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오크의 도서관
"제 아버지는 시청 공무원이에요. 공문서를 보관하는 시립 도서관에서 일하시죠. 덕분에 저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아이들이 나무 인형이나 스파이라, 타불라 같은 보드게임을 가지고 놀 때 주로 책 속에 파묻혀 시간을 보냈어요. 청소년 시절, 친구들이 자수나 요리를 배우고 미래 배우자를 위한 교양으로 리라 연주를 익힐 때 저는 도서관 구석에서 희랍 고전들을 읽었죠. 특히 고대 시를 옮겨적는 것을 좋아했어요. 물론 대부분 아버지 눈을 피해서 했지만요. 필사할 때 느껴지는 차분함, 문장을 재배치할 때의 우아함, 그리고 낯선 단어들을 소리 내어 읽을 때 느껴지는 해방감은 저만의 비밀스러운 감정들이었어요.
반면, 아버지는 늘 제가 좋은 가문의 남자를 만나 결혼해 풍족하게 살기를 바라셨어요. 저희는 관직으로 입신하여 명망을 얻은 비교적 새로운 가문이었는데, 그런 배경에서 딸의 결혼은 가장 중요한 일이죠. 저는 남동생들과 함께 사립학교에 다녔어요. 그곳 선생님도 제 재능을 눈여겨보셨죠. 하지만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셨어요.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한 후 집안에서 취미를 즐기거나, 수녀가 되어 수도원 필사실에서 서기가 되는 길 말이에요. 좋아하는 성경이나 고전을 마음껏 필사 할 수 있다고 하셨죠. 물론 선생님도 첫 번째 길을 강조하셨지만요.
솔직히 그럴 때마다 저만의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더 커졌어요. 저는 밤마다 방에서 몰래 시를 쓰고, 고전에 대한 비평을 두세 장씩 썼어요. 혹시라도 들킬까 봐 쓴 글들을 조심스럽게 말아 지붕 처마 밑에 숨겨두었죠. 여자가 그렇게 전문적인 글을 매일 쓰는 것을 누구라도 달갑게 보지 않았을 테니까요.
어느 날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셨을 때, 평소와 달리 저를 부르셨어요. 아버지는 조용히 식탁 위에 종이 뭉치를 올려놓으셨어요. 제가 오랫동안 지붕 위에 숨겨두었던 그 종이들이었죠.
아버지는 쌓인 글들을 조용히 내려다보며, 한참 침묵하다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나는 네가 남들처럼 평범하게 행복하기를 바랐는데, 네 행복이 글 속에 있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구나.
이 종이들이 너의 날개인 줄 알았다면 내가 어찌 꺾으려 했겠니?"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싶다면, 내가 너의 첫 번째 독자가 되어 주마."
작가노트
[1] 비잔틴 시대에 사용된 '마르타(Martha)'라는 이름은 아람어에서 유래했으며, '귀부인(mistress)' 또는 '안주인(lady)'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이름은 신약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인 베다니의 마르다(Martha of Bethany)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열렬한 제자였으며, 동생 마리아, 오빠 라자로와 함께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극진히 대접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 속 인물을 기리는 뜻으로 이 이름은 '환대'와 '경건한 봉사', 그리고 '안주인'으로서의 책임감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2] 안티오크(안디옥)는 비잔틴 제국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안티오크는 시리아에 위치한 도시로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와 더불어 5대 기독교 교구 중 하나인 안티오크 총대주교좌를 가진 도시였습니다. 제국의 동부 지역에서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는데, 특히 페르시아(이후 오스만 제국)와의 전쟁에서 제국의 동방 방어를 위한 핵심 기지 역할을 하였습니다.
[3] 마르타의 아버지는 시청 공무원이었고, 공문서를 보관하는 시립 도서관에서 일하는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비잔틴 사회에서 공식적인 행정 명령(prostagma)은 일반적으로 수신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황제 칙령(imperial decree)이었습니다. 문서 보관실 관리들은 황제의 의견을 대변하여 공공 재산의 확보, 소송 심리, 서신 전달 등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4] 비잔틴 법은 본질적으로 로마법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6세기 이후에도 여성의 법적 지위는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전통적인 여성에 대한 제약과 독립적인 여성에 대한 적대감은 존재했습니다. 마르타의 가문은 관직으로 명망을 얻은 비교적 새로운 가문으로, 이러한 배경에서 딸의 결혼은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귀족 가문의 결혼은 많은 재산(dowry)이 관련될 수 있었으며, 결혼은 제국 통치술의 근본적인 요소였습니다. 실제로 신부 가족이 계약 조건을 이행하기에는 너무 가난해지자 어머니가 아들의 약혼을 파기한 사례도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결혼 시 재산 문제가 중요했음을 시사합니다.
[5] 타불라(Tabula)는 고대 그리스-로마와 비잔티움 제국에서 크게 유행했던 2인용 보드게임으로, 오늘날 백개먼(Backgammon)이라는 보드게임의 조상입니다. 라틴어로 '판(board)'을 의미하는 타불라는 24개의 포인트가 있는 판에서 각 선수 15개의 말을 사용하며, 3개의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수에 따라 말을 한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경주 및 전략 게임이었다고 합니다. 스파이라(Spheira)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공(球)'을 의미하며, 고대 사회에서 아이들의 놀이 또는 일반적인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통칭합니다.
[6] 마르타는 도서관에서 그리스 고전과 시를 읽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당대의 수사적 장르에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녀가 글을 숨긴 행위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여성의 활동은 공개적인 영역보다 가정적인 것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엄격한 태도가 지배적이었고, 그리스 문화의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마도 그녀는 고전 헬라문학에 내재된 사상과 기독교 신앙 사이의 갈등을 겪었을 수도 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흔한 사상적 충돌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히에로니무스(Jerome)와 같은 학자는 고전 작가들(키케로, 플라우투스 등)을 읽는 것과 금욕적인 삶을 사는 것 사이에서 갈등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7] 마르타의 비밀스러운 글을 발견한 아버지가 그녀의 지적 욕구를 지지한 것은 당시 비잔틴 엘리트 계층에서는 드문 일이었습니다. 이는 교육받은 여성이 겪었을 제약과 갈등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다양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독립적인 문필 활동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도 했는데, 주로 집안 사업을 돕거나 가문의 서기로 일하는 형태로 이루어졌습니다. 아버지의 배려 덕분에 마르타도 제한된 여건이지만 이러한 해피 엔딩을 맞게 됩니다.
참고문헌
Michael Maas, Readings in Late Antiquity: A Source Book (Second edition, Routledge 2010).
Judith Herrin, Unrivalled Influence: Women and Empire in Byzantium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3)
Elizabeth Jeffreys, John F Haldon and Robin Cormack (eds), The Oxford Handbook of Byzantine Studies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Wikimedia commons, 'Ancient Roman road of Tall Aqibrin' By Bernard Gagnon, CC BY-SA 3.0
위키피디아(한글) - ‘여성의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