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른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사랑 Jan 02. 2021

INFJ 아내, ESTP 남편

누군가 그랬다. 결혼은 천국 한 조각을 떼어 맛보는 것이라고. 맞다. 때론 결혼으로 이룬 가정 속에서 천국 한 조각을 맛보는 것 같은, 세상 더 없는 행복을 누린다. 그런데 한 가지 쉽게 간과되는 것은 가정이 정말로 천국이 되려면 두 사람 모두의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혼 전에는 몰랐다. 성격차이로 왜 이혼을 한다는 건지. 그저 이혼사유를 적절히 둘러대기 위한 이유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불륜이나 가정폭력이 없는 평범한 부부에게, 성격차이만큼 두 사람의 관계를 깨어지게 할 수 있는 확실한 이유가 있을까 싶다. 지금 결혼생활을 통해 '내가 나이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남편은 서로 너무너무너무너무 (얼마나 너무를 더 붙여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로) 너무 다르다. 처음 우리 부부가 MBTI를 했을 때는 단 하나도 같은 글자가 없을 정도였다. 나는 INFJ, 남편은 ESTP.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것. 불쾌할 때 그것을 처리하는 방식이 다른 것. 기분 좋을 때 그것을 즐기는 방식이 다른 것.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다른 것. 사랑을 느끼거나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것.


그것은 생각보다 부부에게 많은 고통을 가져다준다. 살다 보면 부부는 크고 작은 수많은 문제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 팀을 이루어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훌륭한 공동의 결과물까지 만들어내야 한다.


그때가 두 사람의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평소에 주고받던 '사랑'한다는 말이 얼마나 가벼운 말이었는지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너를 사랑해' 뒤에 사실은 '나를 더 사랑해'가 숨어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나의 것을 굽히고 싶지 않아 진다. 자존심이 상하면 상처를 주고받는다. 절대 양보하고 싶지 않고 내가 해왔던 방식을 고수하고 싶다. 본능이 그렇다. 지금까지 내 방식대로 살아온 내 몸과 마음이 그렇다.


우리 부부는 가끔 우스갯소리로 '우린 너무 달라, 잘 못 만났어'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사랑한다. 비록 나보다 너를 더 사랑하는 레벨까지 완전히 가지는 못했으나, 이기적인 인간의 수준으로는 여전히 서로를 많이 사랑한다. 그것이 이기적인 인간임에도 끝없이 다시 한번 노력해 보는 이유이다.


'그러니까 동거를 해 보고 결혼해야지' 라던가, '성격이 잘 맞는 사람이랑 결혼했었어야지'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효리가 어느 예능에 나와서 그랬다더라. 그놈이 그 놈이라고.


내가 나와 결혼하지 않는 이상, 나와 성격이 똑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능하긴 할까? 결혼은 그냥, 사랑에 빠져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격에 맞는 사람을 찾아 나선다고 결혼이 가능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데, 아무것도 계산할 수 없도록 사랑에 빠져야 할 수 있는 게 결혼이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랬다.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그저 사랑했다. 그 사랑과 평생 함께 하기로 약속했기에, 정말로 결혼을 통해 천국 한 조각을 누려보고자 두 사람이 함께 노력하고있다.

 

최근에 MBTI를 했더니 나는 그대로 INFJ인데 남편은 ESTJ가 나왔다. 이제 J 한 글자는 똑같아졌다며 우리의 미래가 얼마나 희망적이냐고 농담을 했다. 여전히 나의 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그 중간 어디 즈음 타협점을 찾아가려 헤매고 있다. 어떻게 하면 나를 더 많이 부인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내가 아닌 당신을 더 존중할 수 있는지 여전히 배워가고 있다. 여전히 아파하고 상처를 주지만, 사랑을 약속한 부부이기에 그 약속을 지키려고 다시 서로 용서하며 처음 사랑을 되짚어본다.



커버 이미지 출처: ldsliving.com

매거진의 이전글 하이힐에서 내려와 운동화 끈 질끈 묶은 지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