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지 말아 주세요.

[여섯째 날의 문] 동생은, 다른 문 앞에(1)

by 일라

동생은 자주 울었다

나는 오래 버텼다.


동생은 내 문을 두드렸고

나는 문을 잠구는 사람이었다.


동생은 울면서도 문 앞에 서있었고

나는 버티며 문 뒤에 서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와 동생은 윤선생 영어 테이프를 듣는다. 아침 영어 전화가 걸려올 때까지. 그 사이 엄마는 토마토 주스를 들고 나와 동생에게 건네준다. 이건 카페의 달콤한 주스는 아니었다. 컵 안에는, 토마토가 동그랗게 덩어리로 져있다. 엄마가 나 한잔, 동생 한잔을 따라 주면, 유리컵을 들고 동생방에 간다. 동생 방은 여김 없이 문은 잠겨있다. “누나다.”


흐느적흐느적. 짱구 바지를 질질 끌며, 동생이 문을 연다. 머리에 새 집이 있다. 참새 두 마리가 날갯짓을 해 둔 것 같다. 그리고 그 날갯짓은 늘, 내 방문 앞에서 멈췄다.


“또 잤나. 영어 안 듣나?”

“틀어는 났눈디.. “

내 동생은, 어느 시점부터 문을 잠갔다.


엄마가 문을 두드려도

아빠가 문을 발로 차도

대답은 없었다.

오직

”누나다. “

그 소리에만, 열었다.


동생 방문은 잠겨 있었고,
그 방문의 열쇠는, 늘 내 이름이었다.
그 문은 나만 열 수 있었다.


모범생 누나와 울보 동생.

여기서 울보를 맡고 있는 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첫 등교날, 엄마는 해방감을 느꼈다고 했다. 첫째인 내가 초등학생이 된 후, 내려놓았던 그 무게 때문일까. 엄마는 모처럼 집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청소를 하고 있었다.


“따르르릉”


엄마는 전화를 받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황급히 겉옷을 걸치고 학교로 뛰어갔다. 반친구와 싸우다 코에 금이 갔다는 연락. 그렇게 초등학생 동생의 삶이 시작되었다. 이제 맞지 않고, 때리는 건가? 싶을 수 있겠다. 어림없다. 하루는 도덕 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각.

친구와 공기놀이를 하기로 했다. 새로 산, 진달래꽃을 닮은 공기를 꺼내서 경기를 시작했다. 한 알, 두 알, 세 알, 네 알. 내가 이번만큼은 다섯 알을 다 잡겠다. 절체절명 순간.


“부반장! 니 동생 왔다.”

손등 위 다섯 공기알. 포기할 수 없어, 고개만 살짝 돌렸다. 교실 문 앞. 커다란 나무 문 옆에, 코딱지 만한 내 동생이 서 있었다.


교실 앞에 서있던 아이는
맞은 아이가 아닌,
문 앞에 서 있는 아이였다.


커다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문 앞에 서서.



“누나야….. ”



“하… 또 언놈이야.”

공기알을 내려놓았다.

저 세 단어. 내가 가장 약해지며, 강해지는 순간.

콧물, 눈물범벅이 된 동생 얼굴을 내 소매로 닦았다.

동생 손을 잡고, 소매를 걷어 올렸다.

이학년 반으로 내려갔다.


“내 동생 때린 2학년 3반 친구? ”

교실 문을 탁탁 치며, 내가 말했다.


교실 뒤, 뒷구르기를 하고 있던 남자애가 멈췄다. 내 가슴까지 겨우 오는 애가, 쭈뼛쭈뼛 거리며 나왔다. 눈이 장난꾸러기다. 언뜻 봐도 동생 체격의 1.5배.

“안녕? 6학년 9반 부반장이야. 조례 때 내 모습 종종 봤지? 우리 잘 지내자? ”

아이는 입에 손가락을 물며, 열심히 끄덕였다. 우리 학교는 매월 1회 방송 조례를 한다. 교장 선생님이 상을 주신다. 그 시절 과목별 최우수에게. 보통 국어, 외국어, 미술 세 과목 이상 내가 섭렵한다. 내 얼굴이 전교에 방송이 되고, 이름이 불린다. 연속으로. 모를 수 없다.

그리고 남자아이지만 덩치차이는 상당하다. 아마 두번째 이유가 더 컸겠지. 나는 늘 불려 나가는 아이였고, 그래서 더 문 안으로 숨어드는 법을 빨리 배웠다.


부반장은 교무실에 자주 간다. 그날은 수행 평가 학습지를 가지러 오래 자리를 비웠다. 담임 선생님은 반장, 부반장과 함께 수행평가의 양이나, 소요 기간을 사전 소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효율적이다. 우리가 2-3일 정도 소요된다고 하면, 두세배쯤 곱해서 나눠주셨다.

45명 양의 수행평가지. 한 뭉텅이 들고 반에 돌아왔다. 반 친구가 말했다.


“야 부반장. 대박사건. 옆반 회장이 애들 끌고 너네 동생 반에 갔어. “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도통 혼란스럽다. 내가 6학년 부반장인지, 2학년 부반장인지. 두 층 아래를 뛰어 내려갔다.

동생은 눈물범벅에, 윗입술이 피가 눌어붙은 채 서 있었다. 학교 회장인 가은이 손을 잡고.


가은이와 나. 유치원 때부터 절친이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라인. 주말마다 서로의 집에서 자고, 함께 영어 학원을 가고, 놀이터에서 노는 베프.

내가 교무실에 간 동안 찾아온 동생. 쪼꼬미 동생은 울먹이다 가은이 누나를 찾아갔다. 가은이는 남자아이 열명을 데리고 내려갔다. 회장의 파워는 남다르다. 한 번만 더 건드리면, 전교생 앞에서 쪽을 주겠다고. 덕분에 울보는 그 해 편하게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울보 동생은 내가 봐도 참 이쁘게 생겼다.

뽀얀 밀가루 범벅 얼굴에, 개구리 같은 큰 눈.

코가 매우 오똑하다. 엄마는 사람들이 나랑 동생이 이쁘다고 하면, 늘 이렇게 대답했다.

아들은 자기를 닮아서 이쁘지만.

나보다는 엄마인 본인이 더 이쁘지 않냐고.

그렇다. 나는 아빠를 더 닮았다. 그래서 그랬던거겠지.


동생은, 늘 내 방 문을 두드렸다.

주말인 일요일도 어김없이. 똑똑 방문을 두드린다.

“누나 콜팝 안 묵고 싶나?”

기다란 컵에 탄산 가득한 콜라가 담기고, 작은 플라스틱 그릇이 놓인다. 팝콘 너겟 몇 조각과 함께. 동생이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다.


“누나는 괜찮아.”

동생은 우물쭈물하며, 마치 다른 볼일이 있는 것처럼

서성인다. 괜시리 내 피아노 악보도 한번 들춰보고.

선물받은 인형 몇개도 만져보고.

내 방을 한 바퀴 뱅-글 돌고 나간다.

그리고 30분 뒤,

문을 두드린다.


“누나야, 지인짜 콜팝 안 묵고 싶나….?”


웃음이 픽하고 터진다.

책을 덮고, 동생 손을 잡고 나간다.

내가 문 밖을 나서는 몇 안 되는 순간


중학생이 되고, 밸런타인데이가 다가오면 설렜다.

나는 세상에서 초콜렛을 제일 좋아했다

안타깝게도, 내가 받는건 아니다.

뭐 나도 늘상 받기는 하지만,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책상에 앉아서 문제를 풀고 있으면, 또 문을 두드린다.

“누나~ 내다. 동생”


문을 열고 동생이 들어온다. 심장이 콩콩캉캉 뛴다.

두 손은 선물 보따리다. 초콜릿 꽃 바구니, 초콜릿을 든 커다란 곰인형, 고급스러운 길리안 초콜릿 24구, 페레로 로쉐 하트 통. 직접 만든 수제 생 초콜릿.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가게 주인 같았다.

약간의 쑥스러움이 더해진, 초콜릿 가게 주인.

“뭐가 맛있나요?” 물어보면, “아.. 저는 초콜릿은 안 먹어서.” 대답하는 이상한 주인.


동생은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본격적으로 다른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빠가 말했다.

“이 기집년, 개새끼, 내 집에서 당장 나가!!”


우리가 한 달에

열여덟 번은 듣는 말이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난 내 방에 들어와 문을 잠갔지만,
동생은 집 문을 열고 나갔다.

동생은 늘, 내 문을 두드렸지만
필요하면, 문을 부수고도 나가는 사람이었다.


우린 같은 말을 듣고 다른 행동을 했다. 아빠는 동생에게 더 세게 손찌검을 했다. 동생이 가출하는 날은 늘어만 났다. 엄마는 항상 어디에 있는지, 뭐 하고 지내는지. 나쁜 애들과 어울리는 건 아닌지 걱정을 했다. 아빠는 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늘 문을 잠갔다. 엄마는 혹여나 동생이 돌아올까 봐. 잠든 틈을 타, 문고리를 열어두었다. 물론 동생은 돌아오지 않았다. 늘 내게만 연락했다. “누나, 내 오늘은 정환이 집에서 잔다.” “누나 내 피시방에서 잘 거다. 무슨 일 생기면 이 번호로 연락하래이. “


나는 부서진 문 안, 버티며 남아있는 사람이었고
동생은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가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같은 집에서 자랐지만

같은 문을 쓰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동생은 늘 내 문을 두드렸다


나는

그 소리를 외면하지 못했다.


아마 나는 평생,

그 노크 소리를 듣고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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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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