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를 수령하고 펑펑 울었던 그날
건강검진센터로 가는 발길은 무거웠다. 왜 이 나이에 암이란 병에 걸렸는지, 술을 많이 먹은 게 문제였던 건지 원인을 나름대로 찾으려 했다. 생각해 보면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스트레스를 계속 받았다. 술을 먹고 집에 들어올 때마다 몸이 정말 너무 안 좋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때는 만성피로라고 느꼈던 것들이 암의 증상일 줄은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버스를 타고 갔다.
그날따라 일이 안 풀리는 느낌이었다. 센터에 가서도 일이 수월하지는 않았다. 슬라이드(세포 조직을 채취해 검사한 키트)를 받은 후 출입처 미팅을 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마음이 조급했지만, 1시간 반 정도를 대기석에서 기다렸다. 1시간 정도를 기다렸지만, 호명이 있질 않아서 기다렸는데 등록이 누락됐던 거였다. 그러고 나서 20분 정도를 더 기다리니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세포를 채취했던 진료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정말 허무하게도 30초 남짓한 대면이 끝난 후에야 내 세포가 들어있는 슬라이드를 수령할 수 있었다.
병원 예약 진료를 예약하려 1층 원무과 옆에 있는 작은 방에 들어갔는데 직원분이 서울대병원이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보라매병원이 걸어서 3분 거리에 있었기에 그냥 집 근처로 예약하겠다고 했다. 예약 담당자는 대학병원이 그래도 낫지 않겠냐고 했지만, 외래나 이런 편의를 고려했을 때 빠르게 갈 수 있는 병원이 좋겠다는 생각은 확고했다. 결과적으로 이 판단이 맞긴 맞았다. 수술 이후 수술 부위에 물이 차기도 했고, 회사 출근 전 잠깐 갔다 오기에는 집 근처 병원이 편했기 때문이었다.
이상하게도 진료 예약을 끝내고 나오는데 눈물이 너무 심하게 났다. 눈물을 그렇게 펑펑 쏟은 이유는 아직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서울에 올라온 지 5년이 되던 시점이었고, 혼자 있는 게 이미 익숙해진 때였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편이라 자부했는데 그날만큼은 좀 많이 외로웠던 것 같다. 너무 심하게 우니까 수납하러 온 사람들이 안쓰럽게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쪽팔린 걸 정말 싫어하는데 그날은 그냥 소리를 내면서 짐승처럼 울었다.
사실 갑상선 유두암은 예후가 꽤 좋은 암이고 취재 분야여서 그걸 알고 있었다. 5년 생존율은 100%에 수렴하는 암이고 오히려 관리만 잘하면 괜찮은 암이라고 알고 있었다. 근데 알고 있는 것과 내가 막상 걸리는 건 또 다른 영역이었다. 아무런 예고 없이 불현듯 찾아오는 불안감도 이때부터 심해졌던 것 같다. 젊다는 이유로 내가 병에 걸릴 것이란 생각을 안 했던 것도 자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껏 그냥 넘겼던 몸의 신호들이 두려웠다. 전이가 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과 이제 보험 가입도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생각들이 엄습했다.
출입처 약속에 나가려 가양역에서 시청역으로 가는 내내 울어서 눈이 심하게 부어있었다. 약속에는 10분 정도 늦었던 기억이 난다. 늘 그렇듯 술 한잔하자는 말을 했지만 말을 꺼내야 했다. "사실 늦었던 건 건강검진센터에 다녀와서다. 암이라는 소견이 나와서 이제 술은 자제를 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갑자기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그날은 도저히 마감하기가 힘들 것 같다고 팀장한테 말했다. 집에 들어가는 길이 너무 쓸쓸하고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