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날의 문] 동생은, 다른 문 앞에(3)
늘 내 문을 두드리던 동생.
늘 그 노크 소리를 들었던 나.
어느 날, 동생은 그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에게, 대학 시절은 평탄하지 않았다. 서울은 낯설었고, 나는 늘 조금 비껴 서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나쁜 남자와 엮였다. 줄담배를 피우고, 혼자 소주를 마시고, 감정이 깊어질수록, 커다랗고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사람. 그런 남자를 처음 만났던 나.
“위이이잉”
동생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
받을까 말까. 솔직히 받기 싫었다.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받기 싫었다. 힘든 일이 생기면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어버렸었다. 문자까지는 어떻게 가끔 하겠는데, 전화는 부담스러웠다. 친구도, 가족도, 일주일, 길면 한 달. 모두 차단하고 내 문을 닫고 방 안으로 숨어버렸다. 사람에게 기대는 법을 몰랐다. 문을 닫는 법만 알고 있었다.
스쳐가는 사람은 괜찮았다
그저
호감 있는 사람도 괜찮았다.
하지만 누군가 깊은 문을 두드리면
나는 사랑보다,
먼저 문을 잠그는 사람이었다.
문은
사람을 밀어내기 위해 세운 것이 아니었다.
내가 버티기 위해 세운 것이었다.
동생은 사람이 아니라
내 문 밖의 세계였다.
나는 그 문을 지키고 있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그 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 문은 벽이 아니라
내가 오래 서 있던 자리였다.
그날은 동생이었다. 고민하다 전화를 받았다.
“응, 동생.”
“뭐고. 와이카노. 누나, 목소리 와이라노.”
나는
단 세 단어를 말했다.
동생은
그 세 단어만 듣고도
내 흔들림을 알아차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서울 못살겠다. 돌아갈 곳도, 집도 없는 내가,
여기도 못살겠다. 우예야하노..”
동생은 오랜시간 전화를 끊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알았을 것이다.
“누나야. 그만 울고. 일단 달달한 거 하나 먹고. 자라.”
커다란 세상에 처음 나온, 샛병아리 하나가 밤새 울었다.
아침 7시, 전화가 울렸다.
“누나. 일어났나? 내 일층이다. 내려 온나.”
비몽사몽에 전화를 받은 나. 눈이 번뜩 뜨였다. 여기는 서울이고, 동생은 다섯 시간 넘게 떨어진 곳에 산다. 버스로만 다섯 시간. 이동시간은 더 길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갔다. 일단 문을 열고 내려갔다. 탈색을 가득한, 오렌지 빛이 살짝 나는 동생. 일곱살 기집아이 때부터 내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던 내 동생.
문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마치 어릴 때처럼.
나는 그날
누군가가 문을 열어준 것이 아니라
내가,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팅팅부었다. 못생겼네! 내가 그 인간 죽여주까.
일단 케이크 먹자.”
분명히 일주일 전에 파란색 머리였는데, 그 사이 오렌지 색이 되었다. 무지개가 생각났다.
동생은 파리바게트 딸기 생크림 케이크 한 조각을 사 왔다. 내가 울적할 때면, 꼭 케이크를 사 오는 버릇이 있었다.
우리는
레일 위에 돌아가는 11,900원 무제한 초밥집에 갔다.
홍대 앞을 걸었다.
아기자기한 곰돌이 카페를 갔다.
게임장에서 1,000원 총도 쐈다.
총은 동생이 못 쐈다. 인형은 내가 쐈다.
내가 서울에서, 단 한 번도 보내지 못했던 하루.
그날 밤, 동생은 1.5평 조그만 원룸. 내 방바닥 얼음골에 작은 이불을 깔고 누웠다. 난방도 잘 들어오지 않은 내 방에서 밤새도록 끼륵끼륵 이야기했다.
나는 전기담요를 덮어둔 침대에서
동생은 얼음골 작은 바닥 위에서
밤새
나는 울었고
동생은 웃었고
우리는 이야기했다.
다음 날 아침, 동생은 다시 버스를 타고 내려갔다.
다섯 시간 걸려.
“힘들면 꼭 말해. 혼자 참으면 병난다. 알겠지.”
“누나가 오라 하면
내 언제든지 온다. 얼마 걸리지도 않고.”
다섯 시간.
오롯이 다섯 시간을
얼마 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내가 닫아버린 문 앞에서
누군가는 오래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문을 열 수 있었다.
열었음에도
언제든 도망칠 준비를 하는
나는 여전히 문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그날
문이 열렸다는 사실보다
내가 열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아. 그날 동생은 결국 감기에 걸렸다.
일주일 내내
골골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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