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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Aug 04. 2020

적당히 가르치는 교사, 배울지말지 선택하는 학생

 제목이 다소 극단적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인 교사의 입장에서 본 캐나다 교실수업의 솔직한 후기 중 하나이다. 다만 '적당히'라는 말의 의미는 명확히 해야 할 것 같다. 캐나다 교실수업을 관찰해보니 교사가 학급 모든 아이들을 독려하며 가르치지는 않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수업에 따라갈 생각이 없는 아이들을 굳이 끌고 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교사는 학생이 따라오든 따라오지 않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 모두를 품으려고 애쓰지 않고 '적당히' 가르친다.


 한국 사람이라면 학창 시절에 한 번쯤 '선생님은 눈이 뒤통수에 달렸나'라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을까. 교사가 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수업을 하기 위해 교단에 서면 학생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마 교사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눈빛만 보아도  수업을 따라오고 있는지 아닌지   있다. 어떻게 학생이 열이면 열, 모두가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겠나. 당연히 수업의 흐름을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포착된다. 그럴 때면 oo아! 하고 이름을 불러가며 수업에 참여시키려고 노력한다. 알아서 따라오는 아이들보다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눈길이 간다. 최대한 수업에서 소외되는 학생이 없도록 힘쓴다.


 그래서인지 한국 초등학교 교사들은 캐나다 교실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주의집중 기술을 자주 사용하는 편인 것 같다.

 교탁 위의 종을 치면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교사를 봐야 한다던지, 박수 세 번 시작! 하면 짝짝짝하고 손을 무릎에 둬야 한다던지 하는, 학생의 이목을 일제히 교사에게 집중시킬 수 있는 학급규칙 말이다.

 

 캐나다 교사라고 해서 누가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지 모를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만화책을 보거나 딴생각을 해도 한국 초등교사에 비해 딱히 뭐라고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캐나다 교사는 학생이 공부를  한다고, 혹은  열심히 하라고 잔소리하지 않는  같다. 공부하는 방법과 내용을 안내해주고, 공부할 시간을 정해주고, 공부한 것을 평가하고 피드백을 주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교사의 몫이다.


배우고자 하는 결정과 노력,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까지 
배움의 모든 것은 온전히 학생의 몫이다.
선생님이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다른 책 꺼내 읽고 있는 세 학생! 교사 직업병에 잔소리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찰칵.ㅎㅎ


 이러한 캐나다의 교육방식은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자 더욱 분명해졌다.

 한국에 있는 교사 친구들이 컴퓨터를 다루는 것에 익숙지 않은 학생이나 부모님이 온라인 학습을 도와주기 어려운 학생 몇몇을 내버려 둘 수 없어 교실로 불러 따로 가르친다고 했다. 매일 어플을 이용해서 출석체크를 하고 대면 수업도 하고 과제 제출 여부를 체크하고 피드백도 한단다. 그래도 잘 참여하지 않는 가정에는 전화상담도 한다고 했다.

역시 한국 교사들은 적당히가 없다.
 사람도 소외되지 않도록 모두가 열심이다.

 

 캐나다 온라인 수업은 어떨까?

 지역마다, 학교마다, 교사마다 천차만별이지만 필자의 자녀가 속해있는 학급의 온라인 수업을 이야기해 보자면 교사가 단 한 번도 출석체크를 하지 않았다. 4월부터 두 달 동안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꾸준히 과제를 올리고 선생님의 피드에 응답하는 학생들은 10명 남짓뿐이다. 출석률이 반타작인 채로 학기가 마무리되었고 report card(생활기록부)도 발송되었다.


 남이 시켜서 하는  절대 싫어하고 개인의 선택을 몹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캐네디언 특유의 국민성을 익히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교실  배움마저도 학생의 선택이고 자유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렇게 배움에 자유를 부여하는 캐나다 초등학교지만 학생이 누리는 자유 속에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선을 넘어서는  된다는 . , 주어진 자유를 컨트롤하여  사용할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혼자 만화책을 봐도 교사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지만, 수업에 방해가 되는 행동에는 '매너를 지켜라' 호되게 훈육한다.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은 친구의 배움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이기에 단호하고 엄하다.

선택과 자유를 준다고 해서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캐나다 초등학교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선을 자꾸만 넘는 모양이다. 필자가 처음으로 파견근무를 갔던 학교에 한국인 유학생이 꽤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던 한 교사가 다가와 이것저것 말하다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다.

 

한국에서  유학생들은 
자유를 컨트롤할 줄을 모르는  같아.


 그 교사는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쳐 본 경험이 있어서 한국 학교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캐나다에 오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같다고 말했다.


수모형으로 세 자리 수 나타내기 활동을 하고있는 캐나다 초등학교의 수학시간. 바닥에서든, 친구와 함께하든, 책상에 앉아서하든 상관없이 자유로운 분위기다.


 그 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맞다. 한국 교실은 캐나다 교실에 비해 상대적으로 학생들에게 주어진 자유가 덜하다. 한국 교실은 학급에서 정한 루틴이나 규칙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를 원한다. 반면에 캐나다 교실은   자유로워 보인다.

 수업시간에 어떤 활동을 할 때도 바닥에 엎드려하는 아이들, 책상에 앉아서 하는 아이들, 의자 들고 친구 책상으로 가서 하는 아이들, 모두 제각각이다. 해야 할 일을 다 마친 아이들은 핸드폰이나 아이패드로 놀기도 하고, 책도 꺼내 읽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도 교실이 떠나갈  소리를 지른다거나 과격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신기한 일이다.


자유를 가졌다고 해서 엇나가지 않는다.
주어진 자유시간을 남에게 피해주지않고
나름의 방식대로 즐길 뿐이다.


 한 학교의 사례로 한국인 유학생에 대해 일반화시켜 말할 수도 없고, 캐나다 초등학교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무조건 좋다고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교사의 말은 분명히 필자의 교육방식을 돌아보게 했다.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선을 넘는 이유는 스스로 매너 있게 행동할만한 기회가 없었던  아닐까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배우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배움에 자율성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어쩌면 정말로 아이들은 자유를 가진 적이 없기에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모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캐나다는  '일제히'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나라다. 온갖 다름이 모여있는 곳이고  다름을 몹시도 존중하는 나라니까. 그것이 교육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한국에서는 학교를 다니는 모든 학생에게 열심히 배우려는 자세를 기대한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는 모두가 그렇게   있도록 고민하고 노력한다. 하지만 캐나다 교육에서 교사는 적당히 가르칠 뿐이다. 배울지 말지, 얼마나 열심히 할지, 그리고 어떤 평가를 받을지까지. 배움의 모든 과정은 교사가 아닌 학생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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