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지 말아 주세요.

[다섯째 날의 문] 외고 시험, 전날(1)

by 일라

매년 겨울이면,

우리 마을에는 커다란 플랜카드가 걸린다.

‘1998, 경진중학교. 과학고 1명, 외고 2명 합격배출. “


나는 그 아래를 지날 때 고개를 들지 않았다.

고개를 들면, 또 하나의 문이 생길 것 같았다.


중3이 되면, 모든 이가 신경 쓰는 주제가 있다. 전문기술고, 일반고, 특목고 진학. 나는 일반고를 생각하고 있었다. 머리가 특별히 좋은 학생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신, 오래 버틸 수 있음은 알았다. 계산을 하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살아남는 쪽을 계산하고 있었다.


날지 못하는

용의 꼬리가 되느니, 땅을 기는 뱀의 머리가 되겠다.‘


중학교 3년 동안 반장이었다. 반의 문제아와 정서 교감이 뛰어났다. ‘야, 우리 반장은 달라~ 공부 잘하는 애들 다 재수 없잖아? 와.. 얜 내가 안아 주고 싶다니까? 건들지 마라.’ 최고 서열 일진은 늘 날 감싸 안았다. 신기하게도, 어느 반이든 무리가 있다. 지식파, 중립국, 트렌드를 선도하는 일진, 그리고 왕따.


하필, 왕따가 당하는 모습을 가만두지 못했다. 그가 맞으면, 내 몸이 떨렸다. 혼자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 자신을 비추어 봤던 것일까. 모든 집단을 아우르고 싶지만, 모든 이와 친해질 수는 없었다. 각 집단의 우두머리. 한 명과 친해졌다. 나는 그렇게 했다. 이런 나를, 담임 선생님은 끝없이 지지했다. 그리고 말했다. 특목고에 지원해 보라고. 기대를 저버리는 방법을 모른다. 단 한 곳을 지원하겠다.


풀잎 사이를 기어 다니는 뱀이,

감히 구름 위 용의 무리에 용기를 냈다.


오후 2시 도덕 수업이 시작된다.

책 두권, 연습장, 그리고 필통을 들고 슬그머니 교실 문을 나온다. 복도의 왼쪽은 교실. 모든 학생들이 옹기종기 앉아 수업을 듣고 있다. 오른쪽은 복도를 따라, 기다란 창문이 펼쳐진다. 아무도 없는 나무 냄새 가득한 복도를 걸어간다. 수십 년간 누군가의 무게를 지탱하고 버텼을 나무. 그 나무에 내가 무게를 보탠다. 삐걱삐걱, 오래된 복도가 한숨을 쉰다. 뿌연 한숨사이로, 빤닥빤닥 왁스칠 빛이 난다. 길게 펼쳐진 창문에서 오후 햇빛이 들어온다. 늙은 바닥 사이로 찌꺽찌꺽. 걸어간다. 나이 든 나무의 호흡처럼. 7반, 6반, 5반, 4반. 복도 끝에 도착한다. 그 끝에는 문이 있다. 누구도 문을 안에서 열어 주지 않았다. 옆으로 무게를 실어, 내가 밀어내야 한다. 드르르르, 삐익. 내 몸보다 무거운 문이 열린다.


양호실. 소나무가 보이는 커다란 창문이 있다. 그곳엔 차르르 떨어지는 하얀 천이 쳐져있었다. 창문의 옆에는 두 개의 네모난 간이침대가 있고, 그 앞 한가운데 동그라미 책상이 있다. 3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크기.


그리고 한 남자아이가 앉아있었다.


나는 창가에 앉아 있는 그 아이를 보았다. 동그랗고 큰 눈. 운동을 즐겨하는지, 얼굴이 햇빛에 그을린 까무잡잡한 색이다. 커다란 판때기 같은 어깨. 호리호리한 팔다리, 잘은 모르겠지만 키가 꽤 커 보였다. 하필 오후 햇살이 너무 밝았다. 고즈넉하게 내려 쬐는 군옥수수 같은 햇빛. 까무잡잡한 얼굴임에도 은은한 빛이 났다. 커다란 눈은 깊었다. 그 만의 분위기가 담겨 있었다.


“ 안녕? 외고? 과학고? “


프러포즈받은 줄 알았다. 몸이 찌르르 울렸다. 중저음의 목소리에 알 수 없는 무게감이 있다. 잘생겼고, 몸도 좋은데, 목소리도 좋다. 어느 책에 등장하는 캐릭터더라.

이 공간에 앉아있다는 것. 그 의미는 한 담당 선생님이 추천한 반 일등. 저 얼굴에 공부도 잘한다는 거잖아?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똑 부러지는 척 살던 내가, 처음으로 말을 더듬었다. 7살. 어린 시절부터 아빠에게 빼락뺴락 대들었기에, 마음먹으면 말싸움에 진적 없다. 그런 내가 금붕어처럼 꼬리만 흔들고, 입은 뻐금 뻐금거렸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 내가 말싸움에 져준다는 것은, 내가 반드시 이길 걸 알기 때문이다. 외고 준비 한다고 말했나 보다. 그 아이도 외고라고 한다. ‘GP 국제 외국어 고등학교.‘


같은 학교였다. 우연치고는 묘했다.

그날 처음으로, 시험보다 사람이 더 궁금해졌다. 도망치기 위해 달리던 아이가, 누군가를 따라가고 싶어졌다.

버티는 구조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몰랐다. 늘 계산했다.

이 순간만큼은, 계산기를 내려두었다. 멈췄다.

잘 버텨 내는 아이. 늘 문이었던 7살 여린 아이에게,

처음으로 공부가 작은 파랑새가 되었다.


내가 이 시험을 해내어서, 이 아이와 같이 외고를 가겠다. 그리고 동화책의 조그만 파랑새가 되어 문을 열고, 집을 날아서 도망치겠다. 20살이 되어야만, 이 지긋지긋하고 평범한 일상을 탈출할 줄 알았다. 버티고 기다렸다. 한 순간, 당겨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내 삶, 한 페이지에 처음으로 ‘너’가 생겼다.


해내어야만 했다. 배구 시험 가산점 때보다 더.

모든 걸 걸어서라도. 해내야만 한다.

공부는 처음으로 탈출구가 아니었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조그만 파랑새가 되었다. 파닥파닥 날갯짓을 갓 시작한 아기새. 자신에게 날개가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안 새. 그리고 대망의 외고 시험, 전날이 되었다.


외고 시험 전날, 나는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날 밤, 집안은 조용했다.

이상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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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중간 지점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읽으심에 호흡이 너무 길지는 않았는지요.

오늘도 따듯한 하루 되세요. 고맙습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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