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을 좀 오래 하다 보니 드는 생각이 있다. 기업 실적? 물론 중요하다. 재무제표 뜯어보고 매출 늘어나는 거 확인하는 거 다 좋다. 하지만 산전수전 겪다 보니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더라. 바로 '유동성'이다. 기업이 아무리 잘 나가도, 시장 전체에 돈이 마르면 주가는 못 간다. 반대로 기업이 좀 비실대도 돈이 넘쳐흐르면 개도 소도 다 오르는 게 주식 시장이다.
그래서 필자는 가끔씩 딴 거 안 보고 딱 두 개만 확인하러 들어간다. 바로 "지급준비금 계좌"랑 "재무부 일반 계좌(TGA)"다. 이름만 들으면 어려워 보이는데, 원리는 단순하다.
먼저 '지급준비금 계좌'다. 이건 그냥 시장의 유동성을 보여주는 '온도계'라고 보면 된다. 은행들이 연준에 맡겨놓은 돈인데, 이 계좌가 두둑해진다는 건 무슨 뜻일까? 은행 금고에 현찰이 넘쳐난다는 소리다. 은행에 돈이 많으면 그 돈 놀리기 싫어서라도 대출해 주고 투자한다. 즉, 지급준비금이 늘어나면 시중에 돈이 풀린다는 뜻이다. 이게 차오르면 주식이나 코인 시장에 기름 붓는 격이 된다.
그다음은 '재무부 일반 계좌(TGA)'다. 이건 반대로 봐야 한다. 이게 아주 중요하다.
재무부 계좌가 두둑해진다는 건, 미국 정부가 시중에 있는 돈을 세금이나 국채 발행으로 싹 긁어모아서 자기들 통장에 박아뒀다는 뜻이다. 시장 입장에서 보면 악재다. 정부가 진공청소기처럼 돈을 빨아들였으니, 시장엔 유동성이 말라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재무부 계좌가 홀쭉해지면? 이건 호재다. 미국 정부가 공무원 월급 주고, 도로 깔고, 학교 짓느라 돈을 펑펑 쓰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정부 지갑이 얇아지면, 투자자들의 지갑이 점점 두꺼워진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정부가 돈을 쓰면 시장은 환호하고, 안 쓰고 쥐고 있으면 시장은 굶어 죽는다.
지난 11월을 복기해 보자. 주식 시장이고 코인 시장이고 유독 힘들었다. 다들 경기 침체니 뭐니 떠들었지만, 필자 눈엔 딱 하나만 보였다. 연준이 돈 줄이는 QT(양적 긴축)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재무부가 통장 잔고 채우느라 바빴다는 거다. 재무부가 돈을 계속 빨아들이니 시장에 남은 돈이 없었다. 그래서, 주식시장과 암호화폐 시장이 유독 힘들었다.
그런데 정말 다행스러운 건, 12월이 시작되자마자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차트를 보니 재무부가 드디어 돈을 쓰기 시작했다. 현재 재무부 잔고는 그래프가 꺾여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재무부 잔고가 내려가면서 시중에 유동성이 풀리고, 그 돈이 돌고 돌아 유동성 지표인 지급준비금 계좌를 다시 두둑하게 채우고 있다. 11월에 꽉 막혔던 "돈맥경화"가 이제야 좀 뚫리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