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쯤 이직을 하고 집중했던 부분 중 하나는 일 잘하는 노하우를 흡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직한 회사가 7년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AUM 4,000억 원을 달성하며 급속히 성장하면서도 큰 잡음 없이 자본 시장 내에 자리 잡을 수 있던 이유는, 분명히 일 잘하는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짧은 기간이지만 정말 많은 인사이트를 얻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인사이트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글로 남겨봅니다.
바보 같은 질문 하지 않으려 노력하기
심사역은 기본적으로 질문하는 직업입니다. 또 질문은 그 사람의 수준을 나타내죠. 그렇지만 투자 검토를 하는 입장에서 시간에 쫓기다 보면 이미 자료에 있는 것을 질문한다거나, 무의미한 질문을 한다거나, 조금만 리서치해보면 나오는 것을 질문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수준 낮은 질문들을 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런 질문들은 나의 수준을 낮추고, 게으름을 강화하며, 질문받는 사람의 시간을 낭비하게 합니다. 질문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찾아보고, 바보 같은 질문이지는 않을지 두려워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구조화된 질문 + 질문의 의도를 알려주기
반대로 좋은 질문은 무엇일까요? 좋은 질문은 질문자의 의도가 정확히 전달되는 질문, 답변자가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있게 하는 질문, 질문 자체가 도움이 되는 질문입니다. 그를 위해서는 첫 번째, 구조화된 질문을 해야 합니다. 표로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표 형식을 만들어서 전달하거나, 선택지가 있는 질문이라면 2~3가지의 선택지를 함께 제시함으로써 질문의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질문자의 의도를 정확히 알려주는 것입니다. 질문의 의도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고 답변을 요구하는 것은 권위적이며 좋은 답변을 듣는 데에 불리합니다.
미팅에 100% 집중하기
스타트업과 미팅 시 100% 집중하는 것은 vc로서 좋은 전략입니다. 가끔 몇몇 이유로 미팅에 집중하기 어려울 때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 집중해야 합니다. 스타트업 투자는 여러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미묘한 것이기 때문에 100% 집중하지 않으면 좋은 투자 기회를 놓치기 쉽습니다. 또 여러 단계에 걸쳐 투자하는 하우스들은 향후 투자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창업자분들께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미팅에 100% 집중하는 것은 기본적인 태도이자 좋은 전략입니다.
"진짜 맞나?" 검증, 또 검증하기
사람들은 대부분 지금까지 시간 투자한 것을 뒤집기 싫어하는 경향과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투자의 관점에서 아주 위험한 경향성입니다. 구체적인 예시는 이렇습니다. 본인이 추천하여 투자팀 IR을 진행했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투자 건이 있습니다. 본격적인 투자 절차 진행을 위해 투자심사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우연히 문제가 될만한 무엇인가를 발견한 경우에 위에서 말씀드린 경향성 대로 그것을 무시한다면, 그 투자는 실패할 확률이 높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투자한 시간과 상관없이, 내가 믿고 싶은 것과 상관없이, 일반적인 의견들과 상관없이 이게 진짜 맞는 것인가 끊임없이 검증하고 또 검증해야 합니다.
의도를 파악하고, 기한을 지키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심사역은 독립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지만, 동료와 협업할 때도 많습니다. 이 경우에 효과적인 협업을 위해서 세 가지를 기억하면 좋습니다. 업무를 요청받아서 할 때는 그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질문이 필요하다면 시간을 들여서라도 질문을 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기한을 지키는 것입니다. 기한을 지키기 위해서는 본인의 역량을 정확히 파악한 상태에서 이 일을 끝낼 수 있는 기한을 역으로 제시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무작정 빨리하는 것보다 퀄리티를 위해 적절한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동료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을 발견하여 말해준다면 앞으로도 계속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다른 프레임으로 전환하기
심리학에서 더블 바인딩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질문자가 이미 원하는 답을 정해놓고, 답변자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질문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기법을 의미하는데요. 예를 들어, '~~ 한 상황에서 a를 하는 게 나을까요? b를 하는 게 나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은 사람은 보통 a와 b 중에 선택하게 됩니다. 답변자는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질문자의 프레임 안에 갇힌 꼴이 되지요. 이렇게 되면 그 논의는 상대방의 주도 하에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투자를 위한 협상을 할 때, 투심위원의 날카로운 질문을 받을 때 등 선택지 안에서 고민하지 않고 프레임을 전환하는 연습을 한다면 논의를 주도할 확률이 높아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