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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빈 Nov 06. 2020

야근좀비 탈피시켜 주세요

왜 퇴근시간부터 제안서를 쓰나요?



일분이가 홍보대행사에서 첫 제안서를 쓴 직후 내뱉은 말이다. 나인투식스는  클라이언트 업무(미팅, 행사, 기사, 보고서 등)를 하고, 이제 퇴근 좀 할까? 하는 순간부터 2nd 막이 오른다. 각 팀의  좀비들이 노트북을 들고 미팅룸으로 모이기 시작, 제안서PT 작업에 들어간다. 팀으로 움직이니 내 타임스케줄링은 불가능, 곧죽어도  야근모드로 지내야 한다. 불합리하지 않은가? 아직까지 대행사의 생리가 그렇다. 홍보대행사 불이 꺼지지 않은 이유를 얘기해본다.


 
돈이 갑이다?




대행사 AE로서의 프라이드는 홍보마케팅 전문가란 마인드에서 온다. 기자를 직접 만나거나, 행사를 통해 고객과 직접 comm. 하기  때문에 일선의 생생함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다. 그러나 우리에게 돈을 주는 클라이언트가 계약서상 갑이오, 우리가 전문적 제안을 할  순 있으나 결국 갑의 오더를 따라야 한다.


프로젝트를 맡게 된 순간부터 '계약 기간 잘 관리해 줄게요'라는 약속을 한다. 예전에야 홍보 매체라  하면 (지면)언론이나 몇몇 커뮤니티가 다였지만, 지금은 SNS 등 실시간으로 돌아가는 채널을 다 관리해야 한다. 혹여나부정이슈가 떴는지, 온라인에 부정 기사가 뜨진 않았는지, 회사를 떠나서도 두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적이 있다.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0시가 넘은 시간에 (짜증나게) 클라이언트 톡이 왔다.


"SNS에 그거 뜬 거 봤어요?"

"아뇨, 어떤 거 말씀하시는지요?"

"지금 페북에 우리 것 까는 글 떴잖아요. 블라블라~ 아니 저보다 모르고 있음 어떡해요, 모니터링 하셔야죠!" 


게시글을 보니 불과 몇 분 전에 올려진 글이다. 나는 퇴근을 했고 휴대폰을 내 몸에 붙여놓고 있지 않다. 10시 넘은 시간에도  내가 너를 관리해야 하며, 그러지 못했다고 해서 너의 꾸지람을 듣고 있어야 한다? 천불이 났지만 "죄송해요, 팀장님과 확인 후  연락 드릴게요" 한 후 마무리 했던 경험이 있다.


물론, 부정이슈라면 클라이언트 담당자도 똥줄이 탈 일이며, 한시라도 빨리 진압하고 싶을 것이다. 이슈의 심각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일이 돼서도 이 사안을 모르고 있다면 문제겠지만, 위와 같은 상황은 '대행사니까 사생활 침해라는 개념없이 언제든 연락하고  꾸지람해도 된다'는 도 넘은 행위다.


 이럴 땐 어떡해야 하나요??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소인의 경험상, 클라이언트도 참 다양하고 저런 케이스는 '계약만 끝나라...'를 속으로 외칠 수밖에 없다.



늘 바쁜 이유


대행사 AE는 늘 바쁘다. 잡무와 본 업무의 경계없이 모두 다 하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 규모에 따라 다르다. 잡무는 인턴에게  넘기고 본업에만 충실할 수 있다. 그러나 1인 1클라이언트는 있을 수 없고, 대개 2~3개 맡게 된다. 수익구조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를 수주하면 한 번쯤 비용 네고에 들어간다. 그럴 때 만만하게 건드는 부분이 인건비다. 2명으로 줄여달라거나, 이 돈에  맞게 직급을 맞춰 달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꾸역꾸역 맞추고 나면, 적은 인력으로 최대한 많은 클라이언트를 응대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우리가 언제나 바쁜 이유다.


그러다보니 안 바빠도 바빠야 할 때가 있다. 참 아이러니한데, 대행사에서 야근을 하지 않으면 "쟤 일 없나?"란 시선이 쏟아진다.  그럼 자연스럽게 제안서 작업에 투입된다. 나는 야근을 하지 않기 위해 점심시간 줄이고, 커피시간 줄이고, 화장실 1번 가고  일한건데, 돌아오는 건 '잉여인간'이라는 얄팍한 인식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여전히 '야근=열일'이란 공식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육시 땡 쳐도 다들 궁둥이 붙이고 뭔가 타이핑 하거나, '저녁 뭐 먹을까요' 외침이 들리기 시작한다.


일분이는 항상 칼퇴근러를 외쳤는데 어느순간 온갖 제안서 작업에 꽂혀 있었다. 그래서 조금씩 쇼잉을 하기 시작했다. 일 많다고  투덜대면서 눈치껏 야근모드에 들어갔는데, 겁나 쇼핑하거나 SNS질 하더라도 클라이언트 요청이 있어서 모니터링 하는 거라고  둘러댔다. 물론 회사마다 다르고 조금씩 분위기도 바뀌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대행사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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