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날의 문] 동생은, 다른 문 앞에(2)
어느 날
동생이 내 문을 두드리지 않는 날이 왔다.
“도. 대. 체. 이 새끼 어디 갔어?! “
아빠는 엄마와 산책을 다녀왔다.
동생은 고 2가 되었고, 야자를 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가장 먼 학교를 다녔던 나와 달리, 동생은 가장 가까운 학교를 갔다. 걸어서 10분 거리. 왜인지 모르겠지만, 아빠의 전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저녁 산책을 하는 아빠는, 그날따라 동생 학교가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말썽꾸러기 동생이 열심히 야자를 한다는 것이, 안도감이 들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들었겠지. 아빠는 엄마와동네 피자집에서 콤비네이션 몇 판 을 사서 학교에 들렀다. 학생들은 많았지만, 동생은 없었다. 아빠는 부들부들거렸다. 담임 선생님 말로는, 동생이 학원 가는 날이라 야자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물론 수업은 없는 날이었다.
타인에게 보여지는 자존심 하나가 제일 중요한 사람.
아빠는 자신이 당할 평생의 쪽팔림을, 그날 다 당했다 말했다. 집에 돌아와서 소리 지르고, 분노를 이기지 못했다. 제발 동생이 돌아오지 않길 바랐다. 그날 만큼은 동생이 친구집에서 오지 않기를. 하지만 내 동생은, 평소와 비슷한 시각에 돌아왔다. 차라리 다른 시각에 들어왔으면 했는데. 이를 갈며 기다리고 있던 아빠는, 옷장 속에 있던 테니스채를 꺼내 들었다. 일요일 아침만 되면, 한주 동안 덮었던 이불을 털고 정리하던 채. 하필, 두껍고 단단한 선수용 테니스채. 그걸 휘두르기 시작했다.
마치 7살, 기집아이로 돌아간 것 같았다. 어린 시절. 강하게 맞던 날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특히 동생이 많이 맞던 날. 동생이 초등학생 일학년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유난히 많이 때렸다. 특별한 사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늘상과 다르게, 조금 강도가 강했을 뿐. 그러다 아빠의 손이 동생의 왼쪽 귀를 정면으로 강타했고, 동생이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 귀를 잡고 울부짖었다. 내동생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며 소리 질렀다. 귀는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빠는 한쪽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놈의 엄살은. 지랄’
결국 고막이 터져,
동생은 몇달간 잘 듣지 못했다.
청력이 돌아오지 않을까 봐, 걱정하며 울던
동생을 달래며, 매일밤 기도하던 날이 떠올랐다.
손이 떨리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귀에서 삐- 소리만 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뛰어나가 아빠 몸에 매달렸다. 엄마는 다리를 잡고, 나도 팔을 잡았다. 바로 휘두르는 팔에 튕겨나갔다. 112를 누르려다, 손을 내려놓았던 그날이 떠올랐다. 검붉은 햇빛이 비치며, 질질끌려가던 그날. 하지만 오늘은 내가 아닌 내 동생이다. 물러설 수 없다. 경찰 번호를 누르고 떨리는 손으로 버튼을 꾹 눌렀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테니스채가 내려오려는 순간
동생이 아빠의 팔을 “탁” 잡았다.
그 때 처음으로
나는, 동생을 올려다보았다.
울보 동생. 놀이터에서 질질 끌려다니며 ‘누나야‘ 애타게 부르던 동생. 내 문 앞에서, 눈물을 그렁그렁이며, 늘 나를 보며 서있던 어린 내 동생이 어느덧 아빠와 키가 비슷해졌다. 동생은 아빠 팔을 불잡고, 아빠 눈을 마주 보며 노려보았다. 분노를 이기지 못한 아빠. 주먹다짐을 시작했다.
평생 왕관을 쓰고 있던 수사자.
그에 대항하는 어린 사자.
일방적인 싸움이 끝나고, 동생은 절뚝이며 집을 나갔다. 꽤 오래 돌아오지 않았다. 싸움이 끝났을때, 거실의 오동나무 테이블이 둥글게 부서져 있었다. 마치 누가 파놓은 새 둥지처럼. 동그렇게 파헤친 채 구멍이 났다. 아직도 그 집에는 그 테이블이 있다. 커다란 벽지 스티커가 붙어있는 채. 아빠는 나와 동생은 언제든, 수백 번 버렸지만, 그 오동나무 테이블은 버리지 못했다.
그 이후로 동생은 부모님과 대화를 아예 멈췄다. 그전에도 거의 없던 대화가 아예 단절 되었다. 수능날이 다가왔고, 동생의 점수는 기대이하였다.
동생은 재수를 거부했다.
아빠는 재수기숙사에 넣어버렸다.
‘저놈은 공부 시켜달라고 울고 빌어도 모자랄 망정. ‘
대학교수인 자신의 아들이. 지방 이름 없는 학교라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거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나같은 기집아이가 아닌 아들이다. 하늘과 땅 할 때 그 하늘. 동생이 재수학원에 들어갈 때, 나도 마중을 나갔다. 오랜만에 넷이 모였다. 하루 종일 말이 없던 동생은, 들어가기 전에 나만 꼬옥 안아줬다. ‘누나. 아프지 말고. 응? 좀 잘 챙겨 먹고. 연락할게. 전화 꼭 받고. “
울보 내 동생은, 어느덧 나보다 더 오빠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러고 10일이 지났을까. 나 혼자만 우려했던 일이, 결국 터졌다.
땅을 기어 다녀야하는, 기집아이
하늘을 날아다녀야 하는, 아들이 재수.
잔잔하던 공간에 전화가 시끄럽게 울렸다.
재수학원 기숙사에서 걸려온 연락. 동생이 도망쳤다는.
9시 KBS뉴스에서,
’ 000 감옥에서 000이 탈옥했습니다.‘ 처럼.
아빠는 아프리카 사막 한복판에서 울부짖는 사자 같았다. “내 이 자식 때문에. 암 걸릴 거야. 니 때문에!” 누구 때문에, 암에 걸린다는 대사. 평범하고 일상적인 저 말. 엄마 아빠는 동생이 갈만한 곳에 다 연락을 돌리고, 경찰에 연락을 했던 것 같다. 본인 가장 친한 후배가 경찰청장이랬나. 뭐 그랬다. 그러고는 엄마 아빠는 계속 싸웠다. 서로 비난했다. 아빠는 동생이 계집년 너를 닮아서 저렇다고. 엄마는 무슨 소리냐, 널 닮아 그렇지. 하고 맞받아쳤다. 외고 전날이 떠올랐다. 서로 네가 데리고 가라. 못 데리고 간다. 시설에 보내버리자던 그 장면이.
동요하지 않았다.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동생이 기숙사에 들어가고 거의 매일 밤. 전화가 왔다.
전화는 하루일과 마지막, 단 10분간 주어진다. 대부분 나, 그리고 여자친구에게 연락했다.
동생에게, 그리고 내게.
전화는 안부였고, 사랑이었고, 서로의 끈이었다.
20년이 흐른 지금도, 연락을 거의 받지 않는 나지만
전화만큼은 받으려 노력한다.
기숙사를 탈출하던 그날. 유독 동생이 부러웠다. 도망치고 싶을 때, 도망치는 아이. 화가 나면, 문을 열고 나가는 아이. 문을 잠그지 않고 뛰쳐 나갈 수 있다는 것.
내가 제일 싫어하는 대사 1번.
“기집아이, 내 집에서, 당. 장. 쳐나가. ”
그 대사가 허공에 떠돌때마다, 매순간 나가고 싶었다.
으스러지게 도망치고 싶었다. 수백번 고민하고 계산해도, 가출해서 살기에는 체력도, 일머리도 없었다. 내가 가진거라곤 오래 앉아서 버티는 것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의 집에서 문을 닫고, 방문을 걸어잠갔다. 숨을 꾹 참고 누르며. 걸쇠를 꾹 누르고, 그 누른 힘만큼 버텼다. 샤프를 들고, 귀를 닫고, 책 안에 들어갔다. 책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내 동생은 달랐다. 나가라는 말에, 바로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 때 처음 알았다.
같은 집에서도,
사람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을.
나는 문을 잠그며 버텼고
동생은 문을 열어 버텼다.
꺼지라면 꺼졌다. 들어오라고 할 때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사춘기가 무색했던 나와 달리. 내 동생은 그대로 사춘기를 맞이했다. 아빠가 퇴근하고 오면, ‘자식새끼, 계집아이는 다 튀어나와 인사해야지.’를 주장했는데, 절대 나오지 않았다. 방문을 차든, 손찌검을 하든, 휘둘리지 않았다. 동생은 마음먹으면, 그 감정이 들면, 그렇게 행동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았지만
전혀 다른 문 앞에 서 있었다.
어떤 문은 닫혀 있었고
어떤 문은 밖으로 나 있었다.
그날 이후
동생은 더이상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대신
그 문을 열고 들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