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의 문] 대학교수, 그의 로열패밀리(1)
그 집에는 설명이 필요 없는 질서가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각자의 자리를 알았다.
아빠는 기분 좋을 때면 하는 말이 있다. 내가 성적 잘 받은 시험지를 오른손에 들고 ‘100점이다~’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럴 때면 자기 가족은 성공한 로열패밀리라 했다. 그 집에는 남자 셋, 딸하나로 아빠가 제일 막내 사랑둥이다.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우리나라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돈 많이 버는 회계사였다. 아빠가 어릴 때 그 동네에 컬러티비가 있는 집이 딱 한 집이었는데 그게 자기 집이라 했다. 마을에 큰 이슈가 있거나 중요한 뉴스를 봐야 할 때는 모두 모였다고. 그곳에는 첫째 한의사, 둘째 의사, 그리고 셋째 대학교수. 공부로 실패한 어른이 없었다. 그래서 끔찍했다. 이 가족의 완벽함은 나에게 방패가 아니라 단단한 칼이었으니까. 아 물론 딸은 초등학교 선생님. 계집아이는 학교선생이 최고라며 늘 끝에 덧붙였다.
“우리 집은 로열패밀리야. 완벽하지. 일반 사람과 차원이 달라~.”
정말 차원이 달랐다. 한 달에 한 번씩 토요일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엄마, 나, 그리고 동생을 데리고 할머니집을 갔다. 차를 두 시간 정도 타고 일어나면 도착한다. 아빠는 계단을 올라 벨을 누르고 ‘엄마 나 막내아들~”을 외쳤다. 문이 열리면 뽀글뽀글한 회색머리 할머니가 문을 열었고, 아빠와 우리를 반겼다. 열린 문틈 사이로 오른쪽 거실에는 도르르 도르르 물레방아가 흘러갔다. 물속에는 작은 물고기가 몇 마리 있었고, 큰 물폭포가 물레방아 위로 쏟아졌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끊기지 않던 물과 방아의 소리. 또르르 도르르 쏴아아. 이 집에서 가장 맑고 깨끗한 소리였다. 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때, 둘째 큰아빠네가 도착한다. 그럼 우리는 시장에 장을 보러 간다. 일요일 새벽 6시 제사를 위해.
시장 가는 길은, 퐁실한 솜사탕을 들고 동물원에 놀러 가는 것 같다. 왼손으로 할머니 손을 잡고, 흥얼거리며 걷는다. 시장 골목을 들어서기 전, 작은 가게가 있다. ‘무지개 문방구’. 찰리의 초콜릿 공장 같았다. 우산 초콜릿, 빨주노초파 크레용 초콜릿, 조그만 빨대에 달콤한 물이 가득 들어있는 아폴로, 톡톡 누르면 튀어나오는 동전 사탕. 먹는 것보다 구경하는 게 재미있었다. ‘하나만 골라, 큰 슈퍼도 가니까~’ 오늘은 우산 초콜릿을 골랐다. 거의 늘 우산 초콜릿이었다. 그 초콜릿 하나를 손에 쥐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집의 문밖에 있는 느낌이었다. 내 동생은 그날은, 소다맛처럼 푸르스름한 사탕을 골랐다. 참 취향 다르기도 하지. 할머니 손을 잡고 걸어가는 시장골목은 생선 냄새가 난다. “싸요 싸요~ 오늘은 가자미~~” 할머니의 발걸음이 멈췄다. “제일 좋은 돔베기 주시요, 내일 제사니. “
돔베기를 먹어보았는지 모르겠다. 상어 고기다. 누구나 제사 때 먹는 줄 알았다. 크고 나서 알았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도 있고, 상어고기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걸. 짭짜롬하게 염지 된 돔베기는 토막토막 낸 채로 올려진다. 보통 전처럼 한번 구워서 먹는다. 수육도 좋아하지만 이 돔베기를 참 좋아했지. 시장 골목. 그 조그만 길 양옆으로, 커다란 어른들이 목청을 올려 외쳤다. 그 활기가 가득하고, 생선 비릿한 냄새가 자욱하던 그 공간이 좋았다. 하하 호호 해맑게 웃고 떠들고, 이런 공간도 있다는 것이 늘 신기했다. 이 사람들도 퇴근하면 나와 비슷하겠지? 그러다보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빠의 그 집은 완벽했다. 완벽해서 틈이 없었다. 모두가 같은 집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집안에서, 이미 다른 측면에 밀려나고 있었다는 걸.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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