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의 비단 무역상
"열여덟 살에 아버지 밑에서 처음 무역을 배웠습니다. 아버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콘스탄티노플로 곡물을 운송하고 거래하는 꽤 알려진 무역상이셨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나일강의 곡창지대에서 지중해와 아나톨리아의 섬들을 지나 로마 제국의 수도로 향하는 아버지의 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거래는 언제나 안정적이었죠. 하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은 로마의 엄격한 통제와 규제 아래 있었고, 바쁜 업무에 비해 그리 큰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계셨다는 사실을요.
제가 스물여덟이 되던 해, 아버지는 사업을 저에게 물려주셨습니다. 안정적인 수입원과 적지 않은 부를 물려받은 저를 사람들은 부러워했죠. 하지만 저는 보기보다 훨씬 도전적인 성격이었습니다. 정부의 통제 아래 큰 이윤을 내지 못하는 아버지의 사업이 늘 못마땅했고, 젊은 혈기가 더해져 남들이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영역에 뛰어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비단을 사서 로마에 파는 친구가 제 주변에 있었습니다. 비단은 귀족들에게 매우 비싼 가격에 팔렸지만, 문제는 한꺼번에 많은 양을 구매하기가 어렵다는 점이었죠. 사람들이 말하길 동쪽 땅 끝에 '세레스' 혹은 '친'이라는 큰 나라가 있는데, 그곳 사람들이 특별한 벌레를 이용해 비단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과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사절단을 파견했던 나라죠. 친에서 제작된 비단은 페르시아를 거쳐 로마로 유통되었는데, 가장 큰 문제는 로마 상인들이 전쟁 중인 페르시아나 그 너머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과감하게 모든 것을 정리했습니다. 제 모든 자본을 비단 사업에 투자하기로 결심했죠. 주변 사람들은 모두 제가 미쳤다고 했습니다. 로마인들에게 적대적인 땅으로 직접 건너가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지만, 결국 저는 홀로 페르시아로 떠났습니다. 막상 그곳의 수도 크테시폰에 도착했을 때, 저는 그저 보잘것없는 존재였습니다. 언어도 통하지 않았고, 로마 시민권은 오히려 숨겨야 할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시장에서 '마기'라 불리는 조로아스터교 사제의 행렬이 지나갔는데, 경의를 표하는 법을 몰라 망연자실 서 있던 기억이 납니다. 옆에 있던 페르시아 상인들은 저에게 "로마의 개는 크테시폰의 바닥을 핥아야 한다"라고 조롱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소그드 계열의 주인이 운영하는 한 무역상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말이 통하지 않아 바닥을 쓰는 일부터 시작했죠.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신뢰를 얻는 일이었습니다. 제 모든 자본을 솔리두스 금화로 가져갔지만, 그들은 저를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첫 거래에서 저를 시험하듯 아주 적은 양의 비단을 내어 주며, “이걸 무사히 가져가서 로마에서 팔아올 수 있는지 보자"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 비단 뭉치를 품에 숨기고 도둑처럼 국경을 넘어야 했죠. 하지만 그 모든 어려움이 저를 단련시켰습니다.
낯선 땅에서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도구를 넘어 한 개인이 속한 세계의 단단한 경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경계는 말이 아닌, 꾸준하고 일관된 태도라는 무언의 언어를 통해 비로소 허물어지더군요. 섣부른 말로 그들의 마음을 사려 했던 저의 어설픈 시도들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그들의 심장에 가닿는 방법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오랜 침묵의 시간들을 보낸 후에,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페르시아인들을 설득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오랜 시간 작은 행동들이 모여 신뢰가 형성되면 언어는 이미 완성된 관계의 증거로만 남게 됩니다.”
[1] '니콜라오스'(Νικόλαος)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남성 이름으로, 고대 그리스어 '니케'(νίκη, nikē)와 '라오스'(λαός, laos)의 결합형입니다. 니케(Nikē)는 '승리' 또는 '정복'을 의미하며, 그리스 신화에서 승리의 여신으로 등장합니다. 라오스(Laos)는 '백성', '민중', '군대'를 뜻합니다. 이 두 단어가 합쳐진 니콜라오스는 "백성의 승리" 또는 "민중의 정복"이란 의미를 갖습니다. 이 이름은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널리 사용되었고, 특히 서기 4세기의 성인 성 니콜라오스(Saint Nicholas)로 인해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자선과 관대함으로 알려졌으며, 오늘날 산타클로스(Santa Claus)의 기원이 되는 인물입니다.
[2]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 대왕의 이름을 따서 세워진 그리스인의 도시로, 비잔틴 제국의 주요 도시였습니다. 로마 시대부터 이어져 온 상업 및 학문의 중심지였으며, 특히 곡물 무역의 요충지로서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식량을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이 곳에서 콘스탄티노플까지의 대략적인 해상 이동 시간은 약 9일이였으며, 로마까지는 13일 정도가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7세기 이슬람 세력의 확장으로 도시가 점령되어 비잔틴 제국의 통치에서 벗어났고, 이후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도시의 성격이 변모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고대의 대도서관과 파로스 등대(Lighthouse of Alexandria)로 유명했습니다. 파로스 등대는 기원전 3세기에 세워진 높이 100미터가 넘는 거대한 건축물로,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힙니다.
[3] 실제로 중국(위진 남북조)은 당시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도 막대한 양의 비단을 실크로드를 통해 수출했습니다. 당시 실크로드는 단순한 무역로를 넘어, 동서양의 문화, 종교, 기술을 교류하는 통로였습니다. 특히 이 시기에 불교가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 전파되었고, 이는 중국 사회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록 중국이 비단 제조 기술을 철저히 비밀로 유지하려 했지만, 6세기 무렵 비단 제조 기술이 서방으로 유출되면서 비잔틴 제국 등에서 비단을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4] 니콜라오스가 무역의 어려움을 기회로 삼으려 했던 페르시아는 사산 제국을 의미하며, 이 제국은 당시 로마의 “가장 큰 적"이었습니다. 사산 제국은 3세기부터 7세기까지 존재했습니다. 그들과의 지속적인 전쟁은 로마 상인들의 동방 무역 경로에 주요 장애물 중 하나였습니다.
[5] 크테시폰(Ctesiphon)은 오늘날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남동쪽 티그리스 강변에 위치했던 고대 도시입니다. 처음에는 파르티아 제국의 수도로 건설되었으며, 이후 사산 페르시아 제국의 주요 수도로 발전하여 동방의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이 도시는 특히 거대한 건축물로 유명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치형 궁전인 타크 카스라(Taq Kasra)입니다. 이 건축물은 단일 벽돌 아치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 중 하나로, 사산 페르시아 건축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적입니다. 크테시폰은 페르시아와 로마 제국, 그리고 서역의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으로서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국제적인 도시였습니다. 7세기 중반 이슬람 세력의 침공으로 함락된 후, 바그다드가 건설되면서 서서히 쇠퇴했습니다. 현재는 일부 유적만이 남아있습니다.
참고문헌
Leslie Brubaker, Inventing Byzantine Iconoclasm (Bristol Classical Press 2012).
Michael Maas, Readings in Late Antiquity: A Source Book (Second edition, Routledge 2010).
Jonathan Shepard (ed), The Cambridge History of the Byzantine Empire c. 500-1492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8).
Edward Luttwak, The Grand Strategy of the Byzantine Empir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2009).
Wikimedia commons, 'Pharos Alexandria (Fischer von Erlach).jpg', author: Johann Bernhard Fischer von Erlach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Taq Kasra, Madain, Iraq', by Safa.daneshvar, CC BY-SA 4.0
이번 4화는 '아르칸테' 작가님의 글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