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 간다.
(이소라 님의 '바람이 분다' 중)
딸! 나중에 너희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저 노래 가사 같은 마음을 갖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입덧이란 건 신세계였지만 그래도 너희를 뱃속에 품고 있었던 D라인 때는 귀여운 수준이었지. 출산, 산후조리, 모유수유, 탈모, 산후우울증, 휴직.
이런 것들을 겪으면서, 네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거야. 세상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는데 나만 못난 모습으로 남겨져있는 듯한 느낌. 내 안에 꿈꿨던 소원들, 미래들, 희망들은 다 흩어져 버린 것 같은 그런 텅 빈 마음. 뭐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하루.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지만 어쨌든 너희도 여자인지라. 나중에 너희가 원해서 아이를 갖고 낳게 된다면 이런 힘든 상황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 그래서 어려운 마음이 들 수 있겠지.
하지만 딸!
그런 순간이 오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도 말고, 또 그런 순간이 정말로 오더라도 다시 씩씩하게 일어나길 바라.
엄마가 그 어려운 과정의 엔딩(ending)을 확실히 말해 줄 수 있거든.
Happy ending.
그 과정의 결말은 해피 엔딩이야. 너희들이 그 과정의 엔딩이거든, 엄마한테.
소중한 내 두 딸.
너희들이 엄마에게 출산으로 시작된 힘들었던 그 길의 엔딩이야.
그래서 엄마는 그 길에 자부심을 느껴. 너희들의 어떠함이 결정하는 문제가 전혀 아니란다. 너희 존재 자체만으로 엄마는 자부심이 생겨. 남들 다 하는 결혼 같고 남들 다 하는 출산이고 육아 같아도, 너희를 생각하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 사랑하는 남편과 내 손 하나씩 잡고 걸을 수 있는 두 딸이 있다는 사실.
그게 엄마가 가진 자부심이야.
사랑해!
이 사랑엔 권태기도 갱년기도 없을 거야:) 엄마도 다시 일어날게! 눈물 훔치고, 옷깃 여미고, 다시 무릎을 짚고 일어나게. 나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이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계속해서 일어날게. 엄마도 엔딩을 바라보며 일어날 거야. 푹 자고 일어나서 내일이 되면 더 많이 사랑하자!
2018년 8월 18일.
하루 종일 육아에 지친 날, 잠든 딸들을 보며 쓴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