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들어가며

by HJ


소설 '왜학훈도 안동준'


들어가며


1868년 메이지 유신 직후, 일본은 일방적으로 외교 문서(서계)의 격식을 바꾸고 자신들의 새로운 관직 체계와 황실 용어를 도입하여 조선을 압박하고자 했다. 이에 당시 왜학훈도(부산 왜관에서 일본 관련 외교 업무를 담당했던 관리)였던 안동준은 '각(覺)'이라는 시정 요구서를 통해 일본이 저지른 외교적 도발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수백 년간 유지해 온 교린 질서 훼손에 대해 항의했다. 이를 흔히 '서계 거부 사건'이라고 한다. 이 서한을 통해 그는 일본이 임의로 관직명을 높이거나 황제 칭호를 사용하는 것은 조선의 국체와 수백 년 동안 지켜진 동아시아에서의 의례적 위계질서를 부정하는 도발이라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응수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흔히 안동준은 시대에 역행한,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수호하고 집행한 핵심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이러한 평가는 어느 정도 부정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다. 이후에 펼쳐진 서양 국가들의 전지구적 제국주의적 팽창과 일본의 식민 수탈의 비극적 결과를 생각한다면, 당시 국제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쇄국을 고집했던 조선의 위정자들에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문호를 좀 더 빨리 개방하고, 개혁에 성공했다면, 역사는 물론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서사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결과론적 일침은 당시 조선의 사람들이 가졌던 치열한 고민과 올바름에 대한 기준을 희석시킨다. 그리고 제국주의가 몰고 온 침략과 수탈의 기록들을 '시대의 흐름'이자, 약소국들은 당연히 적응하여 '생존했어야 하는' 보편적 역사로 둔갑시킨다. 이 안에서 정의와 존중을 따지는 것은 암묵적인 사치였다.


문명화의 정당성은 메이지에서 쇼와를 관통하는 대부분 일본 역사가들의 관점이었고, 20세기 중반까지도 서구 사회를 지배해 온 관점이었으며, 분단 이후 서양사를 흡수했던 우리나라 사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일제의 만행에 대해서는 이를 갈면서도, 당시 유럽과 미국(예를 들면, 신미양요나 헤이그특사)에 대해서는 별 감정이 없고, 동시대 수탈당한 아프리카나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관심하다. 그리고 단지 개도국에서 선진국이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근대화의 명과 암을 직접 몸서리치게 겪었으면서도 전통을 고수하려 했던 선조들의 노력은 대부분 '고집'으로 각인되어 있다. 강화도 포대를 지키다 스러진 병사들, 청에게 압송되어 감금된 대원군, 주둔한 일본군에게 참살되고 불태워진 동학 농민들, 시해당한 명성황후까지. 폭력은 잔혹하나 이러한 희생은 '근대화의 실패' 논리와 맞물려 묘하게 희석된다. 쉽게 말해, '나라가 힘이 없으면 그런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는 우선 힘을 기르는 것이 우선이라고. 그런데, 힘이 없으면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이 정상인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은 근대화의 필연성 안에서 상실되는가?


이 소설 속에서 안동준은 이러한 기로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시대가 몰고 오는 거대한 먹구름의 시작점에 서 있던 인물로 고집스럽게도 전통을 지키고자 했다. 그에게 전통은 올바름이자 인간의 도리였기에,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 메이지 일본은 새로운 국제법 질서가 '교린의 도' 이상의 윤리적 가치를 가졌음을 보여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오시마 토모노조(大島友之允)가 가져온 서한이 기존의 조일관계를 '사적인 우정'으로 왜곡시킬 때, 안동준은 수백 년간 지켜진 양국 간의 약속은 형식 없는 구습이 아니라 엄연한 법질서임을 항변하고자 했다. 서양의 형식을 빌린 일본의 파격 앞에서 그는 1192년 가마쿠라 막부 건립 이후 무려 682년 만에 처음으로 친정(親政)을 시작한 바다 건너 자칭 천황, 그가 일으킨 파문을 온몸으로 맞부딪친 최초의 외교관이 되었다.


'서계 논쟁' 속에는 근대라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전통적인 외교 원칙과 명분을 지키려 했던 한 조선 실무 자의 치열한 고뇌와 냉철한 논리가 담겨 있다. 소설은 여기에 변주를 가해, 그가 지키고자 했던 유교적 전통이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 간의 관계에서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었는지 동준 스스로 묻게 만들고 싶었다. 그가 사랑했던 한 일본 여인과 함께.



내 너에게 역관의 본분을 설명할테니 잘 듣거라.
우리가 왜 오랑캐들의 말을 통역하는지 아느냐?
모든 인간은 한족이든, 조선인이든, 왜인이든, 여진이든 다 마찬가지이니. 단지, 예를 아는 정도가 다를 뿐, 그 어느 땅에도 군자의 덕(德)과 도(道)가 들어선다면 그곳은 문명이니라. (2화 내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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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Shika Ch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