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골디락스의 재현
최근 금융 시장은 케빈 워시를 매파적(Hawkish) 인물로 분류하며 달러 강세라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통상 강달러는 귀금속과 비트코인 같은 위험 및 대체 자산에 하방 압력을 가하는 요인이지만, 그의 논리를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면 단순히 금리를 높게 유지하려는 '전형적인 매파'와는 결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구상은 수요를 억제해 물가를 잡는 고식적인 방법론에서 벗어나, 생산성을 높여 성장을 도모하는 이른바 '현대판 공급 경제학'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간 연준(Fed)의 인플레이션 대응은 금리 인상을 통해 소비를 강제로 위축시키는 '수요 관리'에 집중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워시는 이러한 방식이 경제의 역동성을 저해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는 인플레이션의 해법을 수요의 위축이 아닌 공급의 확장에서 찾습니다. 기술 혁신을 통해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재화의 공급을 늘림으로써, 가격 안정과 경제 성장을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논리입니다. 이는 물가를 잡기 위해 경기 침체를 감수해야 한다는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전략입니다.
이러한 전략의 역사적 모델은 1990년대 '골디락스(Goldilocks)' 시대입니다. 당시 PC와 인터넷의 보급은 기업의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개선했고, 이는 저물가 속에서도 경제가 성장하고 기업의 이익이 극대화되었습니다.
워시는 현재의 인공지능(AI)이 과거 인터넷과 PC가 수행했던 역할을 재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AI를 활용해 기초 업무를 인공지능에게 위임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워시가 꿈꾸는 시나리오는 AI가 몰고 올 생산성 혁명을 통해 90년대 S&P500이 보여주었던 연평균 18% 수준의 경이적인 성장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차기 경제팀의 핵심인 케빈 워시(연준)와 스콧 베센트(재무부)는 미국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해 긴밀한 '콤비네이션 플레이'를 펼칠 것으로 보입니다. AI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는 철폐하고 기업의 자본 조달 비용을 낮추기 위해 금리 인하 기조를 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금리를 낮추면서 발생할 수 있는 과잉 유동성 문제는 양적 긴축을 병행하여 정교하게 제어하려 할 것입니다.
낮은 금리와 양적 긴축은 서로 상충하는 정책이기에 자칫 시장의 유동성 경색을 초래할 위험이 있습니다. 워시와 베센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 규제 완화라는 카드를 꺼내 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자본 규제를 완화하여, 연준이 직접 돈을 푸는 대신 민간 은행들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중간 교두보 역할을 수행하게 하려는 전략입니다.
결론적으로 케빈 워시의 등장은 단순한 금리 향방의 문제를 넘어, 미국 경제를 '공급 중심의 고성장 모델'로 재편하려는 거대한 실험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만약 AI 혁명이 그의 구상대로 실물 경제의 생산성 도약으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90년대 이후 다시 한번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