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킨빈 Jun 21. 2022

왜 대처 능력이 느릴까

후회는 내몫

홍보를 10년 훌쩍 넘게 하면서 가끔 생각한다. 나는 지금 내 일을 얼만큼 잘하고 있는가.


얼마 전 모 행사에 임원을 모시고 참석한 적이 있다. 업계가 한창 안 좋은 이슈로 시끄러운 때였다.

행사장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안면조차 없던 모 사회부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밀면서, 마치 우리 기업이 큰 잘못을 한 것 마냥 취재를 하기 시작했다. 취재라고 하기도 뭐하다. 어디서 팩트체크조차 하지 않은 카더라를 듣고 와선 '000이 사실입니까?'라고 공격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큰 범죄를 저질러 검찰 출석한 범죄인을 다루는 듯한 행위였다. 굉장히 불쾌했고 (머리채 잡고 어퍼컷 날리고 싶을 정도) 불쾌했고 또 불쾌했다.


딱 봐도 기껏해야 사회 초년생 1-2년차 정도로 보였고, 일을 (저따위로) 배웠나 싶을 정도의 무례함이었다.

어찌저찌 행사가 끝나고 그 다음 날, 우리 임원은 잠을 못 잘 정도로 불쾌함을 떨쳐버릴 수 없다며 나에게 공식적으로 항의할 수 없냐고 물어왔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공식적인 항의'가 과연 가능할까?


물론 없다. 만약 그것이 기사화되면 언중위로 간다든지의 공식적 절차는 있다. 하지만 단순히 취재 방식이 무례한 것 갖고 항의를 할 순 없다. 그리고 기레기 기레기 하지만 여전히 기업 (특히 홍보팀) 입장에선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존재가 기자다.


혹여 책 잡힐까봐, 혹여 심기를 건드릴까봐 최대한 조심한다. 사실 저 사건도 충분히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을 법한 이슈였지만, 홍보인 입장에선 '괜히 긁어부스럼 만들 수 있으니 참으시죠'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이런 대응을 우리 임원은 이해하지 못했다. '너는 너무 착해' 라고 돌려 말했지만 '왜 할말 못하고 피해? 바보야?'라는 소리로 들렸다. 이때 나는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했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홍보인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옳은 걸까? '나도 대표면 너처럼 떵떵 소리칠 수 있지만 ... (할말하않)'


최근에 깨달은 것이 업무를 함에 있어 '곧이곧대로' 혹은 '너무 솔직하게' 행동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런 상황에서 아무리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없을지라도 내가 대면하고 잘 보여야 하는 사람은 우선적으로 우리 임원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응대했어야 한다.


그러잖아도 공식적으로 항의할 수 있는 루트를 물색 중이고, 정 없다 하더라도 금일 중 전화를 해서 항의를 할 예정입니다. 돈 워리 하십쇼!


라고 말이다. 설령 그 기자에게 전화할 생각 1도 없다 해도 그냥 저렇게 대응했어야 했다. 임원은 알지 못한다. 내가 했나 안했다. 그냥 그 기분을 어루만져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루 일과의 반 이상을 기자를 만나거나 전화 통화를 한다. 즉 계속 떠들고 있단 의미다. 그럼 사람 다루는 법이 익숙해질 만도 한데, 10년이 흘러도 15년이 흘러도 여전히 상황별 대처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생각한다. 난 지금 내 일을 얼만큼 잘하고 있는가. 




작가의 이전글 0칼로리가 될 수 없는 감정 다이어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