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이내 출국할 것’
유럽 일정을 마치고 저녁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 나는 파리 북 역에 있었다. 유로스타에 탑승하자마자 아주 깊이 잠들었고 눈을 떠보니 런던에 도착해 있었다. 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줄에서도 나는 거의 잠든 상태였다.
나의 출입국 기록을 유심히 보던 그는 왜, 어떻게, 이렇게 오래 런던에 머물렀는지 물었다. 나는 그저 여행자며 어차피 오늘이 일정의 마지막 날이라고 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도장을 찍어줬다. 단, 24시간 이내 출국하라는 명령과 함께.
큰 캐리어 하나와 함께 시작했던 나의 여행은 6개월 후 캐리어 3개로 늘어나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택시를 타지 않고 공항까지 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2009년 9월 돌아온 집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내년엔 복학도 해야 했고 엄마는 조금의 보탬이라도 돼주길 원했다. 힘든 상황이 되면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도 있지만 좋았던 추억을 붙잡아 시간이 지나가길 기대어 버리는 사람이 있다.
깊게 고민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라 천천히 짐 덩어리들을 정리하다 발견한 ‘블렉퍼스트 블렌드’ 한 봉지에 시작되었다. 항상 웃어주던, 일을 하느라 하루를 놓쳐버리면 기다렸다고 해주던 햇살 같은 따뜻함이 떠올라버렸다. 2009년 12월 나는 집에서 가장 가까웠던 매장의 파트너가 되었다.
급하게 사람이 많이 필요했는데 면접을 봤던 점장이 마침 런던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덕분에 나는 합격했다. ‘역시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야’ 가족과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하며 나는 들떠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