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에도 괜찮아
들국화의 노래인 '오후만 있던 일요일'을 들으면 20대이던 학창시절이 생각난다. 부산에서 살다가 서울에 있는 학교에 진학하여 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하던 나는, 생활의 불편함을 핑계로 점점 나태해지고 있었다. 특히 낮과 밤이 바뀌는 것이 큰 문제였는데, 밤에는 친구들과 만나거나 혼자 공상에 빠져 시간을 보내느라 늦게 잠이 들고 그다음 날은 늦게 일어나서 오전 시간에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한 루프에 빠져 있었다. 오후에라도 할 일을 하면 되는데, 늦게 일어나면 어쩐지 하루를 그냥 망쳐버린 것 같았고, 그래서 힘이 빠진 느낌이 들었다. 공부나 운동, 활동 등 해야 할 일들을 미루고 또 미루다가, 정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임박해서야 겨우 시작하곤 했다. 미루고 남은 시간에는 하숙집 방에 드러누워 기타를 치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담배를 피거나, 낮잠을 자곤 했다. 그러다 밤이 되면 또 잠이 오지 않아 아침이 다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나에게는 '오후만 있던 매일'이 계속되던 시절이었다.
어느 일요일의 오후, 학교 앞 가게에서 담배와 콜라를 사서 터벅터벅 하숙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아마도 오후 4시나 5시쯤 된 시간이었다. '오늘도 하루가 이렇게 허무하게 다 가버렸구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거리에서 우연히 같은 과 친구를 만났다. 어디 가느냐고 물었더니 학교 도서관에 책을 보러 간다고 하였다. 나는 그 친구가 학교에서 1시간 넘게 걸리는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학교 가서 몇 시간이나 책을 볼 수 있다고 1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왔느냐고 물었더니, "늦어서 아쉽긴 한데, 아예 안 가는 것보다는 가는 게 항상 낫지 않나?"라고 반문하며 교문 쪽으로 걸어갔다.
30년도 넘게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친구의 그 말이 기억이 나고, 그 대화를 나눈 장소와 풍경과 기온과 습도와 감정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만큼 내게 그 말은 인상 깊었고, 내 생활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강렬한 한마디였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나태했던 내가 부지런해지거나 동기에 충만한 사람으로 변화하지는 않았다. 사람이 변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가 보다. 하지만 그 말은 나중에까지도 완벽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실행을 미루게 될 때 공습경보처럼 내 머릿속에서 울리곤 했다. 그 울림이 들리면 늦었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그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빈도는 조금씩 더 높아져 갔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나태함을 떨치고 무언가를 이루어낸 것이 있다면 그때 친구로부터 들었던 그 말의 울림이 팔할의 역할을 해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도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늦게라도 시작하는 것이 항상 더 낫다고. 그건 내 안의 역기능적인 완벽주의를 무너뜨리는 꽤나 괜찮은 처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