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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quaviT Jul 23. 2018

Bruges Zot

벨기에 - 브뤼헤

 

  쾰른에서의 하루를 보낸 후 내가 향한 곳은 벨기에. 다시 한 번 국경을 넘는다.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핸드폰으로 벨기에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내가 벨기에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초콜릿, 맥주, 와플, 오줌싸는 소년과 축구선수 아자르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더 쓰자면 인종차별이 조금 심한 곳이라는 풍문도 있었고...그래서 좀 걱정이었지만, 같은 소문이 돌던 스페인에서도 인종차별은 당해본 적이 없기에 뭐 당하면 당하는 거지! 라는 생각으로 가보기로 했다.



브뤼헤의 랜드마크인 구시가지의 중심 마르크트 광장의 알록달록이들



  브뤼헤는 위의 구시가지 건물들이 워낙 예쁜 탓에 한국에서도 유명한 편이기는 하지만, 내가 브뤼헤를 가보기로 결정한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한국에서 마셔봤던 '브뤼헤스 조트(Bruges Zot)'라는 맥주 때문이기도 했다. 직역하자면 '브뤼헤의 광대'라는 뜻인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그것에 대해 알아보려면 한 때 전 유럽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사실상 시조라고 봐야 하는 막시밀리안 황제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막시밀리안 황제는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현재 벨기에 북부 지역)의 상속자인 마리와 결혼하여 자동으로 플랑드르의 지배자가 되었다. 하지만 브뤼헤 시민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세금을 너무 많이 걷었기 때문.




Emperor Maximilian I 1519. Oil on lindenwood, 74 x 62 cm.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이런 상황에서 막시밀리안 황제가 브뤼헤를 방문하자,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켜 황제를 네 달 동안 브뤼헤에 붙잡아 두었다고 한다. 여기서 가까스로 탈출한 황제가 브뤼헤 시민들에게 한동안 축제와 시장을 금지하는 벌을 내렸다. 이에 브뤼헤 시민들은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황제폐하'를 외치며 눈 뜨고 못 봐줄 눈물의 X꼬쑈를 벌였지만 황제는 단단히 삐졌던 모양. 때마침 브뤼헤에서 정신병원 건축을 허가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자 '그냥 브뤼헤 성문을 닫으라고 하지 그러나. 그럼 그게 정신병원일텐데!'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 한 마디로 광대 =  바보들인 셈이다. 브뤼헤 얘기는 안 하고 왜 맥주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만 이렇게 줄줄 읊어대고 있냐고 물으신다면, 내가 그 맥주를 만드는 곳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Brouwerii de Halve maan(번역하자면 '반달 양조장')



  비도 추적추적 오는 날, 나는 상기한 'Bruges Zot'와 'Straffe Hendrik' 시리즈를 생산하고 있는 Brouwerii de Halve maan을 찾았다. 투어 시간까지는 좀 기다려야 했기에, 근처에 들어가있을 만한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다행히 근처에 맥주 샾이 있었고, 들어가보기로 했다.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맥주의 왕국 벨기에의 위용을 보여주는 듯한 다양한 벨기에 맥주들. 벨기에에서 생산되는 에일 맥주는 '벨지언 에일(Belgian Ale)'이라고도 하는데, 벨기에 맥주는 왜 이렇게 유명한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수도원에서 찾을 수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어딜 가나 카톨릭을 믿었던만큼, 수도원이 굉장히 많았다. 카톨릭에서는 예수의 부활을 기리는 부활절 이전에 그의 고통을 상기하는 '사순절' 기간을 가지는데, 그 사이에 금식과 밤샘 기도 등을 병행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에 마시는 것은 따로 금하지 않았으므로, 맥주는 마실 수 있었는데 수도사들이 허기를 이기기 위해 맥주를 가능한 한 진하게 제조하여 마시는 것이 벨지언 에일, 다른 말로는 트라피스트 에일(Trappist Ale)의 시작인 것이다. 실제로 벨지언 에일들은 모두 도수가 센 편이며, 맛도 단 맛이 강한 편이고 묵직하다. 그 덕에 호불호가 좀 갈리는 편.



대기실에서 판매하고 있는 하브만 브류어리의 맥주들



  맥주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투어 시간이 다 되었다. 워낙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 쓰는 것인지라 가격은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투어를 마친 후엔 맥주 한 잔이 제공되었던 것이 기억난다.




  투어는 '워시백'을 보는 데부터 시작되었다. 맥주는 간단히 말해 보리 엿기름으로 만드는 술인데, 이 워시백은 엿기름 즙을 우려내는 수조라고 보면 되겠다. 그런만큼 상당히 뜨거워서, 닿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이 워시백은 어느 양조장을 가도 있다보니, 경우에 따라서는 저 워시백에 닿아서 데어도 그건 본인 책임이라는 서약서를 쓰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맥주 양조장을 견학하시는 분이라면 유의하시길.

  어쨌든, 단어가 생소해서 그렇지 워시백 근처에 가면 상당히 익숙한 냄새를 맡아보실 수 있다. 집에서 식혜를 만들어 먹어본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아실 것이다. 식혜 만드는 냄새다. 엿기름 즙을 우려내는 과정이니 당연하다면 당연.


하브만 브류어리에서 사용하는 몰트(Malt)의 종류



  관람을 마치고 2층으로 올라가면 재료들을 볼 수 있다. 몰트다. 몰트란 물을 뿌려 싹을 틔운 후 건조시킨 보리를 말한다. 싹을 틔우는 과정에서 '당화'가 이루어지는데, 보리 내에 있는 전분이 당분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 몰트를 빻아 아까의 워시백에서 우려낸 물의 당분은 이후 효모가 먹고 알코올을 싸는(...) 양식이 될 것이다.





  이번엔 홉이다. 홉이 어떻게 생긴 줄은 알지만, 처리를 거쳐 이렇게 물고기밥처럼 만들어놓은 것은 처음 보았다. 냄새를 맡아보니 정말 쌔-하다. 코가 마비되는 것 같다. 조금 떼어서 맛을 보니 역시 입이 마비되는 것 같다. 떨떠름한 맛이 상당히 오래 가니 함부로 체험해보지 않는 것을 권한다.




  밖에서 볼 때는 건물이 그리 커보이지 않았는데, 층이 높아서 그런지 투어는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무릎 안 좋으신 분들께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투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옥상에 올라 비에 젖은 브뤼헤도 찍어보고, 이제는 쓰지 않는 낡은 병 밀봉 기계까지 관람하면 하브만 브류어리에서 운영하는 펍으로 나와 맥주 한 잔을 받게 된다. 이 곳은 관람을 하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으니, 맥주만 맛보시고 싶으시다면 여기만 가보자. 

  한국에서 먹어봤던 브뤼호스 조트 맥주지만, 현지에서 바로 마시니 분위기가 퍽 색다르다. 궃은 날씨라는 달갑잖은 첫인상을 내게 안겨주고는 막판에야 신선한 맥주 한 잔을 안겨주다니. 잔에 그려진 광대의 웃음이 새삼스러운 하루였다.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던 길, 초콜릿 가게를 만났다. 벨기에의 초콜릿이 유명하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다양한 모양으로 만드는 줄은 몰랐다. 공구 모양부터 시작해서 신발, 가방, 맥주병 모양은 물론이고 묘사하기 좀 거시기한 모양까지 저렇게 만들고 있을 줄이야... 하긴 독일과 벨기에를 돌아다니다 보면 성인용품점이라고 해야 할까, 란제리와 각종 도구들을 전면 유리창에 전시해놓고 당당하게 파는 가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지만, 이런 면에서는 우리와 확실히 다른 것 같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 안에 다양한 매력을 숨기고 있는 브뤼헤.

'브뤼헤의 광대'라는 맥주의 이름은 사실 브뤼헤란 도시 자체가 노련한 광대처럼 다양한 매력을 숨기고 있다는 뜻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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