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50대 초반에 명예퇴직을 하셨다. 1990년 대 중반을 지나면서, 회사가 점점 어려워졌고, 구조 조정의 시기가 다가왔다. 아버지는 자신이 나오면 부하직원 3명을 구할 수 있다며, 명예퇴직 신청을 하셨고 얼마 안 되는 퇴직금으로 아버지는 직장인에서 자영업자가 되었다.
아버지가 맨 처음 시도한 일은 고시원 운영이었다. 수익률만 보고 홀아비 냄새가 진동하는 고시원을 덜컥 인수했는데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사장님, 여기 벌레 나왔어요!"
"사장님, 여기 물이 새요!"
"사장님, 옆방 사는 사람이 너무 시끄러워요!"
"사장님! 사장님! 사장님!"
말만 사장님이지, 아버지는 서비스업 종사자였다.
인수 당시에는 수익률이 좋았지만, 워낙 오래된 고시원인 데다가 주변에 새로운 고시원이 들어서자 공실이 늘기 시작했다. 늘어가는 공실과 함께 아버지의 걱정도 늘어갔다. 하루 종일 열심히 고시원을 닦고 청소해도 사람은 줄어갔고 늘어가는 공실을 막기 위해 고시원비를 점점 낮추었다. 고시원비가 낮아지자, 공실은 줄어들었지만, 저렴해진 고시원만큼 이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고시원 규칙은 지키지 않고 밤늦게 까지 TV를 보는 사람, 술을 먹고 와서 공용 복도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 방 안에서 전열기구로 라면을 끓여 먹는 사람 등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었다. 아버지는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들어오는 돈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런저런 일을 겪고 나서 아버지는 고시원을 팔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새로 시작한 일은 빌라촌 가운데에 있는 어린이 집이었다. 결혼 전 교사였던 어머니와 삼촌이 합심해서 야심 차게 시작한 일이었다. 어린이 집은 한 동안 잘 되었다. 빌라촌에 유일하게 있던 어린이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술 먹고 진상 부리던 아저씨들을 상대하다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세상에 찌들지 않은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상대적으로 너무나도 쉬웠다.
그렇게 어린이 집이 잘 되는 가 싶었는데, 빌라촌에 있던 한 교회에서 무료 어린이 집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살림살이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정말 좋은 일이었지만, 돈 받고 어린이 집을 운영하는 아버지에게는 날벼락같은 일이었다. 아이들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고, 어린이 집은 결국 폐업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고시원과 어린이 집을 운영하면서 설렁설렁 살지 않았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서 고시원을 청소하고, 어린이 집을 운영했다.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두 번의 사업 실패였다.
아버지는 어린이 집이 망한 이후로 잠시 방황했지만, 마지막으로 크나큰 도전을 했다. 40년이 넘어 쓰러져 가기 직전의 원룸 건물을 매수해서 새롭게 짓는 일이었다. 살고 있는 우리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아무리 40년 된 건물이더라도, 위치는 지하철 역 근처였기 때문에 새롭게 건물을 짓는다면 괜찮을 것 같아 보였다. 때 마침 동업할 사람도 만났다. 처음으로 원룸 건물 건설에 도전하는 사장님과 처음으로 부동산 중개업을 시작하는 사장님을 만나서, 서로 합심하여 일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번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매일 건설 현장을 찾았다. 건설에 건자도 모르는 분들인데, 건축 자재는 제대로 들어오고 있는지, 건물이 설계도 도면대로 올라가고 있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고, 쓰러져 가던 건물이 있던 곳에 반짝 거리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준공이 끝나던 날 우리 가족은 모두 건물 옥상에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것 같다. 평소 애정 표현도 잘 안 하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꼭 껴안고 아무 말 없이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처럼 아버지를 쏙 닮은 나는 일찍 회사를 나왔다. 회사를 나오더라도 먹고사는데 별 무리가 없을 거란 막연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와 차이점이 있다면, 아버지보다 10년이나 일찍 회사를 나왔다. 40대 초반에 회사를 나왔을 때 주변 반응은 이랬다.
"너 로또라도 당첨된 거냐?"
"너, 평소에는 거지처럼 옷 입고 다니더니 알고 보니 부잣집 아들이지?"
"아내한테 어떻게 허락받은 거야? 난 아내한테 퇴사 이야기 했다가 등짝 스매싱 당했는데!"
당시 회사에서는 집에 어마 어마하게 돈이 많아서 퇴사했다는 소문이 퍼졌는데, 내 손에 있던 돈은 미국 주식 1억 원과 퇴직금 8천만 원이 전부였다. 당시 미국 주식으로 수익률이 좋았기 때문에 1억 8천만 원만 있어도 주식으로 먹고살 수 있겠다는 안일한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발병했다. 주식 시장은 붕괴했고, 내가 들고 있던 주식의 가치는 3분의 1이 되었다.
회사에 남아 있었더라면, 코로나가 왔어도 매달 월급이 들어왔을 텐데, 회사를 나오자마자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라 불리는 마약은 뚝 끊겨 버렸다. 월급이 끊기자 금단현상이 왔다. 얼마 가지 않아 거지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부담감이 몰려왔다. 해외에서 주재원 생활을 할 때는 회사가 지원해 주는 고급 주택에 외국산 자동차를 몰고 다녔는데, 퇴사하고 나니 먹고살 일이 막막했다. 다행히 아내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 굶어 죽을 일은 없었지만, 평소에 쓰던 대로 살면 얼마 안 가 집안 살림이 거덜 날 것 같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퇴사한 지 3개월 만에 나는 다시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마음만 먹으면 다시 취직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며칠째 이력서를 써도 연락 오는 곳이 없었다. 그러다 한 스타트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24일 2시까지 사무실로 와주실 수 있으세요?"
소개팅 날짜를 잡은 사람처럼 심장이 벌렁거렸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다. 아니나 다를까 스타트업 회사는 "우리 대표님과 나이가 같은데, 괜찮으세요?"라는 질문을 반복했다. 그리고 며칠 뒤 예상대로 문자가 왔다. "귀하는 우수한 인재이지만, 어쩌고 저쩌고~~~" 탈락 문자와 함께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쿠폰 한 장이 날아왔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는 면접비로 10만 원이나 줬는데, 스타트업은 돈이 없었던지 커피 한 잔으로 면접비를 대신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매일 이력서를 쓰면서, 재 취업이 가능한 곳은 쿠팡 물류 센터, 미분양 아파트 분양상담사, 보험 판매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이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주식투자를 진심으로 하게 되었다. 배운 것이 도둑 질이라고 대학과 대학원에서 배운 회계, 재무, 마케팅, HR 관련 지식들을 활용해 투자하기 시작했다. 투자하면서 새롭게 배운 사실은 브런치에 기록해 두었다.
전업투자만으로 삶을 산 지 벌써 4년 째다. 퇴사를 하면 얼마 가지 않아서 거지가 될 것만 같았는데, 신기하게도 4년째 잘 지내고 있다. 하루 세끼 먹고, 방학 때 아이들과 여행을 떠나고, 친구들과 가끔 술 한잔 해도 거지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산이 더 불어나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
세상에는 돈 버는 방법이 다양한데,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는 사실을 주식 투자를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우리가 좋은 학교를 졸업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해 열심히 일해서 월급을 받는 방법, 조그마한 가게를 차려서 열심히 일해 돈을 버는 방법, 투자를 통해 돈이 돈을 낳게 하는 방법, 다른 사람들을 고용하여 돈을 버는 방법이 있다.
직장인과 자영업자로 돈을 버는 방법은 내 몸과 마음을 갈아 넣어서 돈을 벌기 때문에 나이가 먹어서도 이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내 몸은 하나 이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일하더라도 잠자는 시간 8시간을 제하고 하루 16시간 밖에 일할 수 없다.
하지만 투자자와 사업가는 나의 영혼을 갈아 넣지 않아도 돈이 자동으로 벌린다. 물론 주가가 떨어질 때면, 영혼이 이탈하긴 하지만, 직장 다닐 때 상사에게 멘털이 탈탈 털리던 것에 비하면 견딜만하다. 사업하는 친구들을 보면 본인이 없어도 회사가 굴러가기 때문에 행동이 자유롭다. 사업가 또한 사업이 잘 안 되면 고생이지만, 일단 잘 굴러가기 시작하면, 사장이 없어도 회사는 잘 굴러간다.
투자가도 마찬가지다. 내가 일하지 않아도 돈이 돈을 불러온다. 처음 5년 동안은 돈 느는 속도가 더뎌서 답답한데, 10년 즘 되면, 돈이 불어나는 속도가 늘기 시작한다. 돈은 일차함수로 비례해서 늘지 않고 지수함수로 증가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부가 증가한다. 워런버핏도 현재 재산의 90%를 65세 이후에 이뤘다고 하지 않는가!
주식투자를 하면서 느낀 점은 자본가들은 우리들이 자본가나 투자가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자본가나 투자가가 되면, 그들을 위해 일할 사람이 없어진다. 자신의 사업체를 굴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자신들을 위해 대신 열심히 일해야 한다.
누군가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발명품이 자본주의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자신들을 위해 대신 일해줄 노예를 사용했다. 노예들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대대 손손 잠잘 곳과 먹을 것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고 노동 유연성이 부족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한 달에 300만 원만 쥐어주면, 충성을 다해 일할 사람이 넘쳐난다. 숙식을 제공할 필요도 없고, 회사가 어려워지면 직원들을 정리해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주기적으로 개미 털기를 한다. 일반인들이 투자가가 되어 경제적 자유를 누리려는 것을 자본가들은 원치 않는다. 주기적으로 주식시장에 공포를 주어서, 다시 월급 생활자로 돌아가라고 경고한다.
주식 강연할 때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는 "어떠한 주식에 투자하면 될까요?"다. 정말 많이 받는 질문인데, 답변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다. "세계 TOP10 기업에 골고루 투자하고 매년 리밸런싱 하세요"다. 그럼 대부분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뭔가 처음 들어보는 독특한 기업의 주식을 추천받고 싶었던 표정이다.
주식 투자를 하면서, 느낀 점은 처음 들어보는 회사에 투자해 단기간에 10배의 수익을 거두는 것보다 세계 최고의 기업에 장기 투자하는 것이 길게 보았을 때 더 좋다는 사실이다. 큰 기업들은 전쟁, 질병, 공황과 같은 갑작스러운 조정을 받더라도 다시 치고 올라오는 힘이 강하다.
인터넷 시대에 소수의 사람과 집단에게 부가 집중 되었듯, 인공지능 시대에는 부의 집중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세계 유명 석학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어떠한 기업이 인공 일반 지능(AGI)을 달성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AGI를 가장 먼저 달성하는 기업이 세상을 정복할 것이라 전망하는 전문가가 많다. 세계 10대 회사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이다. 워런 버핏의 버크셔와 비만 약을 만드는 일라이 릴리를 제하고 모두 빅테크 기업이다. 워런 버핏의 포트 폴리오 절반이 애플인 것을 보면 버크셔도 절반은 빅테크 기업이다.
빅테크 기업들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26%의 수익률을 보여주었다. 26%의 수익률은 10년마다 원금이 10배로 늘어난다는 뜻이다. 내가 1억 원을 투자했다면, 10년 뒤에 10억이 되었다는 말이다. 1억 원을 벌기 위해, 직장인들은 1~2년간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하는데, 빅테크 기업에 투자되어 있으면, 내가 일하지 않아도 매년 1억 원이 생기는 마법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이런 마법을 깨닫고 투자한 지 벌써 7년이 되어간다. 내가 느낀 마법을 주변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은 마음에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쓴다.
<이미지 : 코파일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