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의 문] 7살, 기집아이는 법학과를 가기로 결심했다.(2)
그날 난, 시험을 안 쳤다는 걸 알았다.
문 하나가 조용히 닫히는 소리가 났다.
엄마도 나도 잊었다. 그리고 복어처럼 퉁퉁 부었다. 부었다고 말하면 보통 눈과 얼굴을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아빠는 철저하게 몸을 때린다. 옷을 입으면 보이지 않는 곳. 티셔츠와 바지를 입으면 가려지는 곳. 물론 뒤통수도 자주 맞는다. 아빠의 손높이에 그 부분이 제일 때리기 쉬운 부분인 것 같다. 오늘은 엉덩이, 허벅지, 그리고 뒤통수다. 손바닥은 뭐 별거 아니다. 손바닥만 맞는다면, 동생과 나는 행운의 날인 셈이다. 동생은 옆에 잠들었다. 잠들기 전, 매일 학습지를 하고 나면 엄마가 물어본다. 한자와 수학 위주로. 영어는 꽤 재미있어하고 잘하는 편인데, 한자와 수학은 자꾸 틀린다. 분명히 풀었던 문제인데 또 틀린다. 역시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 잘한다는 말이 이런 거다. 다시 생각해 보면 시험을 안치는 게 아니라 못 친 거다. 엄마도 많이 지쳤고, 오늘은 나도, 탱탱볼처럼 탱글탱글 부었기 때문이다.
자니…?
엄마가 조용히 문을 닫고 들어오며 물었다. 말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동생은 울보지만 나보다는 성격이 순하다. 툭하면 울어서 놀이터에도 소문이 났다. 모범생 누나와 울보 동생. 그래도 많이 울었으니 깨우고 싶지 않다. 엄마의 머리는 엉망진창이었다. 엄마는 진한 갈색에, 조금 긴 단발 곱슬이다. 곱슬이라 그런지 숱이 풍성한 편이다. 지금 머리 왼쪽은 납작하게 눌러져 호떡 같은데, 오른쪽은 막 덤불처럼 엉켜져 있다. 엄마는 옆에 앉았다. 아무 말이 없다. 그저 내 이불을 덮어주었다. 새삼스레 눈물이 조금 흐르려고 했지만 난 참았다. 그래도 정말 궁금한 말이 있었다. 물어봐도 될지 모르겠어서 간직하던 말이다. 엄마도 나처럼 속상할 텐데 지금 물어봐도 될까. 난 참을성이 좋은 편이라 꽤 오래 묻지 않았지만, 오늘은 꼭 물어보려고 다짐했다.
“엄마, 대학교수보다 더 센 사람이 누구야?”
그날 처음으로, 도망칠 방법이 아니라 버틸 방법을 떠올렸다. 엄마는 조금 당황했다. 30초 정도 고민하는 듯 보이다가 말했다. “음… 변호사, 판사, 검사?”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머릿속에 외웠다. “그럼 변호사, 판사, 검사는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어?” 엄마가 희미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엄청 공부를 잘해서, 서울에 가서 법학과를 가야 해. 왜 우리 딸, 변호사 하게?” 이번엔 내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마음속으로만 되뇌었다. 나는 사실 법이 무엇인지도, 법학과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영어 같은 건지, 제일 싫어하는 한자 같이 외우기만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이 하나 있다면 공부를 잘해서 서울을 가야 한다는 것. 이 말은 무슨 말인지 안다. 내가 공부를 잘해서, 아주 먼 서울에 법학과를 가야 한다. 그러면 이 끝없이 평범한 일상을 탈출해 대학교수보다 더 센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7살, 기집아이는 법학과를 가기로 결심했다.
대학 교수보다 더 강한 사람이 되면, 이 집에서 엄마와 동생을 데리고 나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 믿음이 얼마나 단순했는지는 안다. 하지만 그날밤, 나는 처음으로 도망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며 버티고자 했다. 누구도 믿지 못했지만, 나는 나 자신은 믿었다. 이불속에 누워 앉아있는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울었다. 혹시나 동생이 잠에서 깰까 봐, 혹시나 옆방 아빠가 깰까 봐 조심하며 조용히 흐느꼈다. 또 눈물이 났다. 그런데 조금 다르다. 내게 목표가 생겼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아직 어떻게 싸우게 될지는 몰랐지만, 이 집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하나 생겼다는 건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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