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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quaviT Mar 25. 2016

리스본에 저녁이 내리면

포르투갈 - 알파마

 


  도시에 저녁이 서서히 깔리는 때면, 가로등에서 주홍빛이 번져나오기 시작한다. 낮동안 거리를 가득 메웠던 사람들도, 그들이 내던 시끌벅적한 소리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쌀쌀한 밤공기, 그리고 적막함이 대신 도시를 채운다. 밤이 되면 거리가 텅 비는 것 같아도, 이런 식으로 다른 뭔가가 빈자리를 메우기 마련이다. 그래서, 낮과는 전혀 다른 곳이 되어버린 듯한 낯선 도시를 돌아다니는 일은 언제나 설렌다. 같은 곳이지만, 다른 곳이니까. 밤은 그래서 좋다.  







 리스본. 포르투갈의 이 도시가 아늑한 어둠에 잠길 때의 알파마는, 숨소리를 낸다. 느리게, 그리고 슬프게.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도록. 파두(FADO)다. 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 중의 하나일 것이다. 파두의 유래나 유명세를 떨친 가수들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이야기하지 않기로 한다. 분위기 잡고 있었는데, 뭔가 깨잖아.


 각설하고, 지난 글에도 썼지만, 파두를 들으면서 포트 와인을 기울이는 게 나름 내 여행의 로망이었기에 알파마의 저녁을 기다리는 일은 마냥 설렜다. 그래서, 이국의 도시에서 맞는 첫 저녁이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알파마에서 파두를 공연하는 곳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저녁 어스름이 깔릴 때쯤이면, 가게 앞에 내놓은 흑판에 파두의 공연 시각을 알린다. 아무 곳이나 문을 열고 들어가 포트 와인 한 잔을 시키고 기다리면 그만이다. 

 

8시가 되자 기타, 그리고 목소리. 이 두 가지가 하나 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파두 공연은, 소박했다. 무대가 따로 마련된 것도 아니었고, 반주가 많이 딸린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서 파두였다. 절규가 읊조리는 듯한 노랫소리가 크지 않은 식당 안을 메웠다. 리스본의 알파마, 그곳의 저녁을 채우는 소리. 






 한 잔,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반 잔의 포트 와인. 그리고 그 나머지 반을 채운 것은 파두였다. 달콤한 행복이 반, 절절한 슬픔이 반 섞인 꿀 같은 색. 입에 한 모금을 담으면, 오크통의 묵직한 향기와 조금은 씁쓸한 맛이 배어나온다. 하지만, 이내 건포도, 흑설탕을 연상시키는 달콤한 맛이 입 안을 채운다. 어쩌면 사는 것도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인생이 한 잔의 술이라면, 사는 동안 좋은 일, 행복한 일이 많겠지만 그만큼 슬픈 일도 인생의 절반을 채울 것이다. 하지만 그 한 잔을 마셔보면, 결국은 모두 달콤하게 느껴진다는 것. 


  포트와인을 다 비우고 다시 밤거리로 나와보면, 스산한 밤공기가 술기운처럼 리스본의 구석구석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아늑한 어둠이 고색창연한 도시를 메운 그 풍경이, 뇌리에 꽤나 오래 남아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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