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있어 주는 친구의 소중함
부서 선배들께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직한 지 3개월이 되던 시점이었다. 고이 모은 월차를 영혼까지 끌어모아 사용해도 정상적으로 회사에 복귀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병가를 쓰기로 했다. 갑상선암 환자들이 모여있는 카페도 가입했다. 입원해 있는 기간에는 간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건강검진센터에서 예약해 둔 보라매병원 외래 진료 날이 빠르게 다가왔다. 12월에 수술을 곧바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부모님이 곁에 있는 게 아니기에 망설여졌다. 나를 위해 올라올 수는 없었다. 사실 비참하다는 생각보다는 보호자의 중요성을 그때 새삼 느꼈던 것 같다. 결국 엄마가 나를 위해 잠깐 일을 쉬기로 했다. 그렇게 2024년 1월 18일이 수술하는 날로 잡혔다.
약 한 달 반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 기간에는 운동을 꽤 열심히 했다. 집 근처 헬스장에서 인터벌 러닝을 열심히 했다. 보라매공원도 엄청 걸어다녔다. 사실 무섭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다. 수술 잘하고 복귀를 하면 될 거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새해가 밝았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들은 갑상선암은 별것 아닌 질병이었다. 5년 생존율이 100%에 육박하는 암이라고 했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갑상선암 발병 확률은 여성 기준 6~7% 수준이다. 100명 중 93명은 안 걸린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별 것 아니라는 말을 하곤 했다. 위로를 위한 거였겠지만 사실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가끔 주변 보험사 분들은 그런 식의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본인이 걸렸으면 좋겠다고. 암 진단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정말 별 거 아닌 암이라는 얘기들을 하는 그들은 암에 걸려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무례한 말이었지만 본인의 일이 아니면 체감하기가 힘드니 그러려니 했다.
수술을 위해서 수많은 검사를 했다. 방사능이 나온다는 원통형 기계에 몸을 뉘일 때는 너무 무서웠다. 심전도 검사 같은 것들을 하고, 흡연과 음주 여부 등을 묻기도 했다. 중간중간 정혜가 병원을 같이 가줬다. 누군가가 옆에 있어준다는 게 정말 큰 일이구나 생각했다. 이 일 이후로는 친구들이 병원에 같이 가자고 하거나, 검사를 앞두고 있을 때 의식적으로 챙기려고 노력을 많이했다. 친구들에게 얼마나 큰 일인지를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