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을 시작하자 몇몇 익숙한 이름으로 팔로우 요청이 들어왔다. 순수함과 사춘기 그 언저리를 달리던 초6 시절, 담임선생님으로 함께 했던 제자들이다.
잠깐을 고민하다, 기꺼이 수락 버튼을 눌렀다.
그 이유는 7년 전 그들과 했던 약속 때문이다.
길지 않은 초등교사 경력 중에 절반은 저학년, 절반은 교과전담교사 및 해외파견근무. 그리고 그중 1년을 6학년 담임을 했다. 그때 가르쳤던 제자들이 2020년, 드디어 스무 살이 되었다.
가르치는 1년 동안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어찌나 즐거웠는지, 그 1년을 생각하면 마음이 행복해진다. 당시 첫 아이를 갖게 되어 학기 중간에 배가 불러오고, 그래서 수학여행도 함께 가주지 못했다. 게다가 졸업식은 출산예정일과 겹쳐 얼싸안고 펑펑 울어도 모자를 졸업식에 참석도 하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제자들에게 준 것 없이 참 많은 사랑을 받았다.
6학년 담임을 할 당시, 카카오스토리가 유행이었다.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을 거쳐 다져온 실력을 카카오스토리에 쏟아낼 무렵, 2, 3학년 귀요미들을 가르칠 때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일이 생겼다.
우리 반 학생들에게(가끔 학부모도!!)
카카오스토리 친구 신청이 들어왔다!!
당황스럽다. 일단 내 계정을 쭉 살펴본다.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연애사, 과거사진, 다소 민망한 신혼부부의 각종 애정행각 사진.
그리고 무엇보다 한껏 예쁜 척한 내 셀카.
결국 제자들의 친구 신청을 봐도 못 본 척했다. 혹시 실수로라도 수락을 누를까 봐 친구 신청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올 것이 왔다.
선생님!! 왜 친구 신청 안 받아줘요?
음, 너네 스무 살 되면 받아줄게!!
제자들의 인스타 팔로우요청 화면을 보고있자니 그 때 제자들과 했던 약속이 생각났다.
2020년 봄,
결국 스무 살이 된 제자들의 인스타 친구 요청에 수락 버튼을 눌렀다.
세상에서 가장 서투른 어른, 갓 스무살.
스무 살이 된 내 제자들의 인스타그램은
상상이상으로 싱그럽고, 반짝이고, 사랑스러웠다.
그들의 청춘은
치열하지만 아름다웠던 나의 청춘도 떠올리게했다.
은근 섹시하게 찍은 셀카나
남자 친구, 여자 친구랑 알콩달콩 사진은
너어어어어무 귀여웠고(이노무시키들ㅎㅎ 요즘 아이들은 다 그런가보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느낀 실패나 좌절, 그리고 성취는 당장 달려가 안아주고싶을만큼 안쓰럽고 기특했다.
온라인이지만 대학에 입학했고,
대학 대신 취직을 했고,
집을 떠나 자취를 시작했으며
얼마 전엔 벌써 군대를 간 녀석도 생겼다.
사진 속 아이들의 성장에 내 마음이 두근거린다.
옛날 엄마들이 교복 입은 학생만 보면 '너무 예쁘다' 하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볼살 통통하던 장난꾸러기 얼굴이 생생한데 벌써 아가씨가 되고 청년이 된 내 제자들. 담임 선생님 콩깍지 필터가 제대로 끼었다.
"쌤이 캐나다 가버려서 스승의 날에 찾아갈 학교가 없잖아요!"
"쌤! 한국 언제 와요?"
"쌤! 한국오면 맥주 사주세요!"
"쌤! 선생님 딸 뱃속에 있을 때 우리가 태교 해준 거 기억나죠? 진짜 많이 컸네요?!"
(쉬는 시간마다 내 배를 붙잡고 노래를 불러줬다ㅎㅎㅎ)
하는 날도 머지않아 올테다.
그 때쯤이면 인스타 친구가 아니라 함께 늙어가는 오프라인 친구도 될 수 있을까?
내가 걸어 온 인생의 여정을 그들도 걷고있다.
스무 살 된 제자들과 인스타 친구 하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