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살았던 지난 7년,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틈틈이 그리고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휴가 내고 1,2주 놀러 온 여행자도 아니면서 가 봐야 할 곳, 먹어봐야 할 것, 해 봐야 할 것은 다 해 보고 싶었다. 이미 내가 눌러앉아 살고 있는 곳이면서도 '지금 아니면 언제'라는 마음이 앞섰다. 익숙한 것들과의 단절로 캐나다살이에 대한 값을 치렀으니 새로운 것들과의 만남으로 본전을 뽑고 싶었나 보다. 언젠가 이 곳을 떠나도 아쉬움이 없도록, 억울하지 않도록.
인생은 누구도 앞으로를 장담할 수 없는 일임을 한국을 떠나는 순간부터 생생하게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나는 또 앞으로를 어림잡아 헤아리고 있다. 시간이 처음 계획했던 여정의 후반부에 들어서서 그렇다. 우리는 어떻게 될까. 별일 없다면 이 곳을 떠나게 되겠지. 어디로 가게 될는지 나는 또 장담할 수가 없다.
캐나다에서 사는 이 시간에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 놓치거나 빠뜨린 것이 없는지 종종 생각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곳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어디론가 가게 된다면 무엇이 가장 그리워질까?
에메랄드빛 호수를 품은 로키, 시원하게 펼쳐진 단풍국의 단풍 카펫, 낙수 소리만으로도 가슴이 뚫리는 나이아가라 폭포... 사사건건 주눅 들 수밖에 없는 해외살이에 대한 보상으로 부지런히 붙잡았던 아름답고 남다른 기억들을 떠올려보았다. 그런데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나에게 그리움이 될 것 같지가 않다.
돌고 돌아 스스로에게 동의할 수 있었던 하나의 답은 결국 우리 동네였다. 록키도 나이아가라 폭포도 아닌, 우리 동네를 걷는 내 가족의 뒷모습.
두 발 자전거를 타고 저만치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는 큰 아이. 언니가 뻔질나게 타던 작은 자전거를 물려받아 용을 쓰며 페달을 밟는 작은 아이. 그러다 힘에 부쳐 결국 아빠 목마를 타고, 아빠는 한 손에 작은 딸의 자전거까지 짊어지고 걷고 있다. 그리고 그런 내 가족이 그려지는 우리 동네 풍경. 그것이 오래도록 두고두고 그리울 것이 분명했다.
한 때는 새로 이사 온 이 곳이 전보다 볼품없고 그럴듯하지 않아 속상했던 적이 있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갑자기 떠나 와야 했던 이전 동네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 가족과 함께 걷는 시간이 일 년 하고도 반쯤 쌓이니 이제는 이 곳이 내가 가장 그리울 곳이 되었다. 이제 저만치 앞에서 내 가족이 걷고 있는 이 동네가 고맙고 애틋하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어느 새 내가 캐나다에 정이 든 것은 모든 것이 완벽한 나라여서가 아니라, 이 곳에서 가족과 함께 지지고 볶으며 쌓아온 시간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이 장담할 수 없는 인생이 나를 또 어디론가 느닷없이 데려가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느닷없던 이 동네가 애틋해진 것처럼, 나는 거기서 저만치 걸어가는 가족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또 행복하게 걸을 테다. 두려워하지 않으며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으며 행복할 테다. 행복하게 살자. 이 순간을 아쉬워하지 않으며 사랑하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