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근검절약의 여왕이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종종 된장국을 끓였는데, 육수를 낸 멸치들은 바로 버리지 않고, 항상 따로 보관하셨다. 화장실에 가면, 화장지는 세 칸 이상 쓰면 안 되었고, 손 씻은 물은 변기에 넣어 물을 아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나와 밥 먹기를 싫어했다. 이유인즉슨 나의 반찬이 별 볼일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식비를 아끼기 위해 김치, 콩나물과 같은 반찬만 싸주셨다. 분홍색 소시지와 달걀말이, 미니 돈가스 등을 싸 오는 친구들이 난 부러울 다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반찬 뚜껑을 열었는데, 친구들이 함성을 질렀다.
"얘들아 이리로 와봐!" "손주부가, 도시락 반찬으로 오징어 튀김을 싸왔다!"
내가 매일 반찬 좀 맛있는 걸로 싸달라고 했더니, 어머니가 깜짝 선물로 반찬을 준비하셨나 보다.
오징어 튀김을 한 입 베어 먹은 친구들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어, 오징어 튀김 맛이 왜 이래?"
친구는 오징어 튀김을 뱉었고, 씹다 버린 오징어 튀김옷 뒤에는 다름 아닌 멸치 머리가 있었다.
어머니는 오징어 대신 국물 낸 멸치를 재활용하여, 멸치 튀김을 창조하신 것이었다.
어머니의 꿈은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얼마를 모으고 싶은지는 잘 몰랐다. 찢어지게 가난한 7남매 장남에게 시집와서 그런 꿈이 생겼나 보다. 그냥 너무 가난하게 살아서 어머니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살림을 살면서 투잡을 뛰기 시작했다. 집에서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고, 근처 학교와 병원에서 봉사활동도 했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그렇게 30년을 눈코 뜰 새 없이 살았다. 새벽에는 성당에 가고 아침에는 살림을 살고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틈틈이 학교와 병원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부자가 되어 편안한 삶을 살게 되는 때를 기다렸던 것 같다.
결혼 30주년이 되던 해에 어머니는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위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았다. 암 진단을 받고 나서도 어머니는 평소처럼 열심히 살았다. 매일 성당에 나가고,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는데, 어머니는 당신을 위해 돈을 쓰기 시작했다. 평생 아끼기만 했던 어머니는 해외여행 티켓을 끊더니, 오랜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 그동안 사고 싶었던 가구를 과감하게 구매하고, 20년 가까이 사용한 냉장고도 최신식 대형 냉장고로 바꿨다. 암 선고를 받고 난 후 어머니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돈을 썼다. 돈이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었다. 그렇게 3개월을 행복하게 살고 어머니는 2010년 여름에 하늘의 별이 되었다.
우리 모두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왜 돈을 많이 벌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고, 일단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뭐든 가능케 해 주니깐 말이다. 돈만 있으면, 이 뭐 같은 회사를 때려치워도 된다. 왜 이렇게 일을 못하냐고 잔소리하는 상사 면전에 사표를 던질 수도 있다. 돈 많은 부자가 되면, 맞벌이하는 아내에게 거지 같은 회사 당장 때려치우라고 말할 수도 있고, 아이폰 사달라고 칭얼 되는 아이에게 최신형 2 테라 바이트 아이폰을 가격표 따위 보지 않고 사줄 수 있다. 친구들과 만나 술 한잔 할 때면, 집에 갈 시점에 신발끈을 잡는 대신 계산서를 잡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열심히 살면 정말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벌어야 부자가 되는 것인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빠른 속도로 적응해 버린다.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에 거지 같은 군생활도 할 수 있고, 엄한 시어머니 밑에서도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욕망하는 돈의 액수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늘어만 간다. 10억만 모으면 행복해질 것 같은데, 막상 10억을 모으면, 30억은 모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옛날에는 외식으로 짜장면에 탕수육만 먹어도 행복했는데, 이제는 짜장면만으로는 성이 안 찬다. 옛날에는 제주도와 부산 바다만 보아도 행복했는데, 이제는 해외여행은 가줘야 행복하다. 예전에는 3성급 비즈니스호텔에 묵어도 행복했는데, 이제는 멋들어진 조식이 나오는 5성급 호텔에 자야 행복하다. 이처럼 돈이 늘어남과 동시에 삶의 수준도 올라가고, 올라간 삶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더 필요해지는 상황이 다가온다.
초등학교 시절, 성당에서 복사를 했다. 복사는 신부님 옆에서 미사 집전을 도와주는 학생들을 말한다. 한창 잠이 많은 시절에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매일 미사를 나갔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매일 복사 임무를 수행하면, 신부님이 주말마다 짜장면을 한 그릇 사주셨기 때문이다. 요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딸아이들에게 매일 미사를 나가면, 주말에 짜장면을 사주겠다고 하면 미사에 갈까? 호텔 뷔페에 데려간다고 말해도 아침에 안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 수단이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수단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수단이다. 그런데, 주식 투자를 하다 보면, 종종 수단과 목적이 혼돈되는 경우가 온다. 주식을 일단 매수하고 나면, 우리는 보유효과에 의해 주식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주식과 사랑에 빠지면, 내가 산 주식이 얼마나 좋은 주식인지에 대한 정보만 끌어모으게 된다. 누군가가 내가 산 주식에 대해 욕이라도 하면, 내가 욕먹은 듯 입에 거품을 물며 그 주식을 변호한다.
우리가 주식을 산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돈을 버는 이유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살고 싶은 삶을 누리기 위해 돈을 번다. 돈을 여유로운 삶을 누리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10억, 30억, 100억이라는 목표로 변질될 때, 돈은 자신을 더 잘 사용해 줄 주인을 찾아 떠난다.
주식 강의를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이거 언제 팔아요?"다. 주식을 팔아야 하는 시기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가 팔아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세상 그 누구도 이 주식이 앞으로 오를지 떨어질지는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연준 의장과 재무부 장관도 미래 금리가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주식을 팔아야 할 시점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다. 프랑스 파리의 노천카페에서 갓 구운 크로와상에 커피 한 잔 하고 싶을 때, 스위스 루체른 호수에서 헤엄치는 백조들을 바라보며 맥주 한 잔 하고 싶을 때, 친한 친구들과 오마카세에서 맛있는 스시와 향기로운 사케를 마시고 싶을 때, 이때가 주식을 팔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주식은 우리 삶을 윤택하게 도와줄 수단이고, 우리는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르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