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지 말아 주세요.

[다섯째 날의 문] 외고 시험, 전날(2)

by 일라

하늘하늘 파랑새는 날 수 없었다.

하지만, 날갯짓은 멈추지 않았다.


내일은 외고 시험날,

나는, 잠도 빌리지 않았다. 종이에 나를 눌러 붙였다.

고아도 아니고, 버려지지도 않았지만,

나 자신은 내가 스스로 구해야 했다.


내가 더 열심히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먹지 않았다. 쉬지 않았다. 오답을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숨을 삼킨 채, 반복했다. 정말 외워지지 않는 것은, 위치를 외웠다. 마치 벽지를 붙이듯, 한 페이지를 통째로 붙였다.


”이 미친 계집아이가!!! 내가 너무 참아줬재?! “

“나도 안 참는다! 할 만큼 했어.“


숨이 턱에서 걸렸다. 귀가 멍해졌다. 작고 약한 파랑새는 날아야 했다. 아직 갈길이 멀었는데, 곧 세상이 어두워진다. 날이 밝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도. 잠시 쉬어갈 시간도 없다.


“야이, 안방으로 튀어와!! 당. 장. ”

오른손에 쥔 샤프심이 떨렸다. 왼손으로 누르던 바늘을 내려놓았다. 숨을 가다듬었다. 문을 열면, 무엇이 날아올지 모른다. 눈만 사수하자. 문을 열었다.


“우리 이혼하기로 했다. 기집아이. 니 누구랑 살래?”


내 인생 제일 중요한 날이.

이렇게 평범한 목소리로 갈라졌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계산했다.

나뭇결로 된 문, 톡 하고 잠그는 쇠 걸쇠, 7시, 내 동생.

그날, 나는 문을 닫았다.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을까. 아빠는 말했다.

‘나랑 살면, 대학 등록금까지 보태준다.

하지만 이 계집년? “

사람은 너무 기가 막히면, 아무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대화를 멈췄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수준이 다른 이를 만나면, 멈춘다.

그저 되새김질을 하기로 했다. 관용어를 외우며, 벽지처럼 새겨진 오답을 흩고 있었다. 쨍그랑.


“둘째. 네가 데리고 가라. ”

“미쳤어? 내가 왜?” “안 데려가? 그럼.. 시설 보내. ”

시설…?


시설. 그 단어가 바닥에 떨어졌다.

문 앞에 서있던, 내 발가락 앞에.

아무도 주워 담지 않았다.


나는 몸 어딘가를 세게 눌렀다.

그날 난, 허벅지가 아닌 내 뼈에 새겼다.

부모란,

가치와 쓸모를 입증하지 못하면, 언제든 버릴 수 있음을.

부모란,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 행동, 결정을 바꿈을.

내 남은 인생에서, 가족은 동생밖에 없다.

너네가 감히. 울분을 삼키고, 흔들림 없이 되내었다.


“부모에게는 양육의 책임이 있다.

내일 아침 7시, 외고 데려다줄 사람 정해. “ 나는 말했다.

“나는, 내 동생이랑 산다. “


‘퍽.’ 두꺼운 독일어 사전이 날아왔다. 뒤통수로.

주르르. 귀가 멍해졌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머리를 한번 흔들었다. 어지럼에 윙 울렸다.

웃음이 나왔다.

문을 닫고, 거실을 지나, 동생방에 멈췄다.

불이 꺼져 있었다. 숨소리는 일정했다.

그 리듬이 깨지지 않길 바랐다.


거실에서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반복했다.

유리컵이 부서지는 소리

의자가 밀리고, 둔탁한 게 부딪치는 소리

다시, 소리는 낮아졌다.


나는 책상에 앉았다.

샤프심을 노려보았다.


벽지 무늬처럼, 꾹 눌러두었던 문장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문장이, 단어가 되고, 알파벳이 되었다.

방금까지 굳건하게 붙어있던 글이

난생처음 보는 문장이 되었다.


이 전 장으로 되돌아갔다.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같은 줄을 세 번 반복했다.

시설
외고
동생


거실에서 내 이름이 불렸다.

못 들은 척했다.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문제를 풀었다.


째깍째깍. 시계가 쉬지 않았다.

시계의 초침이 끊임없이 흘러갔다.

내 눈은, 같은 줄을 반복해도

초침은, 멈추지 않았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세 바퀴째 초침은, 내 귀에 더 커다랗게 울렸다.


내 동생은 계속 잠들어 있었다.

나는 동생의 숨소리를 세었다.

열 번, 스무 번, 서른 번


귀 안이, 울렁이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문장이, 글자가, 점들이, 흔들렸다.

툭. 결국 종이 위에 글자가 번졌다.


나는 이 얇은 샤프를 놓을 수 없었다.

더 꼭 잡고, 강하게 버텼다.

멈출 수 없었다. 멈추면 다 무너질 것 같았다.


문제를 하나 더 풀었다.

오답이었다.

새벽 4시. 잠은 오지 않았다.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문고리를 꽈악 쥐었다.

문을 열 수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나를 덮치려 했다.

나는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새는 날고자 했다.

파랑새의 깃털 사이로, 저항이 밀려들어 온다.

의도하지 않은 구멍 사이, 물이 스며 나왔다.

그래도 파랑새는 포기할 수 없다.

내가 나를 지켜야만, 내 동생도 지킬 수 있으니까.


나는 날기 위해, 날갯짓을 했다.

날개가 뒤틀렸다.

그래도, 새는 뒤로 날지 않는다.

초침은 멈추지 않았다.

문고리를 쥐었다. 열 수 없었다.

그날 나는 문을 닫았다.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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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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