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아도 봄은 온다.

by 손주부

유학 시절 고락을 함께했던 아끼는 후배가 하나 있다. 귀국 후 가구 사업을 시작한 그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금세 자리를 잡았다. 서울 근교에 멋진 쇼룸을 짓고 직원을 여럿 고용할 정도로 사업은 번창했다. 그는 과거 직장 생활의 고단함을 잊지 않고 직원들에게 각별한 정성을 쏟았다. 명절이면 두둑한 보너스를 챙겼고, 여느 중소기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복지를 제공하며 진심으로 그들을 대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배신이었다. 믿었던 직원이 회삿돈을 횡령해 도주하면서, 공들여 쌓아 올린 그의 성은 허망하게 무너졌다. 사람에 대한 깊은 환멸과 상실감은 그를 무너뜨렸다. 몇 년간 사업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모아둔 돈을 까먹으며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잔고가 바닥을 보일 무렵, 그는 생계를 위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작은 온라인 상점을 열었다. 예전처럼 넓은 쇼룸을 운영할 여력은 없었다. 그저 작은 사무실에서 '패브릭 소파' 하나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런데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오프라인 기반의 가구 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할 때, 역설적이게도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며 인테리어 수요가 폭발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늘어난 것도 호재였다. 시대를 읽은 통찰보다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던 그의 사업은 거침없이 성장했고, 그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막대한 부를 쌓게 되었다.


시지프스의 형벌 같았던 나의 2010년


후배의 삶을 지켜보며 나의 2010년을 떠올린다. 그해 어머니를 갑작스럽게 여의고 나는 삶의 방향을 잃었다. 회사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영혼은 딴 곳을 떠돌았고, 급기야 치명적인 실수로 회사에 큰 손실을 끼칠 뻔했다. 다행히 선배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겼지만, 조직에 폐를 끼치고 있다는 자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상사의 배려로 MBA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내게 맡겨진 임무는 해외 법인 관리였다. 하지만 '관리'의 실상은 해외 법인의 온갖 사건·사고를 수습해 보고하고, 윗분들의 날 선 질책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방패막이' 역할이었다.


보고서가 쌓인다는 것은 곧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매일같이 쏟어지는 상사들의 짜증과 욕설을 견뎌야 했다. 그 화살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매일 마주하는 찡그린 얼굴 앞에 내 멘탈은 가루처럼 바스라졌다. 설날 밤 10시에도 상황 보고서를 내라는 독촉에 근처 PC방으로 달려가 자판을 두드려야 했던 삶. 끝도 없이 반복되는 가혹한 일상 속에서 결국 내 몸이 먼저 비명을 질렀다.


어느 점심시간, 사무실로 돌아가던 길에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이 몰려왔다. 난생처음 겪는 극심한 고통에 나는 보도블록 위로 고꾸라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안간힘을 다해 턱을 붙잡고 일어서던 순간, 서늘한 깨달음 하나가 나를 덮쳤다.


'아, 여기서 더 버티다가는 내가 먼저 죽겠구나.'


며칠 뒤 사표를 던졌다. 부장님의 만류도 이미 돌아선 내 마음을 붙잡지는 못했다.


투자와 인생, 결국은 ‘때’를 기다리는 일


쉰(50)을 바라보며 절실히 느낀 점은 인생에는 분명한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때가 아니면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반대로 때가 되면, 설렁설렁 일하는 것 같아도 일이 술술 풀린다. 주식 투자도 이와 닮아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치밀하게 분석하고 적기라 판단해 매수해도, 내 손을 떠난 주가는 비웃듯 흘러내릴 때가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밤을 새워 분석하며 치열하게 노력해 보지만, 노력과 비례하지 않는 통장 잔고를 보며 무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잠시 노력을 줄이고 그저 가만히 지켜보려 한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우리가 애쓰지 않아도 봄은 온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그저 다가온 봄을 마음껏 만끽하면 그뿐이다. 지금 내 삶에 혹독한 겨울이 찾아왔다면, 조만간 눈을 녹이며 다가올 봄이 있음을 알기에 더는 좌절하지 않는다. 반대로 지금 내 삶이 찬란한 봄날이라면, 언젠가 다시 찾아올 겨울을 준비하며 겸손히 고개를 숙인다.


인생의 사계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내가 고통스러운 삶의 파도와 변동성 심한 투자 세계를 통해 배운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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