원으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에서 감명을 받았다. 요리사에게는 도구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수십 년간 사용해 왔던 가치 있는 칼을 누군가가 쓰고 있다면 화가 날 법도 한데 '잘 쓰고 있네'라며 의연하게 넘어가는 태도에서도 품격이 느껴졌다.


이 외에도 흑백 팀원끼리 2인이서 팀전을 치렀을 때도 좋았다. 손종원 셰프가 요리괴물과 팀을 이뤘을 때 변수가 발생했을 때 본인이 책임자로서 있다는 것은 변수가 발생해도 이를 수습하기 위함이라고 했을 때, 책임감의 무게를 새삼 생각했다. 그들 또한 숱하게 당황스러운 상황을 겪어봤기에 의연하게 대처할 능력치를 쌓았을 것이다. 이런 능력은 관록이 쌓이지 않으면 힘든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상대적으로 나는 이 일을 오래 하지는 않았다. 고작 6년 차일뿐이다. 관록이 쌓이면서 직업의식이 높아진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선배들이 무언가 일을 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그 연차가 돼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연차가 쌓일수록 부담은 늘어나고 후배들이 치고 올라올 때 초조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선배들이 느꼈을 중압감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됐다.


책임감은 어떤 일을 진지하게 하려 할 때 꼭 필요한 자질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책임감을 통해 기자로서의 생활을 돌이켜 보는 수준에 이르렀다. 누군가를 욕하기 이전에 내가 먼저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거만하게 굴고 있지 않은지, 타인의 능력을 폄하하면서 나의 부족함을 채우려 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돌이켜봐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런 태도가 쌓여 성숙한 사람이자, 괜찮은 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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