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어른이 필요했다.

by 한사랑

십 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한창 궁금한 나이. 그러나 불쑥불쑥 찾아오는 정체모를 감정들로 몸과 마음의 컨트롤이 어려운 나이. 남편이 상담을 통해 만난 십 대 아이들, 그리고 내가 학교에서 가르쳤던 아이들이 그랬다.


그렇게 폭풍 속을 걷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나와 친정 오빠의 십 대가 떠오른다. 3살 터울 나의 오빠는 사춘기를 호되게 치렀다. 불행하게도, 그런 오빠를 향해 뾰족한 화살이 날아들었다. 명절에 마주칠 때마다, 가족 모임이 생길 때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날카로운 말이 날아와 꽂혔다. 수능 끝나고 머리를 노랗게 염색했다고, 유행하는 스키니 팬츠를 입었다고, 친구를 너무 좋아한다고, 오빠는 온 가족 앞에서 한심한 놈이 되어야 했다.


'아빠가 없으니 아빠 노릇 하려는 사람이 많구나.'


어린 나도 알 수 있었다. 똑같이 방황해도 아빠 없는 우리 오빠에게만 화살이 날아든다는 걸. 그리고 거기엔 우리 엄마를 향한 존중이 조금도 없다는 걸. 엄마의 마음이 문드러져가는 게 눈에 보였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늘 아빠 역할까지 씩씩하게 감당하는 엄마였지만, 그때만큼은 어린 나의 눈에도 버거워 보였다. 엄마가 왜 더 단호하게 아들을 지키지 않는지 그때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우리를 힘들게 해도, 아빠 없는 자식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이라 생각해서였을까. 엄마가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 많았다. 그것을 지켜보는 나 역시 마음이 불안했다. 단지 아빠가 사고로 죽었을 뿐인데, 가족이라는 이름을 방패 삼아 사람이 사람을 너무 쉽게 여겼다. 아픈 시선과 아픈 말을 너무 쉽게 뱉어냈다. 화가 났고, 억울했다. 내가 보기엔 엄마도, 오빠도 잘못한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아빠 없는 오빠에게, 아빠 대신 무언가 대단한 것을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가짜 사랑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진짜 사랑이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진짜 사랑은 자신이 정해놓은 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으니까. '다 너 잘되라고'로 포장된, 자기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마음일 뿐이다. 모두에게 인생에 한 번씩 거쳐가는 그 폭풍 같은 시기를 그냥 믿고 기다려 줄 수는 없었을까. 틀에 맞아야만 칭찬해주는 사랑은 오빠에게 너무나 버거워보였다.



조건 있는 사랑이 얼마나 가혹하고 거북한지 그때 정확히 알았다.



내 가족에게 향한 뾰족한 화살이 내 마음과 부딪혀 폭발했던 날,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린 나에게 갑자기 무슨 용기가 났을까. 오랫동안 쌓였던 분노인지, 억울함인지 내 가족에게 소리치는 사람을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나 보다.


"어른으로 해야 할 말이 있으시면 사람들 다 보는데서 우리 엄마한테 큰 소리 내지 마시고, 어디 조용한 데서 따로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늘 얌전하고 소심했던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나도 놀라웠다. 화가 난 와중에도 아비 없는 자식 소리는 듣기 싫었는지, 아니면 가족에게 할 도리를 다하려던 엄마의 신념을 닮았는지.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분노가 너무 버릇없지 않아 감사할 따름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무거운 공기의 차 안에서 엄마는 '차라리 잘 됐다'고 하셨다. 엄마가 한숨처럼 뱉은 그 말에 내 마음이 더 아파졌다. 엄마는 너무 오랜 기간 상처받고 아팠던거다.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옳고 그름을 배워야 할 유아기에는 일관된 규칙을 가진 엄한 부모가 되어야 하지만, 오히려 청소년기에는 무엇이든 용납 해 줄 수 있는 바다와 같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말.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탐색해 가는 십 대 아이들에게, 한 발자국 뒤에서 기다려 주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믿는 구석이 있는 아이들은 방황하지 않는다. 마음껏 세상 속을 탐험하다 돌아올 뿐이다. 부모는 그저 기다림으로 무조건적인 사랑과 신뢰를 보내줘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도 안다. 부모가 되어보니 그렇다. 자녀를 향한 사랑이 내가 가진 기대에 잠식당하지 않아야 한다. 자녀를 향한 염려가 선을 넘거나, 날이 선 지적으로 자존감을 훔쳐서도 안 된다. '너의 있는 모습 그대로 언제나 예쁘다'고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다 너를 사랑해서 그래.' 라는 말로 사랑을 감추어서도 안 된다. 얼마큼 사랑받고, 얼마큼 신뢰받고 있는지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사랑이 필요하다.


내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살았던 할머니에게 그런 사랑을 받았다했다. 아무리 실수해도 여전히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 주는 사람. 아무리 실패해도 내 편이라는 믿음을 주는 사람.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사랑받을 수 있다고 안정감을 주는 사람. 남편은 사춘기 때 할머니가 없었다면, 자신의 인생이 개차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자녀에게 보여주는 확실한 사랑과 믿음은 신비한 힘을 가졌다. 자녀를 무조건 싸고 들면 아이가 망가질 것 같은데 오히려 남편은 할머니 덕에 제대로 살게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우리 가족에게도 그런 어른이 필요했다. 폭풍 같은 10대를 보낸 오빠에게도, 존중받지 못해 상처받은 엄마에게도,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불안해하던 나에게도, 어른이 필요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전한 믿음을 보내주는 어른. 아무런 조건 없이 나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주는 어른. 그리고 그렇지 않은 어른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어른. 우리에겐 그런 아빠가 필요했다.



*커버 이미지 출처:teens.lovetokno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