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의 문] 대학교수, 그의 로열패밀리(2)
그 집에는 설명이 필요 없는 질서가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각자의 자리를 알고 있었다.
내 눈에만 보이지 않는, 마치 착한 아이한테만 보이는 선처럼 굵게 그여 있었다. 여자는 부엌. 남자는 거실.
거실의 1/3도 안 되는 조그만 부엌에는 할머니, 큰엄마, 엄마가 분주하게 제사음식을 만들었다. 할머니는 돔베기를 씻고, 큰엄마는 과일을 닦고 쌓았다. 그리고 엄마는 전 담당. 소고기와 게맛살을 넣은 꼬치 전, 동글동글 새싹 같은 연호박전, 동생이 좋아하는 동그랑땡까지. 지글지글거리는 불 앞, 엄마도 그 질서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가끔 동생이 옆에 앉으려 했다. 그러면 “남자는 여기 들어오는 거 아니다.” 할머니는 손으로 훠이훠이 내저었다. 내가 봐도 동생은 도움이 안 되어 보인다. 사과 쌓는 것도 못할 텐데. 그런데 왜 아빠는 저렇게 누워, 사과 깎은 걸 먹고 웃고 있지. 반면 부엌은 여자들의 손이 바빠질수록, 그 안은 더 좁아 보였다.
피곤하기도 하고, 졸리기도 했다. 거실 아빠옆으로 간다. 주저앉으며 하얀 그릇 위, 노오란 사과를 집어 먹으려고 했다. 그때 ”음, 너도 다 컸으니, 일 도와야 하지 않니?” 7살 내게 큰아빠가 말했다. 그래 난 그때 머리에서 곱씹던 말을 뱉었다. “아빠랑 큰아빠는 왜 안 해요? 저렇게 음식이 많은데…” 살짝 당황한 큰아빠는 말이 없었다. 옆에 누워 있던 아빠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남자랑 기집아이는 다르다. 안방에 동생들 놀아주던지, 아니면 할머니 도와라. “
그놈의 남자랑 기집아이. 무엇이 다르다는 걸까. 내 눈에만 보이지 않는 명확한 경계선. 나는 “왜‘가 중요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날 나는 알았다. 질문은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집에서는 이해보다 순서가 먼저라는 것을.
새벽 6시 제삿날도 동일하다. 남자는 따듯한 온돌바닥에서 절을 한다. 여자는 그 뒤, 차가운 베란다 경계선에 쪼그려 앉아 절을 한다. 마치 우르르 몰려 있는 쥐들처럼. 무릎을 왜 꿇고, 절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그 무릎이 시리다. 절을 하고 나면 밥을 먹는다. 커다란 12인용 상이 펼쳐지는데, 그 상에는 할아버지와 남자 네 명만 앉는다. 비행기 비즈니스 좌석이다. 쬐깐한 내 동생과 더 어린 사촌 남동생도. 반면 2인용 작은 상다리에 모든 여자들이 둘러앉는다. 자리가 다른데, 자리만 다른 게 아니다. 올라가는 음식이 다르다. 남자상에는 내 팔뚝보다 더 굵은 조기, 김이 무럭무럭 나는 수육, 제일 큰 덩어리의 돔베고기, 간장에 조려진 닭볶음탕 닭다리. 지나가던 다른 집 귀신이 침을 꿀꺽하고 들어올 자리였다.
기집아이상은 조상신도 절레절레할 자리다. 다섯 명의 밥공기조차 겨우 올라간다. 숟가락, 젓가락은 손에 들고 먹어야 한다. 접시 하나에 잘못 썰어진 돔베고기, 부서진 못난이 가슴살. 어린 시절임에도, 목구멍에 알사탕을 하나 걸치고 있는 것 같았다. 뱉을 수도, 넘길 수도 없는 커다란 사탕. 하지만 이 완벽한 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훗날엔 할아버지가 혼을 내도 큰상으로 밥공기를 들고 이동했다. “여기가 맛있겠네. 내가 다리 먹을 거다.” 난 날개를 좋아한다. 하지만 다리를 먹었다. 그냥 먹는 게 보기 싫었다. 아빠와 동생 자리를 양옆으로 밀어낸다. 그리고 내 자리를 만들어내고 앉았다. 그러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말이다. 그날 나는 알았다. 그 집에서는 이미 많은 것이 정해져 있었다. 자리도, 역할도, 말할 수 있는 순서까지. 나는 아직 몰랐지만, 그날 분명히 하나는 배웠다. 이 집에서 문은 안으로 닫힌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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