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샤이(shy)하니까 하늘나라 같이 가줘.

by 한사랑

어느 날 유치원 숙제를 하다가 딸이 물었다.

"아빠는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는데, 왜 엄마는 엄마만 있어?"

질문을 받고 보니 숙제로 받은 가족관계도에 외할아버지만 빈칸이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아빠는 엄마가 어렸을 때 먼저 하늘나라에 갔어."

"어떻게 하늘에 올라갔어? 날아서 갔어?"

"아니, 몸이 하늘로 갔다는 뜻이 아니라, 몸은 땅 속에 묻혀있고 영혼이 올라갔지."

"영혼이 뭔데?"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거."

"왜 하늘나라에 갔어?"

"음... 사람은 누구나 죽어."


누구나 죽는다는 말에 딸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역시나 예상했던 것을 묻는다.

"엄마도 하늘나라 갈 거야?"

질문을 채 다 하지도 못하고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다.

"엄마도 언젠가는 가겠지. 근데 걱정은 하지 마. 엄마는 우리 가족이랑 오래오래 살 거야."

"엄마, 나도 죽어?"

"응. 언젠가는 그럴 거야."

"엄마, 나는 하늘나라 가기 싫어."

막연한 두려움에 훌쩍이는 아이를 안아주었다.


"그래. 그럴 수 있겠다. 근데 너무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하늘나라에 가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야."

"왜?"

"음... 하늘나라 가면 엄마의 아빠도 볼 수 있잖아!"


아이는 한참 생각하더니,

"엄마, 나 하늘나라 처음 가봐서 너무 샤이(shy)해. 엄마가 같이 죽어주면 안 돼?"

평소에도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아이인지라, 너무 우리 아이다운 부탁에 웃음이 났다.


"ㅎㅎ 왜?"

"엄마네 아빠 만나면 하이(hi) 해야 되잖아. 엄마가 나 대신해줘. 나는 외할아버지 얼굴도 몰라."

달콤 살벌, 아이의 귀여운 부탁에 웃으며 약속했다. 외할아버지를 만나면 엄마가 꼭 대신 인사해주겠다고. '내 딸 ㅇㅇ에요.' 하며 꼭 소개해 주겠다고.


하지만 사실은 나도 모른다. 우리 아빠, 내 딸 외할아버지의 얼굴. 하늘에 가면 아빠가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나도 모르겠다. 엄마가 보여준 사진 속 그 얼굴일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내 아빠의 얼굴.


"애들 왔어요."

기일이나 명절에 성묘를 하러 아빠 산소에 찾아가면 엄마는 항상 그렇게 인사했다. 당신의 아들 딸이 얼마나 컸는지 보여주듯이 그렇게 아빠에게 우리 남매를 소개해 주었다. 초등학교 졸업한다고, 벌써 고3이라고, 임용고시 합격해서 발령받았다고, 시집간다고, 남편 따라 캐나다에 간다고. 뭐가 급해서 그렇게 빨리도 혼자 가 버렸냐며, 엄마는 때마다 나의 인생을 아빠에게 보여주고 인사시켜주었다. 정말로 내가 하늘나라에 가게 된다면, 나보다 아빠가 먼저 나를 알아볼 것 같다. 아빠에 대한 나의 기억은 4살에 멈춰있지만 아빠는 아닐 테니까.


엄마가 아빠에게 나를 소개해줬던 것처럼, 언젠가 나도 아빠에게 내 딸을 소개해 주어야지. 샤이(shy)하다는 우리 딸에게 했던 약속대로, 하늘나라에서 우리 모두 만나는 날, 아빠에게 내 딸을 소개해 줄 테다. 나의 어렸을 적 모습을 꼭 닮은 내 딸이라고. 아빠가 살아있었으면 얼마나 예뻐했을 내 딸이라고.


무엇보다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내 아빠의 소개도 듣고 싶다. 엄마에게는 묻지 못했던 아빠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아빠는 할머니를 닮았는지 아니면 할아버지를 닮았는지, 엄마랑은 어떻게 결혼하게 됐는지, 아빠는 다정한 남편이었는지 무뚝뚝한 남편이었는지, 그리고 아빠 손 잡고 걷고 싶었던 내 결혼식은 어땠는지. 하늘에서 바라보기만 했을 아빠 기분은 어땠는지.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 아빠와 아직 한 번도 못 해 본 이야기.



*커버 이미지 출처: kidsquestmuseu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