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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quaviT Mar 21. 2016

스물셋이오, 삼월이오,
여행이다.

술독에 빠지러 떠나는 유럽여행

 내 나이 만 스물셋의 삼월. 이상의 <봉별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각혈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각혈처럼 치밀어 오르는 생각이 있기는 했다. 여행. 듣기만 해도 등 뒤에서 날개가 솟아나는 것만 같은 단어. 개인적으로, 뭔가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내 몸이 이 음식 속의 영양분을 갈구하는구나'하고 생각하곤 했었다. 그래서, 이 여행을 결심할 때에도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내 몸이 여행을 원하고 있구나, 하고.




    아니, 솔직해지자면 사실 내가 원하는 건 여행보다는 술이다. 유럽이란 동네는 그런 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행지였다. 포트와인, 셰리, 와인, 맥주, 위스키 등등, 가는 곳마다 우리나라에서는 '양주'인 녀석들이 깔려있는 곳 아니던가. 대학생의 한 달 용돈으로는 손가락 빨면서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그런 술들이 즐비한 곳에 한 번쯤 발을 들여보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답답했던 일상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 같았다. 포르투갈의 파두 클럽에서 파두를 들으면서 포트 와인 한 잔, 땅거미가 내려앉는 알람브라 궁전을 보면서 셰리 한 잔을 홀짝이기, 눈을 깨뜨릴 정도로 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보르도에서 화이트 와인을 들이키는 생각. 머릿속의 생각들이 지도 위에 점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점이 늘어가자 선으로 이어졌고, 선이 꽤 많이 이어지자 결심했다. 떠나 보자. 

  



  여행을 떠나기로 작정을 하고, 부모님께 허락을 받은 후엔 반 년정도 돈을 모았다. 돈을 모으면서도 꾸준히 마셨다. 나름대로 블로그를 만들어서 마신 술의 리뷰를 쓰기도 하는 등, 제법 전문적으로 주정뱅이질을 하기도 했다. 솔직히 써놓은 것만 보면 아무 걱정 없이 놀고먹으면서, 아니 마시면서 여행 갈 날만 기다린 것 같지만 반만 맞는 소리다. 여행 전은 언제나 그렇듯, 설렘보다는 걱정이 더 컸다. 돈이 모자라지는 않을까, 가서 집시들한테 소매치기로 팬티까지 다 뺏기면 어떻게 하지? 요즘 IS가 그렇게 극성인데.... 왜 이런 걱정들이 여행을 결심하고 나서야 봇물처럼 터져나오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런 걱정들 때문에 잠을 설치는 때도 있었다(솔직히 말하자면 어제도 그랬다). 하지만 결국엔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다. 항공권 취소 안 하고 오늘까지 버틴 걸 보면 말이다. 




 3월 21일, 그러니까 바로 오늘을 기다려왔다. 내 여행이 시작되는 날.

 스물셋이오,

 삼월이오,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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