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지 말아 주세요.

[다섯째 날의 문] 외고 시험, 전날(3)

by 일라

초침은 멈추지 못했다.

파랑새는 더이상 날지 못했다.

새벽 6시. 엄마가 운전했다.


뒤통수는 불룩 부어올랐고, 허벅지의 살은 멍들다 못해 문드러졌다. 시험지가 주어졌다. 시작되었다. 90분의 스탑워치가 눌러졌다. 무수히 많은 지문이 보였다. 이 문제들을 1분 30초에 하나씩. 풀어내야만 한다. 오른 손가락으로 움켜쥔 볼펜이 덜덜 떨렸다. 시동 걸린 경운기처럼, 덜덜거렸다.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날개가 있음을 되새겼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정신 차리자. 지금도 늦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내어야만 한다.

두 눈은 필사적으로 시험지를 읽었다. 미친 듯이 긴 지문을 흩어 내렸다. 비행기가 비상착륙 하는 것처럼. 남은 연료와, 남은 집중력을 모조리 끄집어내어.

하지만 그 아이는 안방에 서 있었다. 어리석은 아이야.

떨어진 글자를 한 손에 들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멍하니 서있었다. ’시설‘ ‘동생’. 그 단어가 뿌연 안개사이로 회오리 친다. 그 사이에 서있다. 155센티의 작은 아이가.


90분이 흘렀다. 그 아이가 문 앞에 있었다. 차가운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로. 오른쪽 어깨에 백팩을 늘어뜨리며.


“어땠어? 할만했지? “


큰 눈을 쳐다보았다. 새삼스레 더 크게 느껴졌다. 새삼스레 어깨가 더 넓어 보였다. 그의 눈이 너무 컸다. 키도 너무 크고. 목소리가 너무 한없이 다정해서 화가 났다.

헤어진 옷깃을 여몄다. 다리미로 짓눌리던 옷을 한 손으로 끌어내린다. 펴지지 않았다. 이쁘게 보이고 싶었는데. 이런 구질구질한 모습이라니.


‘나는… 어려웠어. 먼저 갈게. “

그가 황급히 막아섰다. 영화를 보자 말했다.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잠갔다. 녹슨 잠금쇠를 꾹 눌렀다. 잘 쳤냐고 물어보는 엄마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서양 전집을 꺼내 들었다.

종이를 쥔 손이 잠시 멈췄다.

초침이 한번 더 움직였다.

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수없이 숨어들었던,
나의 아늑한 오두막을 찢었다.
끝없이 달리던 푸른 초원을.
나의 검은 말과 함께 뛰어다니던 절벽을 찢었다.

한 장, 한 장.
첫 장부터 끝장까지.
수평을 맞추며 찢었다.

한 장을
또 한 장을
찢을때마다,
손가락이 떨리고.
숨이 찢겨 나갔다.

성과, 오두막과, 나의 소중한 이들을 베어냈다.

책상에 손을 내리쳤다.


“왜. “




멈추지 못했다. 옆집, 아랫집, 윗집이 찾아왔다.

잠긴 문을, 아빠가 발길질했다. 문이 열리는 순간 니년 머리통을 박살 내겠다고.

어디서 쪽팔리게 하느냐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 소리는 더 이상 신의 소리가 아니었다.

엄마가 빌었다. 그러다 목이 다 쉰다고. 너 온몸이 아플 거라고. 마지막으로 동생이 문을 두드렸다.

’ 누나야 괜찮나..‘


나는 오래 버텼다.

그 하루를 넘기지 못한 사람들을 보았다.

내 소중한 오두막, 억센 갈대가 춤을 추던 초원, 바다내음이 온몸을 감싸는 절벽. 모든 것과 함께,

나라는 한 장을 찢어내려고 했다.


나는 숨던 곳을 찢었다

다시는 숨지 않기 위해.

대신, 내가 서 있을 자리를 남겼다.


샤프를 잡아 들었다.

그 사람을 좋아했으나,

가는 길이 너무나 달라 놓아 주겠다.

너희를 모두 혐오한다.

그리고 내 동생은.


동생.
두 단어에 멈췄다.

아무것도 거침없었는데,

내 어린 동생 하나가. 컥 막혔다.

이제 아무것도 없노라며, 절벽에서 뛰어내렸는데,

정말 가느다랗고 조그마한 나뭇가지 하나가 보였다.

너무나 얇디얇아서, 바람이 살랑 거려도,

웅얼거리며 우는 나뭇가지 하나가. 내 동생을 닮았다.

시설을 말하던 그들의 모습. 혼자 버려져,

시설 앞에 주저 앉아,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동생이 4살, 내가 8살 때 일이다.

자전거를 타고 놀고 있던 내 귀에,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내 동생이라 직감이 들었다. 달려갔다. 놀이터에.

동생은 눈과 입, 모자에. 모래가 잔뜩 들어간 채로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훽 돌았다. 그 남자아이를 짓이겼다. 발로. 손으로, 주먹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한 쳤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아빠가 되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모래알이 잔뜩 묻혀있었다.

모든 장을 찢어냈는데, 마지막 장을 찢지 못했다. 0.5mm의 얇은 샤프에 무게가 가해졌다.

부르르 떨렸다. 어쩔 줄 몰라 몸을 비튼다.

뚝. 두 동강 나버렸다.


문이 조금 더 열렸다면,

나는 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동생의 손이, 문을 잡았다.

언젠가 동생도, 다른 문에 서있을 것이다.


문이 흔들렸다.

나는 안에서 버텼다.

그 순간, 나는 두려움 보다 선택을 택했다.


그는 여전히 소리쳤다.

그러나 그 소리는 더 이상 절대가 아니었다.

나는 오래 버텼다.

그들은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나는,

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감정이 아닌, 구조로.

초침은 멈추지 않았다.

첫사랑은 끝났다.

파랑새는 더이상 날지 않았다.

대신, 두 다리를 디뎠다


나는 문을 잠갔다.

그리고 열쇠를 쥐었다.

나는, 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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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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