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주부 Jul 27. 2020

스페인 소매치기 사건

여권, 현금, 카드 모두 분실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퇴사하고 자유 시간이 많아진 탓에 얼마 전부터 가족 여행 사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페인 바르셀로나 사진을 발견하고는 그 당시 추억에 빠져들었다.


2015년 여름이었다. 당시 러시아에서 근무 중이었고 러시아에서 맞는 두 번째 여름이었다. 우리 가족은 여행지를 선택할 때 가족회의 따위는 하지 않는다. 우리 가족이 여행지를 선택하는 방법은 개인 취향은 철저히 배제한 비행기표 값이 가장 싼 국가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간택된 나라는 스페인이었다. 러시아에서 왕복 비행기표가 120불에 나왔다. 4인 가족 왕복 비행기 표값이 50만 원 정도 되어서 고민하지 않고 바로 예약을 했다. 그리고 숙소는 식비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부엌이 딸린 레지던스 호텔을 예약했다.


싼 비행기 표다 보니 직항이 아닌 오스트리아 빈에서 하루 동안 경유해서 가는 비행기였다.

   

비엔나 국제센터가 보이는 노천카페

우리는 비엔나 국제센터가 보이는 노천카페에 앉아 시원한 강바람을 느끼며 오스트리아 로컬 맥주를 마셨다. 물론 딸아이들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강에 있는 모래밭에서 뒹굴면서 놀았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빈 국제공항으로 향했고 비행기 안에서 맛있는 파스타 한 그릇을 먹고 나니 벌써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호텔로 가는 방법을 폭풍 검색했다. 택시를 타는 방법과 버스를 타는 방법 등이 있었는데, 우리는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갔다. 호텔 근처 버스 정류장에 우리는 무사히 내렸고 호텔을 찾기 시작했는데 호텔 간판이 너무 작아서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더위에 지친 아이들과 아내를 나무 그늘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 나는 주변 상점에 들어가서 호텔의 위치를 물었다. 워낙 작은 레지던스 호텔인지라 대부분의 상점 직원들은 몰랐고,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호텔을 찾을 수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아내와 아이들에게 돌아왔고 같이 호텔로 향했다.


자기야 체크인해야 하니깐 여권 좀 가방에서 꺼내 주라.


아내는 가방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아까 전에 호텔 찾으러 갈 때 가져간 것이 아니냐고 물어봤다. 가방이 무거워서 둘째가 타는 유모차 손잡이에 가방을 걸어놓고 호텔을 보러 갔는데, 그럴 리가 없다고 아내에게 물었다. 순간 아내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자기야 방금 전에 어떤 젊은 커플 두 명이 나에게 다가와서 큰 지도를 펼쳐 놓고 길을 물었는데, 그때 소매치기당한 것 같아.

갑자기 세상이 노랗게 보였다. 그 가방 안에는 우리 가족 모두의 여권과 신용카드, 그리고 여행 중에 사용한 현금 1,000유로 정도가 들어있었다. 그나마 다행이게도 휴대폰은 손안에 쥐고 있었다. 바로 스페인 대사관에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지금 막 소매치기를 당해서 여권을 재발급해야 하는데 어떻게 좀 도와주세요" 스페인 영사 직원은 늘 겪는 일이라는 듯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권 재발급하시려면 마드리드 대사관으로 오늘 오셔서 임시 여권 발급받으시면 돼요" 그래서 말했다. "제가 지갑을 전부 다 분실해서 그런데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까지 어떻게 갈 수 있나요? 바르셀로나에서 도움을 받을 수는 없나요?" 그러자 대사관 직원은 너무나도 사무적인 목소리로 그건 제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찌나 화가 나던지, 대한민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되셨을 텐데 남일처럼 말하는 대사관 직원의 말투가 너무 섭섭했다.


어떻게 하면 마드리드에 갈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렸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마드리드 기차표값 50만 원을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한국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휴대폰을 통해 근처에 한국 여행사가 있는지 찾았다. 다행히도 한국 여행사를 찾았고 해당 여행사에 전화를 드렸다.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고 제가 한화로 돈을 이체해 드릴 테니 유로로 좀 환전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여행사 사장님은 정말 친절하시게도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고, XX호텔 로비에서 11시에 만나자고 하셨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외치면서 원화 200만 원을 송금해 드리고 호텔 로비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약속 장소에 여행사 사장님이 나타나지 않으시는 것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기는 꺼져있었고 계속해서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아, 하느님 오늘 두 번씩이나 제게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빈손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없었다. 사장님이 꼭 오실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1시간 동안 로비에서 계속 기다렸다. 그런데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여행사 직원인데요. 사장님이 갑자기 일이 생기셨다고 여행사로 직접 오시면 돈 전달해 드리라고 하셨어요" 너무 기뻤다. 40도 가까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난 2km 가까운 거리를 달려갔다. 땀에 범벅이 되어 여행사에 도착을 하니 전화주신 직원분이 앉아 계셨다. "호텔에서 많이 기다리셨죠? 우리 남편이 정신이 없어서 그래요. 이해해 주세요." 하시며 환전한 돈을 내게 전달해 주셨다. 너무나도 감사했다. 그래서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연신 인사를 드렸고, 사례비로 100유로를 드리려 했는데, 한사코 받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미안하면 나중에 바르셀로나 여행 또 올 때 저희 통해서 호텔이랑 비행기 예약해서 오셔요~" 그렇게 하겠다며, 다시 인사를 드리고 가족들에게로 돌아갔다.


가족들을 데리고 우리는 마드리드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대사관에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하면 여권 재발급도 못하고 토요일, 일요일을 마드리드에서 보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우리는 30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화 상에 통화했던 것으로 보이는 그 불친절한 여직원에게 여권 임시 발급을 요청했다. 여직원은 저쪽 여권 사진 기계에서 여권 사진을 찍어 오라고 말했다. 우리는 여권 사진기 쪽으로 갔는데, '헉, 여권 사진을 찍는데 2유로씩 필요한 것이 아닌가' 임시 여권 하나 만드는데 거쳐야 할 과정이 너무 많아서 정말 힘이 쭉 빠졌지만 어찌하랴 시키는 대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대사관 창구 직원이 우리 둘째 (당시 42개월) 사진을 보더니 여권 규격에 맞지 않는 다면서 다시 사진을 찍으라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둘째 딸아이는 사진 속에서 해맑은 모습으로 침을 흘리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속이 바짝 타올랐다. 지금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동전이 두 번 더 찍을 수 있는 4유로 밖에 안 남았고 대사관 문 닫을 시간이 다되었기에 심혈을 다해 둘째와 사진을 찍었다. 둘째의 귀가 잘 보이도록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사진 찍는 순간 눈을 감지 않고 입을 다물라고 42개월 밖에 안된 어린 딸에게 큰소리쳤다. 딸아이는 아빠의 그런 모습이 어찌나 무서웠던지 나중에 임시 여권에 들어간 딸아이의 여권 사진을 보니 눈물이 눈에 가득 차 있었다. (미안하다 딸아. ㅠㅠ) 그렇게 20분 동안 사진 찍느라 진을 뺀 우리는 마감 10분 전에 가까스로 서류를 제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임시 여권을 받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우리 가족은 너무 기분이 좋았다. 참 단순한 가족이다. 소매치기당한 것은 금세 잊어먹고 시원한 급행 기차 안에서 맥주와 과자를 먹으니 이리도 행복할 수가! 여권도 새로 발급받았고 여행사 사장님이 주신 돈도 주머니에 있었고 남부러울 게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시작된 여행이었지만, 바르셀로나는 우리 가족에게 정말 많은 추억과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코로나로 인해 당분간 여행은 힘들겠지만, 기회가 또 온다면 가족들과 그때 그 장소에서 다시 한번 추억을 쌓고 싶다. (물론 소매치기 추억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바르셀로나 한 골목(소매치기 당한 후인데도 아직 가방을 유모차에 걸고 있다 ㅠㅠ), 파밀리아 성당, 바르셀로나 호텔 근처 놀이터
바르셀로나 해변, 카사밀라, 구엘공원
바르셀로나 구장, 파밀리아 지하 성당 내부, 카탈루냐 광장 옆 KFC


작가의 이전글 10. 돈 아끼기의 달인 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